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중국은 대국인가 : 세계와 중국의 800년 역사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사 일반
· ISBN : 9791124110058
· 쪽수 : 570쪽
· 출판일 : 2025-12-31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사 일반
· ISBN : 9791124110058
· 쪽수 : 570쪽
· 출판일 : 2025-12-31
책 소개
21세기 중국을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 놓인 ‘대국’이라는 개념을 역사적으로 다시 묻는다. 이 책은 중국을 부상하는 강대국이나 위협으로 규정하는 통상적 시선을 넘어서, 대국이 무엇이며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질문한다.
Ⅰ. 서론 — ‘대국’이라는 질문의 복귀
21세기에 들어 중국을 둘러싼 논쟁은 크게 두 축으로 흔들려왔다. 하나는 단순한 상승 곡선으로 묘사되는 ‘부상하는 중국(rising China)’, 다른 하나는 의심과 견제, 전략과 리스크의 언어로 집약되는 ‘중국 위협론(China threat)’이다. 두 서사는 감정과 관측의 온도가 크게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하나의 전제를 공유한다. 중국은 ‘대국이다’.
그러나 ‘대국’이라는 단어는 현실과는 달리 간단하지 않다. 그것은 단순한 경제력이나 인구 규모의 측정치가 아니라, 세계를 상정하는 방식, 국경을 규정하는 방식, 외부를 인지하는 방식의 문제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국은 주어가 아니라 서술이고,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며, 더 나아가서는 프로젝트에 가깝다.
티모시 브룩의 『중국은 대국인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책의 원제 'Great State'는 명사적이기보다는 동사적 의미를 감지하게 한다. ‘대국인가?’의 물음은 이미 성립된 실재를 가리키지 않는다. 브룩은 그것을 ‘대국을 만든다’는 행위, 혹은 ‘대국으로 보이게 한다’는 구성의 장치, 나아가 ‘대국이라는 질서와 관계망’을 문제 삼는다.
중국을 둘러싼 최근의 분석이 주로 지정학과 전략 혹은 경제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반면, 브룩은 그보다 더 오래된 층위와 더 넓은 지도를 호출한다. 그 지도에는 유라시아, 해상 교역, 전염병, 예술, 문서, 상인, 라마 승려, 포로, 금세공사, 선교사, 사진사, 노역 노동자, 외교관, 난민 등이 등장한다. 그것은 하나의 국가가 세계를 지배하는 장면이라기보다, 세계가 중국을 조직하는 장면에 가깝다.
‘대국’은 중국의 자기 지정(self-designation)이기도 했지만, 그 못지않게 세계가 중국을 위치시킨 방식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대국은 중국이 스스로 선택한 정체성만큼이나, 타자가 부여한 범주였으며, 때로는 타자가 필요로 했던 상징 자원이었다. 브룩의 책은 이 상호 구성의 역사를 13개의 장면으로 펼쳐 보이며, 이를 통해 하나의 다른 질문을 제기한다. 중국은 언제, 어떻게, 왜 그리고 누구에게 ‘대국’이었는가?
이 질문은 오늘의 세계에서 다시 중요해졌다. 중국이 다시 대국을 연출하고 있는 시대, 그리고 대국에 대한 인정 여부가 지정학의 쟁점이 된 시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은 대국인가』는 과거에 대한 책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책이며, 과거가 현재를 어떻게 만드는가에 대한 책이다.
Ⅱ. 세계사의 뒷면에서 읽는 중국사
중국사는 오랫동안 자족적 서사로 취급되곤 했다. 왕조 교체와 혁명, 내전과 개혁, 국가 건설과 성장의 내적 논리가 서술을 주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이 성립하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중국은 유사 이래 거대한 공간과 인구를 바탕으로 독립적 체계를 유지한 실체였다는 전제이다.
브룩은 이 전제를 해체하지는 않지만, 다른 방향에서 접근한다. 그는 중국사를 세계사 속에 삽입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세계사의 후면에서 중국을 읽는다. 즉 중국을 설명하기 위해 세계를 소환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중국이 소환되는 방식을 포착한다. 다시 말해 중국은 세계사의 주변부가 아니라 전개를 가능하게 한 매개였다.
