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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사료로 읽는 한국 근대사

원문 사료로 읽는 한국 근대사

김옥균, 신채호, 이광수, 이승만, 최익현, 한용운, 서재필, 황준헌, 여운형, 박헌영, 김병국, 이만손, 홍영식, 조소앙, 프레드 돌프, 최원순, 김성숙 (지은이), 이주명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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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사료로 읽는 한국 근대사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원문 사료로 읽는 한국 근대사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근대개화기
· ISBN : 9788997751372
· 쪽수 : 448쪽
· 출판일 : 2014-05-20

책 소개

한국 근대사의 흐름을 알기 위해 읽어볼 필요가 있는 글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1876년과 1945년 사이에 씌어진 28건의 글이 실려 있다. 봉건적 구질서 붕괴, 외세의 내침, 국권 상실, 국내외 독립운동, 독립 성취, 좌우익 분열 등 그 시대 우리 민족의 파란만장했던 역사를 당대인들의 생생한 글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다.

목차

편역자의 머리말
1876, 최익현, <지부복궐척화의소>
1880, 황준헌, <사의 조선책략>
1880, 김병국 등, <여러 대신이 의견을 올림>
1881, 이만손 등, <영남만인소>
1883, 홍영식, <미국 방문 보고>
1884, 김옥균, <갑신일록>
1896, 서재필, <독립신문 창간사>
1919, 조소앙 등, <대한독립선언서>
1919, 이광수 등, <2.8 독립선언서>
1919, 김인종 등, <대한독립 여자선언서>
1919, 조선민족 대표 33인, <기미독립선언서>
1919, 한용운, <조선독립의 서>
1919, 여운형, <일본 관리와의 대담>
1919, 여운형, <도쿄에서의 연설>
1921, 프레드 돌프, <한국을 위한 변론 취지서>
1922, 이광수, <민족개조론>
1922, 최원순, <이 춘원에게 문하노라>
1923, 신채호, <조선혁명선언>
1928, 코민테른 집행위, <12월 테제>
1931, 신채호, <조선상고사 총론>
1932, 조소앙, <한국 혁명운동 추세>
1934, 서재필, <회고 갑신정변>.;<체미 50년>
1938, 김성숙, <왜 전민족적 통일전선을 건립해야 하는가>
1941, 임시정부, <대한민국 건국강령>
1942, 임시정부, <23주년 3.1절 선언>
1945, 박헌영, <현 정세와 우리의 임무>
1945, 이승만, <건국과 이상>
주석

