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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세계사 일반
· ISBN : 9788939207158
· 쪽수 : 1248쪽
· 출판일 : 2014-06-13
책 소개
목차
한국어판 서문
미국판 서문
서론 : 삶과 죽음, 사랑과 돈
1부. 고대인과 근대인 : 축구와 근대 스포츠의 탄생, 시작부터 1914년까지
01 그림자를 쫓아서 : 축구 이전의 축구사
02 가장 단순한 경기 : 영국과 근대 축구의 탄생
03 완전히 다른 근사한 인생 : 산업시대의 축구와 영국의 노동계급, 1888~1914
2부. 민중의 경기 : 축구와 제국 그리고 산업, 1870~1934
04 배반의 제국 : 세계적 축구의 성장과 그에 대한 저항
05 위대한 경기와 비공식 제국: 축구의 국제적 확산, 1870~1914
06 보수는 더더욱 오르고, 경기는 계속되고 : 세계 축구의 상업화, 1914~1934
07 게임의 법칙 : 국제 축구와 국제 정치, 1900~1934
3부. 아름다운 경기 : 축구와 20세기, 1934~1974
08 엘도라도로 가는 길 : 라틴아메리카의 축구, 1935~1954
09 삶의 경기, 죽음의 경기 : 전쟁과 평화 시기의 유럽 축구, 1934~1954
10 악마와 천사 : 라틴아메리카의 축구, 1955~1974
11 마력과 영광 : 유럽의 고도 산업 시기의 축구, 1966~1974
12 누가 센지 두고 봐 : 아프리카의 축구, 1900~1974
4부. 무너져 내리다 : 장기 호황 이후의 축구, 1974~1999
13 뒤집혀진 세상 : 주앙 아벨란제와 FIFA, 그리고 세계 축구의 변모
14 이런 것이 축구라면 없애버리자 : 유럽의 위기, 1974~1990
15 군사작전 : 군부 통치하의 라틴아메리카 축구, 1974~1990
16 축구와 허기진 배 : 아프리카, 1974~1990
5부. 유일한 경기 : 축구와 역사의 종말, 1990~2006
17 거울 나라의 기이한 축구 : 유럽, 1990~2006
18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위기 : 아메리카 대륙의 축구, 1990~2006
19 고속개발 : 축구와 아시아의 새로운 산업혁명
20 작은 축복 : 탈냉전기 아프리카의 축구, 1990~2006
결론 : 세계의 끝에서 본 축구
미주
참고문헌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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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책속에서
놀라운 공백이다. 공식적인 역사에는 축구가 없다. 오늘날의 역사 교과서는 축구를 언급하지 않는다. 축구가 항상 집단 정체성의 원초적 상징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나라들에서조차 지나가는 정도로도 언급하지 않는다.
나는 놀이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놀이의 양식이 존재의 방식이다. 그것이 개별 공동체의 고유한 모습을 드러내고, 남과 다를 수 있는 권리를 확인해준다.
놀이하는 모습을 말해다오. 그대가 누구인지 맞추어 볼테니.
_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우루과이의 소설가)
그런데 도대체 왜? 축구 경기가 사회구조를 바꾸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포괄적이라 한들 어떤 승리도 권력의 균형관계를 움직이거나 부와 지위의 실제적 배분을 바꿀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은 영광 때문이다. 승리, 나아가 멋진 승리 때문이다. 승리와 더불어 가장 빠르고, 가장 영리한 존재, 즉 최고가 되기 때문이다. 호각 소리와 함께 축구 경기가 시작되는 순간 돈과 권력, 지위와 명성, 그리고 역사는 그라운드 밖으로 물러난다. 그러나 승패가 갈리는 스포츠계의 끝없는 투자 경쟁 속에서 영광을 도모하자면, 하다못해 영광의 기회라도 도모하자면 돈을 지출하고 생각을 짜내고 계획을 세워야만 한다. 선수들에게 축구화 살 돈을 처음으로 제공해야 했던 랭카셔의 공장주로부터 브라질의 국가대표팀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나이키의 예들이 잘 말해주듯, 승리를 추구하자면 주저 없이 현금을 내놓아야 했다. 그랬기에 축구는 돈의 출처에 대해 지나치게 까다로울 수 없었고, 실제로도 그러지 않았다. 돈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더 원초적인 정치적 수단이 동원되었다. 권력, 권위, 위협, 폭력이 선수들을 모았고, 스타디움을 지었으며, 경기 결과를 결정했다. 축구는 (축구로부터 자기 몫의 영광을 빌리거나 훔치고자 했던) 상상 가능한 모든 종류의 정치 기관과 야만적 권력에 봉사했고, 그로부터 혜택을 받았다.
- 22쪽, '서론 : 삶과 죽음, 사랑과 돈' 中
한국의 성장은 권위주의 정권이 추진한 고속발전의 빛나는 사례이다. 한국의 2002년 월드컵 개최 신청을 두고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주앙 아벨란제 FIFA 회장은 1980년대 중반 월드컵은 아시아에서도 개최될 것이며, 만일 그렇게 된다면 개최지는 일본이 될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 바 있었다. 2002년 월드컵의 개최국 선정은 1996년에야 결정될 예정이었지만 일본은 아벨란제의 언질에 자극받아 일찍부터 유치위원회를 조직해 이 대규모 국제행사를 위해 오랜 기간 준비를 했다. 한국은 일본보다 2년 늦게 유치위원회를 꾸렸다. 일본의 월드컵 유치안은 일본 축구협회의 샐러리맨 관료들에 의해 마련되었고, 그 핵심 전략은 일본의 잘 갖추어진 사회기반시설 및 축구시설을 홍보하는 것이었다. 반면 한국은 중량감 있는 정재계의 엘리트들을 동원했으며, 외교전을 벌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유치위원회를 대표하는 인사로는 현대중공업의 회장 정몽준, 럭키금성의 회장 구평회, 부총리인 이홍구가 두드러졌다. 이 부총리가 북한의 최고 지도자인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도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대신 1994년 월드컵 결승전을 축하하는 연회에 참석할 만큼 한국인들에게 월드컵 유치는 총력전을 펴야 하는 중요한 사안이었다. (중략) 한국인들은 한국에서 월드컵이 개최될 경우 평양에 한두 경기를 할당함으로써 북한이 고립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들은 월드컵 개최권이 일본으로 가게 된다면 이 전범 국가가 2차 세계대전 중에 한국과 중국 및 아시아 각국에서 저지른 만행에 대해 침묵을 고수하거나 무성의하게 사과하는 것을 용인하는 것이라고 시사했다. 승패를 가를 투표 시간이 다가왔을 때 유럽은 한국을 지지했고, 아벨란제와 그의 동조자들은 일본을 지지했다. 양국 모두 신청안이 훌륭했고 세력도 막상막하여서, 어느 쪽이든 유치에 실패했을 때 국가적 위신에 상당한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미 2000년 유로대회에서 UEFA가 승인한 선례가 있는) 공동개최의 가능성이 제기되자 두 경쟁 국가는 모두 그 제안을 환영했다.
- 1071~1072쪽, '19장, 고속개발 : 축구와 아시아의 새로운 산업혁명'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