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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산문선 7

한국 산문선 7

(코끼리 보고서)

박지원 (지은이), 안대회, 이현일 (옮긴이)
민음사
2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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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산문선 7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한국 산문선 7 (코끼리 보고서)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문화/문화이론 > 한국학/한국문화 > 한국인과 한국문화
· ISBN : 9788937415739
· 쪽수 : 496쪽
· 출판일 : 2017-11-24

책 소개

우리나라의 고전 명문을 총망라한 <한국 산문선>. 7권은 영조 후반에서 정조 치세 중반까지 약 40여 년간의 작품을 실었다. 사회와 문화 전반에서 자유롭고 활기찬 분위기가 넓게 퍼져 산문의 역사상 큰 전환이 일어난 시기이다.

목차

정조 연간

이광려(李匡呂)
고구마 보급(甘藷)
홍양호 판서에게(與洪判書漢師書)

채제공(蔡濟恭)
잃어버린 아내의 『여사서』(女四書序)
약봉의 풍단(藥峯楓壇記)
만덕전(萬德傳)

정범조(丁範祖)
청과 일본의 위협(淸倭論)
붕당의 근원(原黨)

정지순(鄭持淳)
석양정의 묵죽 그림(石陽正畫竹記)
겸재 정선 산수화론(謙齋畵序)

홍양호(洪良浩)
진고개 우리 집(泥窩記)
숙신씨의 돌살촉(肅愼氏石砮記)
침은 조광일(針隱趙生光一傳)
의원 피재길(皮載吉小傳)
진고개 신과의 문답(形解)

목만중(睦萬中)
베트남에 표류했던 김복수(金福壽傳)
수석에 정을 붙인 선비(磊磊亭記)

이규상(李奎象)
이 세계의 거시적 변동(世界說)
훈련대장 장붕익(張大將傳)
선비의 통쾌한 사업(贈趙景瑞序)

김종수(金鍾秀)
경솔한 늙은이의 문답(率翁問答)

홍낙인(洪樂仁)
삼청동 읍청정의 놀이(挹淸亭小集序)

곽씨 부인(郭氏夫人)
남편 김철근 묘지명(成均生員金公墓誌銘)

황윤석(黃胤錫)
덕행만큼 뛰어난 곽씨 부인의 문장(跋淸窓郭夫人藁略)

이종휘(李種徽)
위원루에 부치다(威遠樓記)
동래 부사를 배웅하며(送東萊府伯序)
대제학의 계보(文衡錄序)

홍대용(洪大容)
『대동풍요』 서문(大東風謠序)
보령의 기이한 소년(保寧少年事)

성대중(成大中)
유춘오 음악회(記留春塢樂會)
오랑캐의 월경을 막은 영웅들(江界防胡記)
운악산의 매사냥(雲岳遊獵記)
침실에 붙인 짧은 글(寢居小記)
창해 일사의 화첩(書滄海逸士畵帖後)

유한준(兪漢雋)
『석농화원』 발문(石農畵苑跋)

심익운(沈翼雲)
물정에 어두운 화가 심사정(玄齋居士墓志)

서직수(徐直修)
북악산 기슭의 대은암(大隱巖記)
내 벗이 몇이냐 하니(十友軒記)

박지원(朴趾源)
『녹천관집』 서문(綠天館集序)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
『능양시집』 서문(菱洋詩集序)
큰누님을 떠나보내고(伯姊贈貞夫人朴氏墓誌銘)
홍덕보 묘지명(洪德保墓誌銘)
울기 좋은 땅(好哭場)
코끼리 보고서(象記)
밤에 고북구를 나서다(夜出古北口記)
민속을 기록하다(旬稗序)

이영익(李令翊)
소를 타고 우계를 찾아가는 송강을 그린 그림(題騎牛訪牛溪圖)

강흔(姜俒)
부안 격포의 행궁(格浦行宮記)
서설을 반기는 누각(賀雪樓記)
김순만의 이런 삶(金舜蔓傳)

이언진(李彦瑱)
그리운 아우에게 1(寄弟殷美 一)
그리운 아우에게 2(寄弟殷美 二)

유경종(柳慶種)
마음속의 원림(意園誌)

이덕무(李德懋)
바둑론(奕棋論)
『맹자』를 팔아 밥을 해 먹고(與李洛瑞書九書 四)
문학은 어린애처럼 처녀처럼(嬰處稿自序)
겨울과 책(耳目口心書 二則)

이가환(李家煥)
효자 홍차기의 사연(孝子豊山洪此奇碑碣)
하늘의 빛깔을 닮은 화원(綺園記)

정동유(鄭東愈)
천하의 위대한 문헌 『훈민정음』(訓民正音)

이희경(李喜經)
중국어 공용론(漢語)

김재찬(金載瓚)
방아 찧는 시인 이명배(舂客李命培傳)

