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이태진 교수의 한국 근현대사 특강

이태진 교수의 한국 근현대사 특강

이태진 (지은이)
지식산업사
30,0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28,500원 -5% 0원
1,500원
27,000원 >
yes24 로딩중
교보문고 로딩중
11st 로딩중
영풍문고 로딩중
쿠팡 로딩중
쿠팡로켓 로딩중
G마켓 로딩중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서점 유형 등록개수 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책 이미지

이태진 교수의 한국 근현대사 특강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이태진 교수의 한국 근현대사 특강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일제치하/항일시대
· ISBN : 9788942391417
· 쪽수 : 320쪽
· 출판일 : 2025-10-20

책 소개

우리나라가 자기힘[自力]으로 근대국가(近代國家)를 시작한 역사가 지금(2025년)으로부터 1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주장이 책으로 나의 학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목차

책 머리에: ‘130년 국민국가 역사’를 제창하며 _4
감사의 말씀 _13
감고사感告辭 _16

제1부 근대 왜곡의 뿌리
01 조선총독부, 《고종실록》 《순종실록》 편찬에 1만여 종 자력 근대화 관련 ‘공문서’ 자료 외면했다 _22
02 130년 전 수립한 메이지 천황제 국수주의, 한·일 파트너십에 아직도 걸림돌 _31
03 조선은 ‘평화공존’, 일본은 ‘주변국 선점’, 국시가 달랐다 _39

제2부 근대의 여명
04 궁궐을 나온 탕평 군주들, 백성을 직접 만나 의견 물었다 _48
05 탕평정치가 잉태한 《심청전》 《춘향전》, 새로운 역사 신호였다 _57
06 정조가 꿈꾼 만민평등의 ‘공화’ 세계 _65

제3부 고종 즉위, 세도정치부터 없앴다
07 ‘경화사족’의 북학파 정치 바람, 혁신을 꾀하다 _74
08 ‘여걸’ 조대비의 개혁 정책, 흥선대원군의 치적으로 둔갑되다 _82
09 대원군, 조대비가 복원한 왕정 체제 무시하다 7년 만에 실각 _90
10 건청궁에 실은 청년 군주 고종의 푸른 꿈 _98

제4부 개국•개항에 드리운 암운과 서광
11 1875년 강화도에 나타난 ‘운요호’, 일본 국기 달지 않았다 _108
12 “조선이 미국과 친해져선 안 돼!” 청·일의 조선 개국 정책 방해 _117
13 고종, ‘세계 초유로’ 영어 시험 직접 주관한 임금이었다 _125
14 “사대당은 수구, 독립당은 개화” 일제가 정치 공작으로 구분한 프레임 _134

제5부 청일전쟁과 왕비 시해 사건
15 1894년 일본군, 청과 싸우기도 전에 경복궁 담부터 넘었다 _ 144
16 ‘갑오개혁’의 탈을 쓴 일제 군사 침략의 광란 _153
17 일본군 민완 장교 8명, 민간인으로 변복하고 왕비 시해 지휘 _161
18 왕비 사진을 궁녀로 둔갑시킨 사연 _169

제6부 ‘국민’ 창출과 대한제국 수립
19 동학군, “악한 신하 타도가 목적” 왕을 적으로 보지 않았다 _178
20 국민 독본으로 창간한 《독립신문》, 서재필 창간이 아니었다 _187
21 경운궁(현 덕수궁)을 중심으로 한 방사상 도로 설계, 당시 도쿄에서도 못 한 일 _194
22 명성황후 국장, 황후 추존으로 한을 달래다 _205
23 농지정리사업으로 상승한 국민소득, 대한제국을 밝게 비췄다 _ 213

제7부 침략자에 대한 규탄과 시위
24 “슬프다, 섬 오랑캐가 팔도를 삼켰다” 고종은 글로 울었다 _ 224
25 ‘지식인’ 안중근, 한·중·일 넘어 세계평화의 길 제시했다 _ 233
26 천도교의 근왕 국민사상, 3·1 독립만세운동 이끌다 _241
27 순종 황제, 과연 통감 이토의 꼭두각시였나? _250

제8부 ‘근대’가 있는 현대사를 향하여
27 세계 경제 10위·민주화·산업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_ 274
28 식민지 근대화론, 대한제국 자력 근대화 성과 부정 _283
29 식민 지배 책임 얽힌 배상 문제, 일본이 ‘양보’하는 것이 순리 _290