저자소개

김옥균 (지은이)    정보 더보기
조선 말기의 정치인이자 혁명가로,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고 개화당을 조직하여 근대국가 수립에 진력했다. 1884년 갑신정변을 주도했으나 실패하고 일본으로 망명한 뒤 중국 상해에서 자객에게 암살당했다. 저서로 『기화근사』 『치도약론』 『갑신일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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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지은이)    정보 더보기
역사가이자 언론인이며 독립운동가다. 본관은 고령高靈으로 1880년 충청남도에서 출생했다. 호는 단재丹齋, 가명은 유맹원劉孟源이다. 어려서부터 조부에게 한학을 배웠으며 18세 때 성균관에 입학하여 26세가 되던 1905년 성균관박사가 되었다. 그해 《황성신문》의 기자가 되었고, 이듬해 《대한매일신보》의 주필이 되었다. 1907년 항일비밀결사인 신민회에 참여했고 시론, 논설 등을 쓰며 애국계몽운동과 항일언론운동을 펼쳤다. 또한 〈독사신론〉을 포함한 역사관계 논문과 다수의 영웅전을 써서 민족의식과 독립정신 고취에도 힘썼다. 1910년 신민회 동지들과 중국 칭다오로 망명한 후 민족교육과 항일운동에 전념하는 한편 답사와 저술 등을 통해 상고사 연구에 힘썼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으며, 1927년 신간회 발기인으로 활약했다. 1928년 4월 무정부주의동방연맹대회에 참석한 그는 5월, 타이완에서 체포되어 다롄으로 이송되었다. 1930년 10년형을 선고받고 뤼순감옥으로 이감되었으며, 1936년 옥중에서 뇌일혈로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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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지은이)    정보 더보기
한국 현대소설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매우 중요한 작가이면서, 일제강점기의 소설가이자 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조선왕조의 국운이 기울어가던 구한말에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하여, 일찍 부모를 여의고도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유학을 통하여 근대사상과 문학에 눈뜨고 이를 한국적 사상 및 문학 전통에 접맥시켜 새로운 문학의 시대를 열어나갔으며, 한국전쟁 와중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붓을 놓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놀라운 창작적 삶을 이어간 작가였다. 그는 『무정』, 『재생』, 『흙』, 『유정』, 『사랑』 등으로 연결되는 본격 장편소설들을 통하여 한국 현대소설의 ‘제1형식’을 창출하였고, 『매일신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의 한글 신문과 『조선문단』, 『동광』 등의 한글 잡지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문필 활동을 펼침으로써 현대 ‘한국어 문학’의 전통을 수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나아가 그는 『마의태자』, 『이차돈의 사』, 『단종애사』, 『이순신』, 『세조대왕』, 『원효대사』, 『사랑의 동명왕』 등 삼국시대로부터 조선왕조에 이르는 시대적 사건과 인물을 소설화함으로써 민족적 위기의 일제강점기에 역사의 기억을 소설의 장에 옮겨 민족적 ‘자아’를 보존하고자 했다. 요컨대, 그는 한국 현대소설의 성립을 증명한 『무정』의 작가요, 도산 안창호의 유정 세계의 꿈을 이어받은 사상가요, ‘2·8 유학생 독립선언’을 주도하고 상해로 망명, 임시정부에 가담한 민족운동가요, 민족적 ‘저항’과 ‘대일협력’의 간극 사이에서 파란만장하고도 처절한 생애를 살아간, 험난한 시대의 산증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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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지은이)    정보 더보기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한국 현대사에 획을 그은 주요 인물이다. 대한민국의 독립과 건국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1948년부터 1960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해왔다.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요, 정치가의 면모를 갖춘 그는 미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최초의 한국인 중 하나로, 프린스턴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한국의 독립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재임 당시 대한민국은 1950년 한국전쟁을 겪었는데 이때 그는 국가의 존립과 자유를 지켜냈고 전쟁 후에는 국가의 재건과 경제발전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 주력했다. 물론 정치적 억압이나 선거 조작 같은 논란이 4‧19혁명으로 비화되자 그는 대통령직에서 내려와 하와이로 떠났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생애와 업적은 한국의 정치‧사회 및 국제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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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현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33에 태어났다. 조선 말기 애국지사로 호는 면암. 1855년 명경과에 급제, 승문원 부정자로 벼슬길에 오른 후 1870년에 승정원 동부승지를 지냈다. 1876년에는 '병자지부소'를 올려 강화도 조약을 반대하다가 흑산도로 유배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망국의 조약에 참여한 박제순 등 5적의 처단을 주장했다. 1906년 윤4월에 전라북도 태인에서 궐기하여 8도 사민에게 포고문을 내고 항일투쟁을 호소하여 순창에서 의병을 이끌고 일본군과 관군을 상대로 싸우다가 체포되어 쓰시마로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 적이 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 하여 단식하다가 1906년 세상을 떠났다. 지은 책으로 <면암집> 40권, 속집 4권, 부록 4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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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79년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태어났다. 법명은 용운(龍雲), 법호는 만해(卍(萬)海)다.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했고, 설악산 백담사 오세암에 수년간 머무르며 불경을 공부하면서 다양한 독서를 통해 서양 근대사상을 접했다. 