이때 매개란 단순한 중개자가 아니라, 흐름을 조정하고 경로를 바꾸고 속도를 바꾸는 존재를 의미한다. 원제국의 팽창은 실크로드를 재편했고, 명대의 해금과 정화의 항해는 인도양의 질서를 조정했으며, 청대의 상업 체계는 유라시아의 은 유통과 화폐 질서를 관통했다.
브룩이 선택한 장면들은 이 매개적 순간들이다. 제너두, 타브리즈, 카파, 실론, 발탐, 광둥, 남경, 후흐노르, 오스텐드, 요하네스버그, 상하이, 뉴욕과 키토는 세계사의 지도를 확장하고, 교교하게 이어진 사건들은 유라시아·해양·식민·고용·이민·국제기구의 층위에서 대국을 구성하는 방식을 드러낸다.
이것은 중국이 세계를 구성한 방식과 세계가 중국을 구성한 방식이 서로 맞물려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은 단지 ‘큰 나라’가 아니라 ‘거대한 질서’였으며, 그 질서는 인접한 지역뿐 아니라 원거리의 영역에서조차 작동했다. 유럽의 상인과 신학자, 무굴과 티베트, 해적으로부터 외교관에 이르기까지 브룩의 중국은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능동적 조율자였다.
이 점에서 『중국은 대국인가』는 중국사를 내부 질서의 연속으로 보는 대신, 세계 속에서의 연쇄적 반응의 역사로 제시한다. 중국이라는 실체는 국경의 선이 아니라 관계의 총합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대국’이 영토의 크기가 아니라 세계 속 위치의 문제임을 천천히 드러낸다.
Ⅲ. 세 시기(元·明·清)의 전환과 ‘대국 만들기’
브룩이 선택한 세 왕조—원·명·청—는 단순한 시간 배열이 아니다. 각각은 ‘대국을 만든 방식’의 차이를 보여주는 실험들이다.
원은 유라시아의 평원을 관통한 제국이었다. 그것은 중국의 행정·문자·의례 체계 위에서 구축된 제국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반도에서 헝가리에 이르는 복합적 지배의 장치를 중국이라는 무대 위에 얹어놓은 형태였다. 제너두에서 그려진 칸의 초상화는 지배자가 자신의 이미지를 주변으로 투사하는 방식을 드러냈다. 대국은 자신의 중심을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이 세계 속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연출하는 과정이었다.
명은 정반대의 실험을 시도했다. 중국적 중심을 다시 내부에서 구축하는 프로젝트였다. 정화의 항해는 외부를 향한 시선처럼 보이지만, 실은 내부 질서를 외부에까지 확장시키는 방식이었다. 조공 체계는 단지 외국의 조공 자체가 아니라 세계가 중국 질서에 반응하는 방식을 형식화한 체계였다. 대국은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게 ‘정책을 강요하는 문법’을 제공함으로써 성립했다.
청은 세 번째 실험이었다. 그것은 유라시아의 북방과 티베트·몽골 세계와의 연동을 통해 대국을 구성한 방식이었다. 라마 승려와 황자가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청은 한족 중심 국가가 아니라 다민족·다언어·다종교 제국이었으며, 대국의 권위는 문명적 우월에서 온 것이 아니라 질서의 조율 능력에서 나왔다. 따라서 18세기의 중국은 유럽이 상상한 봉건적 동양이 아니라, 유라시아의 전략적 제국이었다.
원·명·청은 각각 다른 원리—팽창, 내향적 표준화, 다중적 조율—를 통해 대국을 만들었다. 이 세 방식은 동시대 중국을 분석할 때 다시 출현한다. 예컨대 현대 중국의 해양 진출은 명의 항해와 유사하게 보이지만, 대유라시아 네트워크와의 결합은 청의 특징을 띤다. 경제적 확장은 원의 재정적 교환 구조를 다시 호출한다. 즉 ‘대국’은 단일 모델이 아니라, 교체 가능한 전략과 장치의 집합으로 남는다.
Ⅳ. 대국의 장치: 인물·사건·공간의 방식
브룩이 이 책에서 보여주는 가장 흥미로운 방법론은 국가 대신 인물을, 체계 대신 사건을, 영토 대신 공간을 택하는 방식이다. 13개의 장은 각각 한 쌍의 인물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칸과 초상화가, 환관과 포로, 선교사와 개종자, 협력자와 변호사 등. 이 인물들은 대국을 구성한 실제 행위자들이다. 그들은 구조에 종속되지만 동시에 구조를 조정하기도 한다.