부록
《교육조칙》 전문 _300
참고문헌 _305

저자소개

이태진 (엮은이)    정보 더보기
1943년생. 서울대학교 학부와 대학원 과정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1961~1969), 육군사관학교 교수부 교관으로 3년 병역의무를 마친 뒤 경북대학교 교양학부와 사학과에서 전임강사로 교단에 섰다. 1977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로 전출, 부임하여 2009년까지 재임하였다. 재임 중 인문대학 학장으로 선출되고(2006~2008) 정년 퇴임 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7년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으로 선임. 1868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로 유출된 외규장각 의궤 도서 반환 운동을 주도하여 2011년 귀환에 성공,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조선시대의 사회사, 정치사를 연구하다가 1992년 1905년 ‘보호조약’을 비롯한 국권 피탈 관련 문건에 많은 결함, 결격 사항이 있는 것을 발견, 근대 한일관계사 특히 일본의 ‘한국병합’ 강제의 불법성에 관한 연구에 종사하여 여러 국제학술 행사를 개최하거나 참가하였다. 고종 시대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 탈피에도 노력하여 《고종 시대의 재조명》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일본의 한국병합 강제 연구; 조약 강제와 저항의 역사》 《끝나지 않은 역사: 식민 지배 청산을 위한 역사 인식》 등의 저서를 출간하였다. 2022년 《일본제국의 ‘동양사’ 개발과 천황제 파시즘》 《일본제국의 대외침략과 ‘동방학’ 변천》을 저술하여 한국 근현대사를 보는 시야를 넓혔다. 한편, 《조선왕조실록》에서 자연 이상 현상 기록 2만 5,300여 건을 뽑아 이를 분석, 1490년부터 1760년까지 270년 동안이 이른바 소빙기(little ice age)의 재난 현상기인 것을 국제 천문학 저널을 통해 처음 밝혔다.(1998) 이에 근거하여 《새 한국사》(까치)에서 조선 중기의 역사를 천재지변 극복의 역사로 조명하였다. 지금까지 학계에 제출한 논문은 300여 편, 저서는 30여 편에 달한다.
펼치기

책속에서

나는 군주 고종이 1894년 후반기 동학농민군들이 벌인 처절한 항일 투쟁에 대한 무한한 신뢰 속에 서민 대중이야말로 ‘보국안민’의 주체 곧 국민이 될 자격이 있다는 판단으로 이 조칙을 내린 것으로 해석했다. 바로 앞서 모든 공문서를 한문이 아니라 ‘국한문 혼용체’로 한다고 선언한 것도 국민으로서 서민 대중을 위한 새로운 문자 세계 창출이었다. 1896년 4월 7일 창간된 《독립신문》도 서재필 개인이 간행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국민창출이란 정부방침 즉 서민 대중이 국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새로운 지식 배양을 위한 매 채로 복수의 정부 관계자가 군주의 방침에 따라 이루어진 사실도 새롭게 밝혔다. 서재필은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군주 고종은 국민 창출에 필요한 이런 기본 조건을 갖추면서 1897년 10월 11일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 출범과 동시에 토지(농경지) 측량과 토지 소유권 증서발급 사업을 일으켜 농민의 경제기반 안정과 국가 세수稅收를 근대적인 구조로 바꾸는 사업을 벌인 것도 국민 창출의 경제적 기반 확보로 해석하였다. ‘광무 양전光武量田’ 사업에 대한 한걸음 더 나간 해석이다.
-‘책 머리에’ 중


한국사는 일제 치하의 치명적 손실에도 불구하고 ‘국학 붐’ 이후 빠르게 성장하였다. 《조선왕조실록》(이하 《실록》)이 신빙성이 높은 사료로서 연구자들에게 영인본으로 일찍 제공된 것이 빠른 성장의 동력이 되었다. 《실록》은 한 왕의 시대가 끝나면 그 재위 기간에 생산된 각급 기관의 기록을 모아 취사선택하여 편년체로 정리하여 후 대에 그 왕의 정사를 생생하게 읽을 수 있게 한 편찬물이다. 편찬이 완료되면 네 닷 벌을 활자로 인쇄하여 사고史庫에 비치하였다. 조선왕조 《실록》은 편찬 뒤 어떤 후손 왕도 볼 수 없는 원칙을 세워 편찬의 객관성을 보장하였다. 중국 역대 왕조의 《실록》은 편찬 후 공개가 허용되어 기록의 객관성이 훨씬 떨어지고 분량도 우리 것에 미치지 못한다. 한마디로 조선왕조는 왕이 바뀔 때마다 근대성을 지닌 ‘사료 편찬’ 사업을 해온 세계 역사에서 유일한 나라였다.


임진왜란 때 뒷정리가 되지 않아 300년 뒤 청일전쟁이 일어났다는 말이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침략 전쟁에 대한 조 선·명 두 나라의 응징이 없었던 것이 재침을 가져왔다는 뜻이다. 특파대사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 그는 1905년 〈보호조약〉을 강제하고 돌아가다가 시모노세키에 도착하자마자 조선 침략의 절대성을 가르쳐준 스승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1859]의 묘소에 측근을 보내 보고를 올렸다. 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内正毅, 1852~1919], 그는 1910년 8월 29일 ‘한국 병합’ 공포 뒤, 통감 관저에서 부하들과 축배를 올리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여, 당신이 못 이룬 것을 우리가 이뤘습니다”고 외쳤다. 응징과 심판이 없는 역 사의 무서움을 느끼게 한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이 포스팅은 제휴마케팅이 포함된 광고로 커미션을 지급 받습니다.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