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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37454806
· 쪽수 : 292쪽
책 소개
목차
1부
『작은 아씨들』과 절인 레몬의 진실 9쪽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와 피 묻은 추수감사절 16쪽
『컬러 퍼플』과 비스킷, 그리고 소울 푸드 25쪽
『채식주의자』와 생각보다 멀지 않은 채식의 시대 39쪽
2부
『영원한 이방인』과 황색의 위험 49쪽
『아메리카나』와 미국식 순진함 그리고 부끄러움 65쪽
『카스테라』와 어느 냉장고의 재탄생 81쪽
피 묻은 만두와 루쉰의 「약」 85쪽
「칼자국」과 눈 오는 날 칼국수의 기억 91쪽
3부
음식으로 읽는 하루키 원더랜드 97쪽
오이 먹는 이야기, 혹은 10개의 키워드 108쪽
4부
『82년생 김지영』과 성차별로 차린 밥상 143쪽
『노인과 바다』, 또는 노인을 위한 참치는 없다 157쪽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와 리예트 ‘소스’ 170쪽
어느 집사의 『남아 있는 나날』 175쪽
5부
『이세린가이드』, 가짜의 진짜 이야기 185쪽
초콜릿 성과 『초콜릿 전쟁』 193쪽
『먹는 존재』, 또는 먹는 ‘존재’에서 ‘먹는’ 존재로 202쪽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의 눈물 젖은 흑빵 209쪽
『모비 딕』과 고래 잡는 이야기 217쪽
『바늘 없는 시계』와 코카콜라 232쪽
6부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 -숨겨진 옥수수의 세계 249쪽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그 뜨거운 멕시코 요리 257쪽
『바베트의 만찬』 생중계 266쪽
끝맺는 말 285쪽
참고한 책들 288쪽
저자소개
책속에서
이런 사정을 알고 나면 추수감사절이라는 명절과 거대한 칠면조로 한 상 떡 벌어지게 차리는 식사가 영 마뜩잖게 여겨진다. 원주민은 지치고 굶주린 백인들에게 음식을 나눠 주는 선의를 베풀었지만 철저하게 배신당했다. 은혜를 원수로 갚았으니 배은망덕이라는 사자성어가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상황이 없다.
미국의 추수감사절 식사를 맛보니 그들도 명절에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딱히 크게 맛있지 않은 음식을 단지 명절이라는 이유만으로 먹는 것. 물론 먹어 보기 전까지는 호기심이 없지 않았다. 미국 생활 첫 해였던 2002년 가을, 나는 설계 스튜디오의 급우들에게 물어보았다. 나 옛날부터 추수감사절 칠면조 맛이 정말 궁금했는데, 어때? 한 명이 심드렁하게 답해주었다. 닭고기 있잖아, 그거보다 더 퍽퍽해.
조리도 퍽퍽함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할 수밖에 없다. 부피도 큰데 상징성을 깰 수 없으므로 반드시 통째로 익혀야만 하니, 웬만한 가정이라면 오븐 말고는 답이 없다. 요즘은 우리네 시장 통닭과 비슷하게 칠면조를 통째로 튀기는 게 유행이기는 하다. 집도 마당도 큰 미국에서나 가능한 조리법인데, 그나마도 해동이 안 된 칠면조를 냅다 끓는 기름에 담가서 폭발하는 사고가 왕왕 벌어진다. 차가운 칠면조 탓에 기름이 끓어 올라 화로의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이다. 유튜브에서 ‘칠면조 폭발turkey explosion’으로 검색하면 (튀르키예에서 벌어진 폭발 사고와 더불어) 많은 영상을 찾을 수 있다.
비스킷은 미국, 특히 남부에서는 식사빵이다. 단맛이 스콘만큼 두드러지지 않고 주식에 곁들이거나 소시지 패티 등을 끼워 샌드위치로 먹는다. 형태도 확연히 달라서 스콘은 쐐기 모양이고 비스킷은 둥글다. 별 차이 아닌 것 같지만, 아무도 쐐기 모양으로 구운 쇼트브레드를 비스킷이라 부르지 않고, 스콘을 구워 놓고 비스킷이라 우기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번역의 의사 결정은 정말 어안이 벙벙했다. 생각해 보라. 비스킷을 스콘이라 부르는 바람에, 삶에 찌들어 살던 20세기 초 딥 사우스 흑인이 갑자기 영국 음식을 먹게 돼 버렸다. 사소하다고도 여길 수 있는 음식 하나 때문에 번역된 소설에 감정 이입이 힘들어질 수 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