사건 또한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는다. 카파의 흑사병은 중국과 유럽을 연결한 인과적 고리였으며, 오스텐드와 광동의 교역은 은과 차, 그리고 일종의 세계 화폐경제를 출현시켰다. 요하네스버그의 사진사는 청 말기의 중국 노동자가 남아공 금광을 어떻게 구성했는지 보여준다. 대국은 이러한 사건의 연쇄 속에서만 드러난다.
공간은 제국의 형식을 규정한다. 제너두, 타브리즈, 카파, 실론, 발탐, 광둥, 남경, 후흐노르 등은 ‘중심이 있는 세계’가 아니라 ‘다중 중심의 세계’를 구성했다. 여기서 중국은 중심이면서 동시에 중심 중 하나에 불과했다. 대국은 중심의 유일성이 아니라 중심의 중첩 위에서 작동한다.
브룩의 장치적 접근은 중국을 ‘안에서 본 중국’과 ‘밖에서 본 중국’의 대립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그것은 중국을 중간에서 본다. 중간은 조율이 일어나는 공간이며, 대국이 연출되는 파사주이다.
Ⅴ. 영토·통치·교역: 세계 질서와의 접촉면
‘대국인가’라는 질문은 세 가지 분야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영토와 통치, 그리고 교역.
영토는 대국의 물리적 기반이었다. 그러나 원과 청의 영역은 중국적이지 않은 광대한 외부를 포함했다. 청이 티베트와 몽골을 품는 방식은 병합이 아니라 조율이었다. ‘중화’는 기원적으로 문화적 범주였으며, 지리적 경계는 오히려 늦게 등장한다.
통치는 제국을 제국이게 하는 장치였다. 환관, 문관, 군인, 승려, 선교사, 번역자 등이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그들은 지휘 체계의 말단이 아니라 질서를 매개하는 존재였다. 대국은 통치의 위계만큼이나 통치의 번역 가능성에 달려 있었다.
교역은 세계 체제를 연결했다. 명대의 해금은 내부 통제처럼 보이지만, 실은 민간 교역망이 그 공백을 메우는 방식으로 세계 경제를 재조정했다. 은은 중국의 세금을 매기고 세계의 화폐 질서를 규정했다. 청대 광동의 정무는 영국과 유럽의 소비 패턴을 좌우했다.
이 세 가지 접촉면에서 중국은 세계를 흡수한 만큼 세계에 반응하는 방식으로 대국을 구성했다. 대국은 주변을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조율하여 중심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Ⅵ. 민국과 유엔: 20세기의 질서 속 중국
브룩은 이야기의 끝을 제국의 붕괴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민국과 유엔이라는 20세기 질서를 통해 대국의 마지막 장치를 보여준다.
1946년의 상하이는 협력자의 재판과 변호를 통해 승전국·패전국·점령과 해방·내전과 외교가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상하이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세계가 중국을 부르는 방식’의 압축이었다.
이 에피소드 뒤에는 외교 전선이 등장한다. 1971년 뉴욕에서 중화민국 대신 중화인민공화국이 유엔의 자리를 차지한 사건은 단순한 외교적 인정이 아니라 세계 질서가 중국을 다시 배치한 장면이었다. 이어지는 2010년 키토에서의 평면적 외교는 이미 중국이 유엔 안에서 관리하는 대국으로 재출현했음을 보여준다.
이 시점에서 대국은 더 이상 조공이나 해상 교역이나 은의 유통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국제기구의 표결, 제재, 승인, 가입, 조약으로 구성된다. 제국의 시대가 끝났지만, 대국의 시대는 다른 형식으로 이어졌다.
Ⅶ. 결론 — ‘대국인가’에서 ‘대국을 만든다’로
『중국은 대국인가』의 질문은 매우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브룩은 질문을 회수하여 다른 방향으로 전환한다. 그는 중국이 언제나 대국이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중국은 여러 시기에 걸쳐 세계의 질서 속에서 대국을 만들어왔다고 말한다.
이 책이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통찰은 다음과 같다.
대국은 중국의 본질이 아니라, 세계의 구성 방식이었다. 따라서 ‘중국은 대국인가?’라는 질문은 오늘 다시 유효하다. 현대 중국은 다시 대국을 연출하고 있으며, 세계는 그 연출에 반응하고 있다. 경제력과 군사력 못지않게 인프라, 해양망, 기술, 외교, 금융, 표준, 규범이 동원되고 있다. 브룩의 책은 이 현재를 해석할 수 있는 가장 긴 역사적 렌즈를 제공한다.