유득공(柳得恭)
발해사 저술의 의의(渤海考序)
일본학의 수립(蜻蛉國志序)
평화 시대의 호걸(送洪僉使遊北關序)

박제가(朴齊家)
재부론(財賦論)
나의 짧은 인생(小傳)
백탑에서의 맑은 인연(白塔淸緣集序)

이명오(李明五)
향(香) 자로 시집을 엮고(香字八十首序)

이안중(李安中)
인장 전문가(金甥吾與石典序)

이만수(李晩秀)
책 둥지(書巢記)

정조(正祖)
모든 강물에 비친 달과 같은 존재(萬川明月主人翁自序)
문체는 시대에 따라 바뀌는가(文體)

이서구(李書九)
바둑의 명인 정운창(棊客小傳)

정약전(丁若銓)
소나무 육성책(松政私議)

저자소개

박지원 (지은이)    정보 더보기
조선 후기의 탁월한 문장가이자 실학자다. 박사유(朴師愈)와 함평(咸平) 이씨(李氏) 사이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6세에 처사 이보천(李輔天)의 딸과 결혼했다. 장인에게는 《맹자》를, 처삼촌 이양천(李亮天)에게는 《사기(史記)》를 배워 본격적인 학문을 시작했다. 처남인 이재성(李在誠)과는 평생의 문우(文友) 관계를 이어 갔다. 청년 시절엔 세상의 염량세태에 실망해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고생했으며 이러한 성장 배경을 바탕으로 진실한 인간형에 대해 모색한 전(傳) 아홉 편을 지어 《방경각외전(放?閣外傳)》이라는 이름으로 편찬했다. 영조 47년(1771) 마침내 과거를 보지 않기로 결심하고 서울 전의감동(典醫監洞)에 은거하면서 홍대용,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을 비롯한 많은 젊은 지식인들과 더불어 학문과 우정의 세계를 펼쳐 갔다. 정조 2년(1778) 홍국영이 세도를 잡고 벽파를 박해하자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황해도 금천군(金川郡)에 있는 연암협(燕巖峽)으로 피신해 은둔 생활을 했다. 연암이라는 호는 이 골짝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정조 4년(1780)에 삼종형(三從兄)인 박명원(朴明源)의 연행(燕行) 권유를 받고 정사의 반당 자격으로 북경에 가게 되었다. 이때 건륭 황제가 열하에서 고희연을 치르는 바람에 조선 사신 역사상 처음으로 열하에 가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연행을 통해 깨달음을 확대한 연암은 여행의 경험을 수년간 정리해 《열하일기》를 저술했다. 정조 10년(1786) 유언호의 천거로 음사(蔭仕)인 선공감(繕工監) 감역(監役)에 임명되었다. 정조 13년(1789)에는 평시서주부(平市署主簿)와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역임했고, 정조 15년(1791)에는 한성부 판관을 지냈다. 그해 12월 안의현감에 임명되어 다음 해부터 임지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정조 임금이 문체를 타락시킨 장본인으로 《열하일기》를 쓴 연암을 지목하고는 남공철을 통해 순정한 글을 지어 바치라 명령했으나 실제로 응하지는 않았다. 정조 21년(1797) 61세에 면천군수로 임명되었다. 이 시절에 정조 임금에게 《과농소초(課農小抄)》를 지어 바쳐 칭송을 들었다. 1800년 양양부사로 승진했으며 이듬해 벼슬에서 물러났다. 순조 5년(1805) 10월 20일 서울 가회방(嘉會坊)의 재동(齋洞) 자택에서 깨끗하게 목욕시켜 달라는 유언만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선영이 있는 장단(長湍)의 대세현(大世峴)에 장사 지냈다. 박지원의 문학 정신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옛것을 본받되 변화를 알고 새롭게 지어내되 법도를 지키라”는 의미다. 그는 문학의 참된 정신은 변화의 정신을 바탕으로 창조적인 글을 쓰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비슷하게 되려는 것은 참이 아니며, ‘닮았다’고 하는 말 속엔 이미 가짜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연암은 억지로 점잖은 척 고상한 글을 써서는 안 되며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대상을 참되게 그려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그는 틀에 박힌 표현이나 관습적인 문체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를 지향했다. 나아가 옛날 저곳이 아닌 지금 여기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중국이 아닌 조선을, 과거가 아닌 현재를 이야기할 때 진정한 문학 정신을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연암의 학문적 성취와 사상은 《열하일기》에 집대성되어 있다. 《열하일기》에서 연암은 이용후생의 정신을 기반으로 청나라의 선진적 문물을 받아들여 낙후된 조선의 현실을 타개하자는 주장을 펼침으로써 북학파를 대표하는 학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연암은 《열하일기》 외에도 《방경각외전》, 《과농소초》,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 등을 직접 편찬했다. 연암의 유고는 그의 아들 박종채에 의해서 정리되었는데 아들이 쓴 〈과정록추기〉에 의하면 연암의 유고는 문고 16권, 《열하일기》 24권, 《과농소초》 15권 등 총 55권으로 정리되었다. 《열하일기》는 오늘날 완질은 2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암의 작품은 대부분이 문(文)이며 시(詩)는 50여 편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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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회 (옮긴이)    정보 더보기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과대학 학장을 맡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장과 한국한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2015년에 제34회 두계학술상을 받았고, 2016년에 제16회 지훈상 국학 부문을 수상했으며, 2023년에는 SKKU-Fellowship 교수로 선정되었다. 2024년에는 제38회 인촌상 인문·사회 부문을 수상하였다. 정밀하면서도 깊이 있는 사유를 바탕으로 옛글을 고증하고 해석해 왔으며, 담백하고 정갈한 문체로 선인들의 글과 삶을 풀어내 왔다. 지은 책으로 『한국시화사』, 『조선의 명문장가들』, 『담바고 문화사』, 『궁극의 시학』, 『천년 벗과의 대화』, 『벽광나치오』,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 『정조의 비밀편지』, 『선비답게 산다는 것』, 『18세기 한국한시사 연구』 등 다수가 있고, 옮긴 책으로 『채근담』, 『만오만필』(공역), 『해동화식전』, 『한국 산문선』(공역), 『완역 정본 택리지』(공역), 『소화시평』, 『내 생애 첫 번째 시』, 『추재기이』, 『북학의』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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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일 (옮긴이)    정보 더보기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에서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시인인 신위(申緯)를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언젠가 ‘조선 후기 한시사(漢詩史)’를 써 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꾸준히 18~19세기의 한시 작가들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명청 시대 중국 강남 지역의 문화와 학술에 관심을 두고 조선에 끼친 그들의 영향을 추적하고 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 부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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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옛것을 모방하여 글을 지어 마치 거울이 물건을 비추듯이 한다면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좌우가 서로 반대로 되는데 어떻게 비슷할 수 있겠는가?”
“그럼 수면이 물건을 비추듯이 하면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뿌리랑 가지 끝이 뒤집혀 보이는데 어떻게 비슷할 수 있겠는가?” ……
“그럼 끝내 옛것과 비슷하게 지을 수 없단 말인가?”
“도대체 왜 비슷한 것을 찾는가? 비슷한 것을 찾는 것은 참되지 않다는 말이지. 천하에서 서로 같은 것을 가리켜 반드시 꼭 닮았다고 말하고, 분간하기 어려운 것을 가리킬 때도 진짜에 매우 가깝다(逼眞)고 말하네. 그런데 진짜라느니 닮았다느니 말하는 것은 그 안에 가짜요, 다르다는 뜻이 실려 있네. 따라서 천하에는 이해하기 어려워도 배울 수 있고, 전혀 다르지만 서로 비슷한 것이 있네. 언어가 다른 수많은 사람과는 통역의 힘을 빌리면 의사를 소통할 수 있고, 전서(篆書) 예서(隷書) 해서(楷書)는 글자체가 다르나 모두 문장을 지을 수 있네. 왜 그렇겠나? 외형은 달라도 마음은 같기 때문일세. 이것으로 볼 때, 마음이 비슷한 것(心似)은 작가의 의도요, 외형이 비슷한 것(形似)은 겉모습이네.”
─ 박지원 「『녹천관집』 서문(綠天館集序)」


