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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국의 대외 침략과 동방학 변천

일본제국의 대외 침략과 동방학 변천

(외무성 관리 ‘동방학’에서 문부성·제국대학 ‘대동아학’까지, 2023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선정도서)

이태진 (지은이)
사회평론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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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국의 대외 침략과 동방학 변천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일본제국의 대외 침략과 동방학 변천 (외무성 관리 ‘동방학’에서 문부성·제국대학 ‘대동아학’까지, 2023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선정도서)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일제치하/항일시대
· ISBN : 9791167070531
· 쪽수 : 452쪽
· 출판일 : 2022-05-16

책 소개

일본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8권. 일본의 쇼와 시대 외무성 산하 동방문화학원(1929)에서부터 교토제대 인문과학연구소(1939)와 도쿄제대 동양문화연구소(1941)까지 ‘동방학’과 ‘대동아공영권’ 이데올로기 개발에 앞장선 기관의 실체를 파헤친 연구서이다.

목차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를 출간하면서
책머리에

프롤로그 현대 일본 역사학의 새로운 출발을 바라며

제1부 외무성 관리 ‘동방학’의 등장


1장 중국과의 문화사업, 외무성이 나선 사연
1. 1920년대 국제연맹 출범과 일본제국의 국제협조 외교
2. 1920년대 ‘국제협조 외교’의 부침
3. 국제연맹 ‘5대국’ 체제의 행운과 「21개조 요구」 강행
4. 대륙 침략 구상, ‘대지문화사업’ 추진
1) 재원 ①: 의화단 사건 배상금
2) 재원 ②: 「21개조 요구」 이권
3) 대지·대만 문화사업의 침략주의

2장 ‘대지문화사업’의 중일 협동 노선 좌절
1. 중일 협동의 사업 구상
2. ‘동방문화사업’으로 명칭 확정
3. 다나카 기이치 내각의 침략주의

3장 1927~1928년 중일 무력 충돌: 북벌 개시와 산둥 출병
1. 남만주철도 경영을 둘러싼 중일 간의 갈등
2. 장제스 국민군의 북벌 개시
3. 일본 정부의 산둥 출병 결정과 지난 사건
1) 제1차 산둥 출병과 동방회의
2) 제2, 3차 산둥 출병과 지난 사건
4. 일본 관동군의 야망과 장쭤린 폭살 사건
1) 관동군의 활동 범위 확대 도모: 만철부속지 바깥으로 나가기
2) 장쭤린 폭살 사건과 그 영향

4장 1929년 일본 ‘단독’ 사업 결정과 동방문화학원 창설
1. 동방문화학원 도쿄연구소 창설 경위
2. 동방문화학원 교토연구소 창설 경위

제2부 만주국 건국 후의 ‘동방학’ 변화

5장 1932년 만주국 건국과 대만·북지 문화사업
1. 만주국 건국과 ‘대만문화사업’
1) 1931~1932년 만주사변과 만주국 건국
2) 군부 폭주 정국 속의 ‘대만문화사업’ 기획
3) ‘대만문화사업’ 방안 수립
4) 1933년 현재 문화사업 실행 상황
5) ‘일만문화협회’ 결성
6) 만주국 황제의 일본 내방과 ‘일만문화’ 특별 학술행사
2. 화북분리정책과 ‘북지 신사업’
1) 화북 분리를 위한 조사활동: 만철경제조사회의 협력
2) 화북분리정책 모색과 ‘북지 신사업’ 수립

6장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외무성 ‘대지문화사업’ 관리체제 변화
1. 중일전쟁 개시와 국가 통제체제 강화
1) 중국의 내분, 국공합작의 추이와 시안 사건
2) 루거우차오 사건과 중일전쟁 발발
3) ‘국체명징운동’과 국가주의 통제체제의 질주
2. 중일전쟁 이후 ‘대지문화사업’의 변화
1) ‘제2의 만주국’을 노린 화북분리정책, 대화 문화공작
2) 1938년 동방문화학원 도쿄·교토 연구소의 분리

제3부 ‘대동아전쟁’과 ‘동아학’ ·‘대동아학’

7장 ‘대동아전쟁’과 흥아원·대동아성
1. 중일전쟁, 대동아전쟁과 군국주의 체제 강화
2. 흥아원의 ‘동방문화사업’ 관장, 점령지 통치 실용주의
3. 대동아성 발족과 ‘동방문화사업’의 실종

8장 도 교·교토 제국대학의 문부성 지원 ‘동아·’‘대동아’ 연구
1. 중일전쟁 시기 양국 화평파 동향과 ‘동아 신질서’
2. 교토제국대학의 인문과학연구소 창설 경위와 연구 목표
1) 1939년 인문과학연구소 창설 경위
2) 인문과학연구소의 연구 목표 ‘동아 신질서’
3) 교토 동방문화연구소의 말로
3. 도쿄제국대학의 동양문화연구소 창설과 연구 과제
1) 1941년 동양문화연구소 창설 경위
2) 동양문화연구소의 확대 ‘동양’ 연구

제4부 연구 인력의 연구 성향 분석: 「교육칙어」에서 ‘쇼와유신’까지

9장 동방문화학원과 「교육칙어」 세대
1. 1880년대 국가주의 역사교육 체제와 「교육칙어」
2. 동방문화학원과 제국대학 출신 제1세대
3. 도쿄연구소 평의원 인력의 주요 행적
4. 교토연구소 평의원 인력의 주요 행적

