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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산문선 1~9 세트 - 전9권

한국 산문선 1~9 세트 - 전9권

유몽인, 이규보, 서유구, 권근, 홍길주, 조식, 이천보 (지은이), 안대회, 이종묵, 정민, 이홍식, 장유승, 이현일 (옮긴이)
  |  
민음사
2017-12-08
  |  
16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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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산문선 1~9 세트 - 전9권

책 정보

· 제목 : 한국 산문선 1~9 세트 - 전9권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문화/문화이론 > 한국학/한국문화 > 한국인과 한국문화
· ISBN : 9788937415760
· 쪽수 : 4290쪽

책 소개

우리나라의 고전 명문을 총망라한 <한국 산문선>. 우리 고전의 부흥을 이끌고 있는 안대회, 이종묵, 정민, 이현일, 이홍식, 장유승 등 6인의 한문학자가 삼국 시대부터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한문 산문 중 사유의 깊이와 폭이 드러나는 작품을 선별·번역한 역작이다.

목차

한국 산문선 1~9권

저자소개

유몽인 (지은이)    정보 더보기
조선조 중기의 문장가. 자는 응문應文이고 호는 어우於于, 간암艮庵, 묵호자默好子이다. 1589년(선조 22)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간.이조참판 등을 지냈다. 인조반정 때 역적으로 몰려 아들 '약' 과 함께 처형당했다가 1794년(정조 18년) 신원되었다. 시호는 의정義貞. 그의 문장은 제재와 구상이 독창적이고, 의경이 참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집으로 <어우집>이 있으며, 야담집 <어우야담>은 수필문학의 백미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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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 (지은이)    정보 더보기
고려 무인정권 시기의 문신. 본관은 황려(黃驪). 첫 이름은 인저(仁氐)였는데 스물두 살 때 과거를 앞두고 꿈에 규성(奎星)을 만난 뒤 규보로 개명했다. 별명이 여럿 있는데 부친을 잃고 개경의 천마산에 우거하면서 스스로 백운거사(白雲居士)라고 불렀고, 노년에는 시, 거문고, 술을 미칠 정도로 좋아한다는 뜻인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으로 불리기도 했다. 흥이 나서 사물에 감각이 열리면 시벽(詩癖)이 있다고 할 정도로 병적으로 시를 썼다. 별명이나 시벽에서 알 수 있듯이 낭만적 기질이 농후한 시를 썼고 그런 삶을 살았다. 스물 둘에 국자감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진사시에 들었으나 관직에 나가지 못하다가 마흔에 최충헌의 모정에 불려가 「모정기(茅亭記)」를 지은 뒤 벼슬길이 열려, 일흔에는 최고위직인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른다. 문집으로 아들 이함이 편찬한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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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구 (지은이)    정보 더보기
자는 준평(準平), 호는 풍석(楓石)이며 본관은 대구이다. 대제학 보만재 서명응의 손자이며, 이조판서 서호수의 아들이다. 영조14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규장각 초계문신으로 발탁된 후 좌부승지, 성균관 대사성, 홍문관 부제학을 거쳐 사헌부대사헌, 예문관대제학, 형조판서, 호조판서, 병조판서에 제수되었다가 늦은 나이에 전라도관찰사, 수원부 유수를 역임하였다. 대표적인 경화세족 가문에서 태어나 다양한 학문을 깊이 있게 연구했으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가학을 이어 특히 농학(農學)에 큰 업적을 남겼다. 가문의 개방적인 학문 기풍과 방대한 장서의 열람, 뛰어난 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다방면에 식견과 경험을 쌓았다. 젊은 시절 정조의 치세 때에는 규장각에서 많은 편찬 사업에 참여했고, 방폐기간 동안의 여러 경험을 기반으로 한 시대를 대표하는 학자로 성장했다. 서유구가 지은 16개의 주제를 지(志)로 하여, 113권으로 구성된《임원경제지》는 농업, 목축, 어업, 양잠, 상업 등의 생산 전반과 의학, 음식, 주거, 선비가 알아야 할 일상 실용지식 등의 생활 전반을 담은 방대한 양의 생활 백과전서이다. 그 밖의 저술로는 정조의 명으로 조선에서 출판한 도서의 목판을 조사한《누판고》와, 전라도관찰사로 재직할 때는 기민을 구제하기 위해 고구마 재배법을 기록한 《종저보》를 간행하였다. 이 밖에도 개인 문집으로 《풍석고협집》, 《금화지비집》, 《번계시고》, 《금화경독기》와 전라도관찰사와 수원유수시절의 업무일지인 《완영일록》과 《화영일록》이 전한다. 임원경제연구소, 임원경제연구소는 고전 연구와 번역, 출판을 주요 목적으로 하는 사단법인으로 다양한 전공분야의 소장학자가 참여하여 《임원경제지》를 완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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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 (지은이)    정보 더보기