집 안에서 값나가는 물건이라곤 겨우 『맹자』 일곱 권뿐인데 오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이백 전에 팔아 그 돈으로 밥을 지어 실컷 먹었소. 희희낙락 영재(泠齋, 유득공(柳得恭))에게 가서 한껏 자랑을 늘어놓았더니 그도 굶주린 지 벌써 오래라, 내 말을 듣자마자 즉각 『좌씨전(左氏傳)』을 팔아 쌀을 사고 남은 돈으로 술을 받아 내가 마시게 했소. 이야말로 맹자 씨가 직접 밥을 지어 나를 먹이고, 좌구명 씨가 손수 술을 따라 내게 권한 것과 다를 바 없지 않겠소. 그래서 나는 맹자와 좌구명 두 분을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찬송했다오. 그렇다오. 우리들이 한 해 내내 이 두 종의 책을 읽는다고 해도 굶주림을 한 푼이나 모면할 수 있었겠소? 이제야 알았소. 독서를 해서 부귀를 구한다는 말이 말짱 요행수나 바라는 짓임을. 차라리 책을 팔아서 한바탕 술에 취하고 배불리 밥을 먹는 것이 소박하고 꾸밈없는 마음 아니겠소? 쯧쯧쯧! 그대는 어찌 생각하오?
─ 이덕무 「『맹자』를 팔아 밥을 해 먹고(與李洛瑞書九書 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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