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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으로 본 조선

논쟁으로 본 조선

(조선을 움직인 다섯 가지 격론)

이한 (지은이)
청아출판사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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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으로 본 조선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논쟁으로 본 조선 (조선을 움직인 다섯 가지 격론)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시대 일반
· ISBN : 9788936810627
· 쪽수 : 440쪽
· 출판일 : 2014-08-30

책 소개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토론 중에서 조선 시대에 벌어진 다섯 가지 토론을 다룬다. 다섯 가지 토론에 커다란 돋보기를 들이대고 사건의 속을 들여다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누가 어떻게 이겼다!'라는 필승 전략을 분석한 것이 아니라 누가 시작했고, 어떻게 풀어갔는지 전체의 과정을 훑었다.

목차

논쟁1. 한성 천도 논쟁
한성 천도 논쟁 일지
주요 인물
들어가는 글 - 서울이 아직 서울이 되기 전

천도의 첫 번째 발안자, 태조 이성계
첫 번째 수도 예정지, 계룡산
천도의 또 다른 걸림돌, 중국과의 외교 분쟁
새로운 도읍 예정지 무악 그리고 풍수지리의 대두
무악 도읍 토론회
정종, 개경으로의 환도
태종, 두 번째 천도 논쟁
훌륭한 핑계 거리, 한양 천도
막판 뒤집기, 아버지의 부탁
한성인가, 무악인가? 2차 토론회
도읍의 운명을 정한 동전 던지기

맺음말 - 태조와 태종, 신하를 휘두르다

논쟁2. 공법 실시 논쟁
공법 실시 논쟁 일지
주요 인물
들어가는 글 - 토론왕, 세종

1차 공법 시행 논쟁
조선 최대 규모의 관리, 백성 합동 여론조사
9년 후, 2차 공법 시행 논쟁
사람이 할 일을 다했거늘, 하늘이 따라주지 않다
난장판 토론 그리고 날치기 통과
계속되는 시행, 계속되는 반대
마침내 시행!
세종,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다
또다시 시작된 공법 토론
나물을 먹는 백성들, 청안현의 토지 구획 실험

맺음말 - 조선 최대의 마라톤 토론

논쟁3. 1차 예송 논쟁
1차 예송 논쟁 일지
주요 인물
들어가는 글 - 사대주의의 폐해, 예송 논쟁

예송 논쟁의 원인
효종의 승하
허목 VS 송준길, 첫 번째 논쟁의 막이 오르다
실록을 참고하다
송시열, 반격에 나서다
윤선도, 불꽃에 기름을 퍼붓다
학술적인 토론에서 패싸움으로
비난하는 자와 옹호하는 자
서인 원두표, 3년 복을 옹호하고 나서다
1차 예송 논쟁의 정리

맺음말 - 예송 논쟁, 또 하나의 마무리

논쟁4. 2차 예송 논쟁
2차 예송 논쟁 일지
주요 인물
들어가는 글 - 1차 예송의 후폭풍

1차 예송에서 2차 예송으로
2차 예송 논쟁의 시작
현종, 서인에게 칼을 빼들다
왕과 신하, 맞짱을 뜨다
2차 예송 논쟁, 둘째 날
현종 VS 김수흥, 한판 붙다
2차 예송 논쟁의 종말
그 후의 이야기

맺음말 - 이기심과 아집의 대결

논쟁5. 문체반정 논쟁
문체반정 논쟁 일지
주요 인물
들어가는 글 - 문체반정의 시작

타락한 문체
소설체의 등장
정조, 신하들과 과거의 폐단을 논하다
본보기 희생자, 이옥
잘못된 문체는 나라의 탓이다, 고로 반성문을 써라
박지원의 반성문

맺음말 - 문체반정의 끝

참고 문헌

저자소개

이한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대학원에서 석사를 취득했다. 역사의 바다에서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이야기를 찾아 다양한 시각으로 재해석해 보는 걸 가장 즐기며, 읽고 쓰는 게 좋아 모르는 분야를 공부하는 것도 언제나 환영이다. 역사의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지금까지 《한잔 술에 담긴 조선》, 《조선 기담》, 《논쟁으로 본 조선》, 《역병이 창궐하다》, 《요리하는 조선 남자》, 《조선왕조실톡》(해설), 《우리는 투기의 민족입니다》, 《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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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조선의 최고 명군으로 일컬어지는 세종. 하지만 한글을 만들고 자격루를 만든 것만이 업적의 전부는 아니다. 세종 9년, 문제 많고 탈 많은 기존의 세금제도를 공법으로 고치는 것을 도모한다. 새로운 세금제도의 도입을 놓고, 세종은 관리는 물론 전국에 의견을 묻는 대백성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이것은 장장 17년 동안 이어지는 기나긴 논쟁의 시작에 불과했다. 어떻게 하면 찬성과 반대를 넘어 가장 좋은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세종은 또다시 의견을 묻고 있었다. 신하들은 물론, 세금을 내는 당사자인 백성들에게도 말이다. 그래서 정부와 육조, 각 관소와 서울 안의 각 품관 그리고 각 도의 감사와 수령, 품관, 게다가 여염의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이런 세금제도가 좋은지 나쁜지를 물어보는 조선 시대 판 대국민 여론조사가 벌어졌다. 세종이 명령을 내리기는 했지만, 실제로 시행되었다는 게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에 호조가 공법의 대략적인 뼈대를 잡아 건의한 것은 4개월 가까이 지난 세종 12년 3월 5일의 일이었다. 호조에서 건의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 세금은 1결마다 10말. 단 평안도와 함길도(함경도)는 7말.
2. 태풍, 서리, 홍수, 가뭄으로 인한 흉작 때에는 세금 완전 면제.