1352~1409.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학자로 초명은 진이고 자는 가원, 호는 양촌이다. 1368년 성균시에 합격, 1369년 문과에 급제했으며 우왕 때 예문관응교, 좌사의대부, 성균대사성, 예의판서 등을 역임했다. 1375년에는 정도전.정몽주와 함께 친명정책을 주장했다. 1390년 '윤이.이초의 옥'에 연루되어 익주에 유배되었고, 이때 <입학도설>로 길창부원군에 봉해졌다. 왕명으로 <동국사략>을 편찬했다. 성리학자이면서도 사장을 중시하여 경학과 문학을 아울러 연마했다. 경기체가인 <상대별곡>, <양촌집>, <오경천견록> 등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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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주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세기 초에 활동한 대표적인 문인으로 자는 헌중憲仲, 호는 항해沆瀣,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당대 저명한 학자요 문인이었던 연천 홍석주가 그의 형이고, 정조의 사위이자 뛰어난 시인이었던 영명위 홍현주가 그의 아우다. 그는 26세에 과거를 포기한 후 줄곧 문학에 침잠한다. 이로 인해 경세의 꿈은 제대로 발현되지 못했지만, 선비로서의 삶은 여전히 문학의 유효한 좌표였다. 그의 문학은 유학의 문학적 재현을 지향하는 고문古文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이후 다양한 장르 교섭과 여러 사우師友의 영향을 자양분 삼아 일변한다. 특히 세계를 기호로 치환하여 새로운 읽기를 시도함으로써 전대미답의 경지를 개척하는데,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숙수념孰遂念’의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지어지지 않은 글, 즉 조물주의 문장을 찾아 떠나는 홍길주 긴 문학 여행은 ‘숙수념’을 넘어 문장중원에서 다시금 이정표를 세우는데, 꿈과 상상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세계는 늘 미래를 향해 꿈틀된다. 그의 사유와 문학적 성취는 [현수갑고峴首甲藁], [표롱을첨 乙], [항해병함沆瀣丙函], [숙수념孰遂念] 등을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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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 (지은이)    정보 더보기
조식(曹植, 192∼232)은 자가 자건(子建)이고, 패국(沛國) 초현(譙縣) 사람으로 동무양현(東武陽縣)에서 조조(曹操)와 무선황후(武宣皇后) 변씨(卞氏) 사이에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해 겨우 열 살이 되었을 때 유가 서적과 제자백가를 섭렵하고, 시론(詩論)과 사부(辭賦) 수십만 언(言)까지 송독해 글을 잘 지었다. 건안 11년(206) 8월에 열다섯 살이 된 조식은 처음으로 아버지를 따라 원정을 시작했다. 건안 14년(209) 열여덟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아버지와 함께한 원정길을 끝내고 12월에 고향인 초현으로 돌아왔다. 건안 16년(211)에 조식은 평원후(平原侯)에 봉해졌고, 7월에는 업성에서의 유락 생활을 접고 종군을 자청해서 다시 아버지를 따라 서쪽 원정길에 올랐다. 2년 가까이 전쟁을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혼란스런 국면을 수습하고 일단 평화와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건안 19년(214)에 조식이 임치후(臨淄侯)로 옮겨 봉해졌는데, 이해에 조조는 손권을 토벌하러 원정길에 나서면서 조식으로 하여금 업성에 남아 이곳을 지키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것은 조식의 재능을 인정해 총애한 결과였다. 하지만 조식은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자기 단속에도 소홀하며 술을 절제하지 못해 조조에게 여러 차례 실망을 안겨 주었다. 10월에는 마침내 그의 형인 조비(曹丕)가 태자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기세등등했던 조식의 삶은 이때부터 백팔십도로 달라져 고난과 비애의 시련을 겪게 된다. 