이 무렵 서구 문물과 세계정세를 알아보기 위해 연해주로 건너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만주를 거쳐 돌아왔다. 1901년 고향에 돌아와 2년간 은신한 후 다시 집을 나와 방황하다가 1905년 백담사에서 수계를 받고 승려가 되었다. 1908년에는 일본에 건너가 도쿄, 교토 등지의 사찰을 순례하고 조동종 대학림에서 불교와 동양철학을 연구했다. 이를 계기로 1913년 당시 조선 불교의 침체와 낙후성과 은둔주의를 대담하고 통렬하게 분석, 비판한 『조선불교유신론』을 발표하여 사상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여 독립선언 준비 과정에서 최린과 더불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간 옥고를 치르는 동안 검사의 취조에 대한 답변서로서 세칭 「조선 독립의 서」를 집필했다. 1922년 출옥 후에는 각지를 전전하며 강연을 통해 청년들의 각성을 촉구했고, 내설악 백담사에서 은거하면서 쓴 시집 『님의 침묵』을 1926년 간행하여 문단에 큰 파문을 던졌다. 50세를 전후하여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에 은거하면서 불교 청년운동 및 불교의 대중화 운동을 벌였으며 『흑풍』 『후회』 『박명』 등의 장편소설과 상당수의 한시, 시조를 남겼다. 일제의 강요로 많은 지식인이 변절했을 때에도 끝까지 민족의 지조를 지켜 창씨개명을 거부했고 학병 출정에 반대했다. 그러나 1944년 6월 29일, 그토록 그리던 조국 광복을 눈앞에 두고 중풍으로 사망했다. 유해는 화장되어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으며,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이 수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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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필 (지은이)    정보 더보기
본관은 대구이며, 호는 송재松齋이다.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이라는 미국 이름을 가지고 있는 서재필은 1882년 과거에 합격한 뒤 개화당 인사들과 교류하여, 1884년 갑신정변에 가담하였다가 실패하자 일본을 거쳐 1885년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펜실베니아주 해리 힐맨 아카데미를 마치고 1893년 컬럼비아 의과대학(현 조지 워싱턴 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여 의사가 되었다. 1890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으며, 1894년 뮤리엘 암스트롱Muriel Amstrong과 결혼하였다. 1895년 말 귀국하여, 1896년 ??독립신문??을 창간하였고, 독립협회의 결성과 독립문의 건립을 주도하였으며, 배재학당의 협성회를 지도하였다. 1898년 미국으로 돌아간 뒤 인쇄 및 문구사업에 종사하다가 3ㆍ1운동 이후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필라델피아에 한국통신부를 설립하고 Korea Review를 발간하였으며, 한국친우회를 결성하였다. 1921년에는 구미위원부 임시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22년부터 국내와 미주의 한국언론에 논설을 기고하였으며, 병원을 개업하기도 하였다. 1947년 7월 미군정의 초청으로 귀국하여 미군정 최고고문 및 남조선 과도정부 특별의정관으로 활동하였고, 정부 수립 후 미국으로 돌아가 여생을 마쳤다. 1977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고, 1994년 유해가 봉환되어 서울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한국의 개화와 독립, 정부수립에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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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헌 (지은이)    정보 더보기
호는 인경려주인人境廬主人이며, 광동廣東 출신. 초대 주일공사 하여장을 수행하여 일본에서 활동. 당시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대한 대책으로는 한 ·중 ·일 3국이 협력하여 미국과 연합세력을 구축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주장했으며, 조선 통신사 김홍집과 만나 국제관계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뒤, 《조선책략朝鮮策略》을 제공함. 총 11권에 1천여 편의 시를 수록한 《인경려시초(人境廬詩草)》를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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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 (지은이)    정보 더보기
(呂運亨, 1886~1947) 일제강점기와 광복 후에 활동한 독립운동가·정치가. 경기도 양평 출생. 조선시대 양반사회와 계급주의를 신봉하는 부친과 달리 동학에 가담한 조부와 증조부에게 큰 영향을 받음. 1900년 배재학당에 입학하여 기독교를 접하고, 홍화학교와 우무학당에서 수학. 1906년 부친이 사망하자 집안 노비문서를 모두 불태워 그들을 해방시킴. 1907년부터 선교사 보조원 생활을 했으며 고향집에 광동학교를 세워 청년들을 계몽하는 데 앞장섬. 이후 강릉 초당의숙에서 평등사상과 신학문을 가르쳤으나 총독부에 의해 1년 만에 폐쇄. 1914년 중국으로 건너가 신학문 공부, 1918년 상하이에서 장덕수를 만나 정치와 독립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어 일대 전환기를 맞음. 1920년 조선 독립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제안에 공산당에 참여했으나 와해됨. 1922년 모스크바에서 레닌과 트로츠키를 만나 조선의 사정을 논의, 중국 상하이로 돌아와 쑨원과 중국 공산당 인사들과 교류, 1925년부터 중국혁명운동에 적극 참여. 1929년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혐의로 상해 주재 일본영사관 경찰부에 체포됨. 이후 중국에서 실패한 공산주의자이자 독립운동가로서 허망한 날을 보냈으나 국내에 서 일약 유명인이 됨. 1933년 민족의 영웅으로 추대되며 조선중앙일보사 사장으로 취임, 그의 명성에 힘입어 번창했으나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1936년 폐간됨. 1944년 조선건국동맹 조직. 1945년 광복을 맞아 건국 준비위원회 조직, 임시정부 지사들과 대립. 1946년 민주 주의민족전선을 결성, 반대파에 밀려 탈퇴. 1947년 근로인민당을 조직했으나 극좌, 극우로부터 소외당한 채 좌우 합작운동을 추진하던 중 극우파에 의하여 암살되었다. 3·1운동과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조선건국동맹 위원장,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 조선인민당 당수, 조선체육회 (대한체육회 전신) 제11대 회장으로 활동했으며 대통령장(2005), 대한민국장(2008)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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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 (지은이)    정보 더보기
