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일본사 > 일본사 일반
· ISBN : 9788946052192
· 쪽수 : 328쪽
책 소개
목차
한국어판 서문
증보3판에 붙이며
책머리에
01 유도·탈아·협박의 계보 후쿠자와 유키치
02 ‘신앙의 형제’ 우치무라 간조
03 일본인의 3·1운동관 ≪경성일보≫와 하라 다카시를 중심으로
04 일본인의 조선통치 비판론 요시노 사쿠조·나카노 세이고·야나기 무네요시·이사바시 탄잔·스에히로 시게오·야나이하라 다다오
05 조선문제에 대한 공분과 예술에 대한 사모 야나기 무네요시
06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 아사카와 노리다카와 아사카와 다쿠미
07 식민자를 위한 목사 아키즈키 이다스
08 제암리 학살사건과 장시 ?어떤 살육사건? 사이토 다케시
09 식민정책학자의 조선관 야나이하라 다다오
10 조선민족성악론 호소이 하지메
11 ‘망언’의 원형 구보다 간이치로
12 ‘유감’, ‘반성’의 이면 다카쓰기 신이치·시나 에쓰사부로·사토 에이사쿠
13 한국병합조약을 둘러싸고 무라야마 도미이치
14 “일본은 한국에서 좋은 일도 했다” 에토 다카미
15 망언의 계보 자료와 해설
16 후소샤 교과서의 조선관
17 역사교과서문제에 대한 제언
근현대 한일관계사 연표
저자 후기
역자 후기
찾아보기
책속에서
조선을 멸시하고 일본의 방파제로 간주한 채 ‘유도’, ‘탈아’, ‘협박’을 정당화하는 후쿠자와의 논리는 후쿠자와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메이지 시대 일본이 꾀한 조선정책의 기본 구상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청일전쟁 당시의 외무대신 무쓰 무네미쓰(陸奧宗光, 1844~1897년)는 “조선반도는 언제나 붕당 간의 다툼이나 내분·폭동이 잦은 곳으로, 사변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독립국답게 책임을 다하려는 요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확신’에 서서 “이를 광구(匡救)하려 도모하지 않는 것은 이웃 나라의 우의에 반할 뿐 아니라 실로 우리나라 자위의 길에서도 어긋남이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인즉, 일본정부는 조선국의 안녕을 꾀하는 계획을 담당하는 데 추호도 차질이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썼다.
조선에서 발행되던 조선총독부의 어용신문 ≪경성일보(京城日報)≫는 1919년 3월 7일 “이른바 독립운동”이라는 사설에서 3·1운동에 대해 논했다. 그리고 첫째, 3·1운동이 “열강의 동정을 얻으려”는 것으로 이는 “가공적 몽상”이라는 점. 둘째, 3·1운동이 공약 3장에 “질서의 존중”을 내걸면서도 실제로는 “폭행을 일삼는 자가 도처에 있다는” 점, 셋째, “이른바 독립운동이라는 것은 불령(不逞, 일제는 항일 독립운동가를 이렇게 부름-역자)의 무리가 헛된 미명 아래 많은 사람을 현혹해 부정한 이득을 도모하려 한 것”이라는 점, 넷째, 조선은 그 역사에 비춰 독립할 수 없다는 점을 주장했다. ≪경성일보≫의 3·1운동관은 어용신문이 3·1운동을 어떻게 봤는가를 나타낼 뿐 아니라 이른바 조선통이라는 자들이 3·1운동을 어떠한 시각으로 보고, 그것을 일반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하려 했는가를 아는 데 도움이 된다.
한국 문화사가인 재일 한국인 김양기가 야나기의 조선관·조선예술관을 비판했다. 그는 ??한국의 석불??에서 “한국의 백(白)은 상복(喪服)이나 애수의 백이 아니라 밝고 선연한 불꽃으로 타는 태양의 백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야나기의 조선미술론에서 비롯된 잘못을 고찰하면서, 야나기는 “민중의 낙천성과 생명력을 간파하지 못했다. 그것은 언어를 해석하지 못하는 외부인의 한계이기도 했다”라고 기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