건안 25년(220) 정월에 조조가 낙양에서 병으로 죽자, 조비가 이어서 승상(丞相)에다 위왕(魏王)이 되었다. 즉위 후 조비는 조식의 절친한 친구인 정의(丁儀)와 정이(丁?)를 죽여 세력을 약화시켰다. 10월에는 한나라 마지막 황제인 헌제(獻帝)를 협박해서 양위하게 하고, 위(魏)나라를 세워 연호를 황초(黃初)라 했다. 제위에 오른 조비는 중앙 통치를 강화할 목적으로 제후들을 감시했고 정적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조식은 귀족 왕자의 신분에서 견성후(?城侯)로 봉해져 감시와 핍박을 감내해야 하는 요주의 인물로 바뀌었다. 황초 7년(226) 5월에 조비가 병으로 죽자 그의 아들인 조예(曹叡)가 제위를 계승해 명제(明帝)가 되었다. 이에 조식은 여러 차례 자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등용의 기회를 달라고 조예에게 상서를 올려 구애했다. 조예는 겉으로는 들어주는 척하면서 사실은 그에 대한 경계와 핍박 수위를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조비와 조예 부자의 2대에 걸친 압박 속에, 조식은 11년 동안 여섯 군데의 봉지를 옮겨 다녔는데 겉으로는 제후국 왕이었으나 실제로는 연금 상태의 죄수여서, 정치에 참여할 권리도 없었을 뿐 아니라, 친구나 형제와 마음대로 왕래할 자유도 없었다. 태화 6년(232) 진(陳) 땅의 겨우 네 개 현(縣)만을 다스리는 진왕(陳王)에 봉해진 후 11월에 조식은 병으로 사망했다. 향년 41세였다. 그의 시신은 동아의 어산(魚山)에 묻혔고, 시호로 ‘사(思)’를 하사받아 후대 사람들은 ‘진사왕(陳思王)’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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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보 (지은이)    정보 더보기
본관 연안(延安). 자 의숙(宜叔). 호 진암(晉菴). 시호 문간(文簡).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여 내시교관(內侍敎官)이 되었으며 1739년(영조 15) 알성문과(謁聖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1740년 정자(正字)가 되고 교리(校理) ·헌납(獻納) ·장령(掌令)을 거쳐 1749년 이조참판이 되었다. 후에 이조 ·병조 판서를 거쳐 1752년 우의정이 되고 같은 해 좌의정을 거쳐 1754년 영의정에 승진된 후 돈령부영사(敦寧府領事)로 전임했다. 1761년 재차 영의정이 되었으나 지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문집에 《진암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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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회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현재 문과대학 학장을 맡고 있다. 전통시대의 문화와 문헌을 학술적으로 엄밀히 분석하면서도 특유의 담백하고 정갈한 문체로 풀어내 독자들에게 고전의 가치와 의미를 전해왔다. 대동문화연구원장과 한국18세기학회 회장, 한국한문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고, 한국명승학회 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제34회 두계학술상과 제16회 지훈국학상, 2023년도 SKKU-Fellowship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한양의 도시인들』, 『조선의 명문장가들』, 『벽광나치오』, 『정조의 비밀편지』, 『궁극의 시학』, 『선비답게 산다는 것』, 『담바고 문화사』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채근담』, 『택리지』(공역), 『해동화식전』, 『한국산문선』(공역), 『소화시평』, 『북학의』, 『녹파잡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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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묵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로 있다가 2003년 자리를 옮겨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선비의 운치 있는 삶을 좋아하여 옛글을 읽고 스스로 즐거워 가끔 글을 쓴다. 우리 한시를 사랑하여 『한국 한시의 전통과 문예미』, 『우리 한시를 읽다』, 『한시 마중』 등을 내고, 조선 선비의 삶을 추적하여 『조선의 문화공간(1-4)』, 『조선시대 경강의 별서(1-3)』, 『부부』, 『알고 보면 반할 매화』 등도 낸 바 있다. 또 좋아하는 옛글을 번역하여 『부휴자담론』, 『누워서 노니는 산수』, 『사의당지』, 『글로 세상을 호령하다』, 『양화소록』 등을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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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지은이)    정보 더보기