10장 동방문화학원과 「교육칙어」 세대의 학문 세계
1. 침략주의 ‘동방학’의 표본 인물 사례
1) 한국사 유린의 선봉 시라토리 구라키치
(1) 가쿠슈인의 침략주의 역사교육 체제
(2) 시라토리 구라키치의 한국사 ‘유린’
2) 세키노 다다시의 조선반도 유적 조사 의혹
2. 제국 관학에 등 돌린 도리이 류조
1) 일본의 뿌리를 찾아 타이완에서 쿠릴열도까지
2) 다이쇼 데모크라시 속 지자체 지원 유적 조사 발굴
3) 주변 나라와 공존하는 일본인, 일본 문화의 추구
4) 제국 ‘관학’의 중심 도쿄제국대학 사임
5) 다시 해외로 향한 학구열, 요대 문화 연구 몰두

11장 ‘쇼와유신’ 세대와 어용 ‘동아학’
1. ‘쇼와유신’과 황도주의
1) 청년 장교들의 쿠데타와 ‘쇼와유신’ 외침
2) 쇼와 천황의 ‘직접 정치’와 정당정치 충돌
3) 언론인 도쿠토미 소호의 황도주의 제창
2. 쇼와 시대의 전쟁과 어용 ‘동아학’
1) 교토·도쿄 양 제국대학의 ‘동아학’
2) 쇼와 천황 조칙의 ‘동아’
3) ‘쇼와유신’ 세대의 침략주의 황도 역사교육
(1) 인문과학·동양문화 연구소 인력의 세대 조건
(2) ‘쇼와유신’ 세대의 중등 역사교육
(3) 군사학교의 세계 제패 역사교육

에필로그 천황제 파시즘의 행로와 함께한 도쿄·교토 제국대학의 동방학

부록 동방문화학원 도쿄·교토 연구소 주요 인력 정보 모음
부록 1-1. 동방문화학원 도쿄연구소 평의원 이력 및 업적
부록 1-2. 동방문화학원 교토연구소 평의원 이력 및 업적
부록 2-1. 동방문화학원 도쿄연구소 평의원 인력 분석
부록 2-2. 동방문화학원 교토연구소 평의원 인력 분석

본문의 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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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이태진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 학부 및 대학원 사학과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경북대학교 교양학부 및 사학과를 거쳐 1977년에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 부임하여 2009년까지 재임하였다. 조선시대 사회사, 정치사를 연구하다가 1992년부터 근대 한일관계사, 특히 일본의 ‘한국병합’ 강제의 불법성에 관한 연구에 종사하였다. 근대사와 한일관계에 관한 저서로 『고종시대의 재조명』,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일본의 한국병합 강제 연구: 조약 강제와 저항의 역사』, 『끝나지 않은 역사: 식민지배 청산을 위한 역사인식』 등이 있다. 한편, 『조선왕조실록』에서 자연 이상 현상 기록 2만 5,300여 건을 뽑아 이를 분석하여 1490년부터 1760년까지 270년간이 이른바 소빙기(little ice age)의 재난 현상기란 것을 국제 천문학 저널에 보고하고, 『새 한국사』에서 조선 중기의 역사를 천재지변 극복의 역사로 조명하였다. 진단학회 회장, 역사학회 회장, 학술단체연합회 회장, 한일역사가회의 한국 측 운영위원장, 국사편찬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2006년에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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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동방문화학원은 1920년대 의화단 사건의 배상금과 「21개조 요구」의 권익금을 근거로 출범하여 외무성 소관이 되었다. 당초에 일본 외무성은 ‘대지(對支)문화사업’으로 이름을 붙였으나 중국 측이 ‘지나(支那)’란 비칭에 반발하여 ‘동방문화사업’으로 바꾸었다. 이 타협이 이루어진 시점에 산둥 출병이 단행되는 바람에 중국 측이 불참을 선언하여 양국 공조 방식은 깨어지고 이름만 동방문화학원으로 남았다. 동방문화학원이란 이름은 침략주의 본색을 감추는 데도 편한 점이 있었다. 어떻든 이러한 침략주의 관부 연구기관을 빼놓고 일본제국의 역사학 또는 동양학을 말할 수는 없다. ― 「프롤로그」 중에서


일본의 대외 팽창정책은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요시다 쇼인의 ‘주변국 선점론’에 뿌리를 두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를 근거로 「21개조 요구」를 창출하여 산둥반도, 남만주, 동부 내몽골 진출의 기회를 노렸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거쳐 남만주 일대에 교두보를 구축한 일본제국은 10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을 맞아 연합국의 목표와는 무관하게 대일본제국의 숙원을 달성하는 길을 걸었다. ― 「1장 중국과의 문화사업, 외무성이 나선 사연」 중에서


일본 외무성은 도쿄와 교토의 연구소에 새로운 연구 방침을 제시하면서 두 연구소와 관계가 깊은 도쿄, 교토 두 제국대학에 종래의 연구를 이관할 수 있을지 타진하였다. 이에 대해 두 연구소는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중략) 외무성은 이런 서로 다른 반응에 1원 2연구소 체제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두 연구소의 분리·독립을 결정하여 1938년 그때까지의 동방문화학원은 해체되어 도쿄연구소는 ‘(신)동방문화학원’, ‘교토연구소’는 ‘동방문화연구소’로 개편되었다. ― 「6장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외무성 ‘대지문화사업’ 관리체제 변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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