공산주의 혁명가. 1925년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했고, 1946년 남조선노동당을 조직하고 초대 부위원장을 맡았다. 같은 해 입북하여 남노당을 지도하다가 김일성에게 숙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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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국 (지은이)    정보 더보기
조선 말기의 문신.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지냈다. 황준헌의 <사의 조선책략>에 따라 미국과의 수교에 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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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손 (지은이)    정보 더보기
조선 말기의 유학자. 상주와 안동 지방의 유생들과 함께 <사의 조선책략>에 반대하는 소를 고종에게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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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식 (지은이)    정보 더보기
조선 말기의 문신. 개화파의 일원으로 갑신정변에 참여했다가 정변이 실패하면서 청군에게 피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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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앙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87년(고종24)~1958. 조선 후기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사상가이다. 본관은 함안(咸安), 본명은 용은(鏞殷), 자는 경중(敬仲)이며 소앙(素昻)은 호이자 필명이다. 아버지는 조정규(趙禎奎)이고 어머니는 박필양(朴必陽)이며, 경기도 파주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1904년(광무8) 성균관을 수료하고 황실 유학생에 선발되어 1912년까지 일본 도쿄부립제일중학교(東京府立第一中學校),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등에서 근대 교육을 받았다. 1913년 중국에 망명하여 항일 단체인 대동당(大同黨)을 조직하였고, 1917년 대동단결선언(大同團結宣言)을 발표하였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임시 헌장을 기초하였으며, 임시정부의 외무부장(外務部長)으로서 외교 활동을 펼쳐 한국의 자주독립을 역설하였다. 1930년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창당하고 삼균주의(三均主義)를 창시하였다. 1941년 삼균주의에 의거하여 대한민국 건국 강령을 기초하였다. 광복 후 1950년 5?30총선에 서울 성북구에서 출마하여 제2대 국회에 진출하였으나 6?25전쟁 중 납북되었으며 1958년 서거하였다. 1989년 임시정부 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장에 서훈(敍勳)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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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 돌프 (지은이)    정보 더보기
미국인 변호사. 1919년 임시정부가 대미외교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미국에 설치한 외교기관인 구미위원부의 법률담당 고문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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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순 (지은이)    정보 더보기
언론인. 동경 유학 중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논박하는 글을 발표했다.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1927년 신간회 결성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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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숙 (지은이)    정보 더보기
독립운동가. 1930년대 중국에서 조선민족해방동맹을 조직했고, 광복 후에는 좌우합작을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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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명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한겨레> 기자, <이코노미 21> 편집장, <프레시안> 편집부국장, <아시아경제> 논설위원 등을 지냈다. 지은 책으로 《아시아보고서》, 《손바닥 금융》(공저), 《손바닥 경제용어》(공저)가 있고, 옮긴 책으로《전염성 탐욕》, 《자유문화》,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 《추방된 예언자 트로츠키》, 《자유에 대하여》, 《자본주의 발전의 이론》,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 《톰슨의 쉬운 미적분》,《상대성의 특수이론과 일반이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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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아! 슬프고 슬프도다! 시세의 절박함은 위태롭고도 위태로우며 기회가 오는 것은 은미하고도 은미하다. 이 기회를 지나쳐버리면 알거나 모르거나 친숙하거나 소원한 오대부(五大部)의 종족들이 모두 조선을 위태한 나라로 보는데도 조선 저만이 절박한 재앙을 도리어 알지 못하고 있을 터이니, 이것이야말로 처마의 제비가 불이 붙은 것도 모른 채 아무 근심 없이 즐겁게 지저귀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41쪽, <사의 조선책략>)


날이 환히 밝았다. 서재필 군으로 하여금 여러 장사들에게 영을 내려 환관 유재현을 정전 위에 결박해 놓게 했다. 이어 그의 죄목을 하나하나 들어가며 책망하고 뭇 칼날이 번득이는 가운데 곧 육살했더니 그제야 모든 사람이 실색하고 다들 숨을 죽였다. 곧바로 궁녀와 환관들 가운데 쓸모없는 자들을 모두 내쫓았다. 이어 크게 개혁을 실행하고 중대하거나 필요한 임무들을 먼저 실행했다. (117쪽, <갑신일록>)


중국에 대한 일본의 정책을 보면 동양평화라는 미명을 빌려가지고 제국주의, 침략주의를 실행하여 여지없이 침략하니, 이런 까닭으로 사억만 중국인이 고루 일치하여 일본을 원수로 보는 것이다. 이것이 동양 내부가 분열쟁투하여 단결할 수 없는 원인이니, 어떻게 서세동침(西勢東侵)을 막을 것인가? 그런데 일본의 총민(聰敏)한 정치가는 속으로 중국의 내란을 기뻐하며 기화(奇貨)로 알고 있다. (185~6쪽, <일본 관리와의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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