한문학 문헌에 담긴 전통의 가치와 멋을 현대의 언어로 되살려온 우리 시대 대표 고전학자.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조선 지성사의 전방위 분야를 탐사하며 옛글 속에 담긴 깊은 사유와 성찰을 우리 사회에 전하고 있다. 저서로 연암 박지원의 산문을 살핀 《비슷한 것은 가짜다》 《오늘 아침, 나는 책을 읽었다》, 다산 정약용을 다각도로 공부한 《다산과 강진 용혈》 《다산 증언첩》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18세기 조선 지식인과 문헌을 파고든 《호저집》 《고전, 발견의 기쁨》 《열여덟 살 이덕무》 《잊혀진 실학자 이덕리와 동다기》 《미쳐야 미친다》 등이 있다. 이 밖에 청언소품집인 《점검》 《습정》 《석복》 《조심》 《일침》, 조선 후기 차 문화사를 총정리한 《한국의 다서》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 산문집 《체수유병집-글밭의 이삭줍기》 《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 어린이를 위한 한시 입문서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등 다수의 책을 지었다. 다산의 청년기와 천주교 신앙 문제를 다룬 《파란》 이후, 조선에 서학 열풍을 불러온 천주교 수양서 《칠극》을 번역해 제25회 한국가톨릭학술상 번역상을 수상했다. 서학 연구의 연장선으로 초기 교회사를 집대성한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를 집필해 제5회 롯데출판문화대상 대상을 받았다. 《역주 눌암기략》 《역주 송담유록》을 비롯해 서학 관련 주요 문헌의 번역과 주석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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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식 (옮긴이)    정보 더보기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국립안동대학교 한문학과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번역한 책으로 『정유각집』(공역), 『국역 관역록』(공역), 『국역 북경록』(공역), 『국역 이기헌 연행일기』(공역), 『한국산문선』(공역), 『국역 천사대관 숭정병자조천록』, 『명재선생언행록』(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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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승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을 거쳐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일일공부》,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 《조선잡사》(공저), 《하루한시》(공저), 《동아시아의 문헌교류》(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서경시화 : 평양의 시와 인물들》, 《동국세시기》, 《한국산문선》(공역) 등이 있다.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으로 한국출판문화상 편집상, 《동아시아의 문헌교류》로 한국출판학술상 우수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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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일 (옮긴이)    정보 더보기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에서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시인인 신위(申緯)를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언젠가 ‘조선 후기 한시사(漢詩史)’를 써 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꾸준히 18~19세기의 한시 작가들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명청 시대 중국 강남 지역의 문화와 학술에 관심을 두고 조선에 끼친 그들의 영향을 추적하고 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 부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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