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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역사학 > 역사학 일반
· ISBN : 9788946063662
· 쪽수 : 264쪽
책 소개
목차
1부. 들어가는 글
‘기억의 장소’ 또는 ‘망각의 장소’ _양재혁
2부. 기억과 역사 서술
신화화된 기억의 속살: 영적 자유를 외친 독일 종교개혁의 민중규율화 _박준철
남북전쟁과 공적 역사 _김정욱
민간 기념물과 논쟁적 기억: 수하르토 기념관의 경우 _서지원
독일 통일 후 베를린장벽 역사 기념물 만들기: 냉전시대 관광의 풍경에서 기억의 터전으로 _육영수
3부. 이데올로기와 역사 기억
『공산주의 흑서』 논쟁과 자유주의의 역사정치 _윤용선
코먼웰스 오스트레일리아의 기억에서 타자화된 원주민들 _이민경
뉴라이트가 역사를 읽는 법 _김정인
극우의 역사 서술 전략과 『제국의 위안부』: 역사적 사건의 상대화 _신동규
4부. 나가는 글
역사 교과서 국정화와 재국정화 소동 이후의 역사 교육 _김육훈
저자소개
책속에서
역사학의 자기비판적 인식을 담고 있는 역사 서술(historiographie)의 주장처럼 과거의 모든 것은 사라졌다고 노라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과거의 생생한 체험을 간직한 채 남아 있는,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으면 곧 사라져버릴 과거의 것들, 곧 과거의 기억들이 어떤 장소에 존재한다. 기억의 장소에 대한 연구는 균형을 회복하려는 시도라고 노라는 표현한다. 현재의 프랑스 사회에서는 이 균형, 곧 과거와 현재의 균형이 상실되었으며, 과거의 모든 것을 사라지고 죽은 것으로 다루는 역사의 가속화가 지배적이다. 죽은 과거만을 인정하는 역사는 현재의 지반을 허무는 결과를 가져왔다. 과거를 기초로 해서 미래를 전망하는 현재에 생기 또는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지금 사회 공동체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균형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
노라에게 장소는 생생한 체험이 불러일으키는 소속감을 보장하는 기억들이 남겨져 있는 곳, 다시 말해 모든 것을 사라진 것으로 파악하며 과거를 현재와 확정적으로 단절한 것으로 파악하는 역사학이 간과한 기억들을 간직한 곳이다. 이런 노라의 확신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마도 장소라는 표현이 환기시키는 감각적, 특히 시각적 존재 형식일 것이다.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 즉 장소를 지금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역사학에서는 이미 죽은 자로만 이해되는 과거 사람들이 생생한 체험과 의지를 통해 그 장소들을 건립했기 때문이다.
기존 구원론에서 영혼의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없었던 것이 루터만의 경험은 아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루터의 파격적 행보에 가장 큰 힘을 실어준 주체는 다름 아닌 기존 교회의 작동 원리에 융화되지 못한 채 불안과 부담감에 시달린 자들이었다. 이들은 강압적 종교 규범으로부터의 해방을 기치로 내건 루터의 개혁운동에서 영적 자유의 희망을 엿보았고 그래서 아낌없는 지지와 성원을 보냈다. 그러나 1520년대 중후반 민중규율화 작업이 시작됨에 따라 이는 한낱 부질없는 희망이었음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상당수 민중은 자신들의 꿈을 무산시키고 오히려 과거를 답습하는 양태로 치닫는 개혁에 더 이상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민중규율화 작업이 역경과 난항의 연속으로 이어진 근원적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