들인 시간에 비하면 너무나도 간단한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아직까지 무르익지 않은 논의인 탓도 있었으리라. 여론조사의 대략적인 결과가 나온 것은 7월이었다. 호조판서 안순의 보고에 따르면 지역별로 경상도는 찬성했고, 함길도,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에서는 반대했다. 전라도나 충청도 일대의 의견은 기록에 없는데, 아마도 보고가 늦은 탓인 것 같다. 결과를 보면, 고정세율은 농업 생산량이 많은 지역에서는 환영했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반대했다. 지역색이 확연히 드러나는 결과이기도 하거니와, 지금이나 그때나 자기에게 불리한 것은 싫어하는 지역이기주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백성들이 좋아하지 않으면 시행할 수 없다. 그러나 농사의 잘되고 못 된 것을 책정할 때 저마다 자기주장을 고집하여 공정성을 잃은 것이 자못 많았고, 또 간사한 아전들이 잔꾀를 써서 부유한 자를 편리하게 하고 가난한 자를 괴롭히고 있어, 내 심히 우려하고 있노라.”

세종은 백성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면 시행할 수 없긴 하지만, 세금제도의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면서 여론조사의 결과를 바탕으로 공법의 좋은 점을 살리고 폐단을 보완하는 문제를 관리들에게 논의하게 했다. 사실 경상도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모두 공법 시행을 반대하고 있었지만, 세종은 굳건한 의지, 살짝 바꿔서 말하면 고집을 부린 것이다. 그 역시 그 할아버지의 손자이자 그 아버지의 아들이었다.
_<공법 실시 논쟁> ‘1차 공법 시행 논쟁’ 중에서


완전히 해결하지 않고 억지로 묻어 놓은 문제는 언젠가 반드시 터지게 된다. 그것도 처음보다 더 나쁜 형태로. 15년 만에 다시 시작된 2차 예송 논쟁은 1차와 같은 이유에서 시작되었다. 효종은 적장자인가? 아니면 둘째 아들인가? 어떻게든 아버지와 자신을 적장자로 만들고 싶은 현종의 성급함은 왕과 신하들의 전면전으로 이어졌다. 기간은 오직 3일. 하지만 의욕만 앞서고 능력이 부족한 왕은 신하들을 설득할 수도, 승복시킬 수도 없었다. 그것이 2차 예송 논쟁의 진정한 비극이었다.

결국 예송 논쟁의 핵심은 여기에 있었다. 효종은 왕위를 이었다. 그러나 순서로는 둘째 아들, 즉 방계였고, 소현세자야말로 적장자였다. 만약 송시열의 주장대로 왕위를 이었음에도 둘째 아들이라는 것이 성립된다면, 효종의 아들인 현종은 왕위를 이었음에도 적장자가 아니게 된다. 그러면서 도신징은 이 문제를 놓고 아무도 지적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지금의 상황을 개탄했다.
“무릇 혈기가 있는 사람치고 놀라고 분개하지 않을 리 있겠습니까? 그런데 아직까지도 누구 하나 전하를 위해 입을 여는 사람이 없으니, 이러고도 나라에 사람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예가 세상에서 기피하는 바가 되어 사람들이 제 몸 아끼느라 감히 입을 열지 못하더니, 더없이 중대한 이러한 때에도 일체 침묵을 지키고 승정원에 공론이 없어지고 재야의 사기가 떨어졌습니다. 나랏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겠습니까.”

사실이 그랬다. 1차 예송 논쟁의 결과와 현종의 금구령 때문에 사람들은 ‘예’라는 말 자체를 기피하여 다들 눈치만 보는 지경이 되었다. 실제로 도신징의 상소가 받아들여지기까지는 거의 한 달이 걸렸다.

“신이 대궐문 앞에서 이마를 조아린 지 반 달이 지났는데도 계속 기각을 당하기만 하였으니, 국가의 언로가 막혔으며 백성의 목숨이 장차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신이 말하려 하는 것은 오늘날 복을 낮추어 입은 잘못에 대한 것일 뿐인데. 승정원이 금령禁令을 어기고 예를 논한다는 말로 억압하면서 받아 주지 않고 물리쳤습니다.”

도신징은 이로써 언로, 그러니까 여론을 막는 위험성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전 1차 예송 때문에 복제를 논하지 말라는 금령이 생기긴 했지만, 그것은 효종에 대한 것이었지 인선왕후의 것은 아니었는데, 관리들이 계속 금령 때문이라며 자신의 말을 막으니 그들의 의도가 수상하다는 주장까지 했다. 분명히 도신징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오직 한 가지 의견만 있고 그 외의 의견을 말할 수조차 없다면 제대로 된 나라, 아니 사회라고 할 수 없다.
_<2차 예송 논쟁> ‘2차 예송 논쟁의 시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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