중국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대국을 만드는 과정’에 있으며, 그 과정은 세계 속에서만 읽힌다. 바로 이 점에서 『중국은 대국인가』는 지금 한국 독자에게 필요한 책이다.
*편집자 노트
이 책의 각 장은 비슷한 방식으로 구성된다. 각 장의 앞에는 그림이나 지도, 사진과 같은 이미지가 한 장씩 실려 있으며, 그것은 중국과 외부 세계의 관계사를 보여주는 특정한 장면과 연결된다. 브룩은 먼저 이 이미지 속의 세부들을 세심하게 묘사하고, 그것이 제작자의 인식과 사고방식을 어떻게 반영하는지를 설명한다. 이렇게 독자를 과거의 장면으로 끌어들인 뒤, 이미지에서 개인으로 초점을 전환한다. 대부분의 장에서 두 인물이 등장하는데, 한 명은 중국인, 한 명은 외국인이다. 이 둘은 기묘하게 뒤엉킨 역사적 사건의 흐름 속에서 연결된다. 때로 이 인물들은 국가의 중대한 외교 문제 한복판에 있는 고위 인사들(예컨대, 달라이 라마와 그와 협상하러 온 청나라 황자)이기도 하고, 때로는 보다 사적이고 일상적인 관계(남경의 가톨릭 선교사와 개종자)로 나타나기도 한다.
브룩은 매우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그러나 그는 단지 자료들을 엮어 흥미롭고 읽기 좋은 서사로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서사 능력을 활용해 역사학자들이 어떻게 상충되고 모호한 자료들 속에서 단서를 찾아내고, 그것들을 조합해 과거를 일관되게 재구성하는지를 보여준다. 『중국은 대국인가』의 여러 장은 일종의 미스터리 서사처럼 전개되며, 역사학자와 독자가 함께 숨겨진 정보를 추적하고 맞추어가는 형식이다. 그중 일부—예컨대 13세기 흑사병이 중국에 도달했는지에 대한 브룩의 조사—는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이 책은 일반 독자에게 울림을 줄 뿐 아니라, 학부생에게 ‘역사학자의 작업 방식’을 가르치는 데에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드문 저작에 속한다.
21세기에 들어 중국을 둘러싼 논쟁은 크게 두 축으로 흔들려왔다. 하나는 단순한 상승 곡선으로 묘사되는 ‘부상하는 중국(rising China)’, 다른 하나는 의심과 견제, 전략과 리스크의 언어로 집약되는 ‘중국 위협론(China threat)’이다. 두 서사는 감정과 관측의 온도가 크게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하나의 전제를 공유한다. 중국은 ‘대국이다’.
그러나 ‘대국’이라는 단어는 현실과는 달리 간단하지 않다. 그것은 단순한 경제력이나 인구 규모의 측정치가 아니라, 세계를 상정하는 방식, 국경을 규정하는 방식, 외부를 인지하는 방식의 문제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국은 주어가 아니라 서술이고,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며, 더 나아가서는 프로젝트에 가깝다.
티모시 브룩의 『중국은 대국인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책의 원제 'Great State'는 명사적이기보다는 동사적 의미를 감지하게 한다. ‘대국인가?’의 물음은 이미 성립된 실재를 가리키지 않는다. 브룩은 그것을 ‘대국을 만든다’는 행위, 혹은 ‘대국으로 보이게 한다’는 구성의 장치, 나아가 ‘대국이라는 질서와 관계망’을 문제 삼는다.
중국을 둘러싼 최근의 분석이 주로 지정학과 전략 혹은 경제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반면, 브룩은 그보다 더 오래된 층위와 더 넓은 지도를 호출한다. 그 지도에는 유라시아, 해상 교역, 전염병, 예술, 문서, 상인, 라마 승려, 포로, 금세공사, 선교사, 사진사, 노역 노동자, 외교관, 난민 등이 등장한다. 그것은 하나의 국가가 세계를 지배하는 장면이라기보다, 세계가 중국을 조직하는 장면에 가깝다.
‘대국’은 중국의 자기 지정(self-designation)이기도 했지만, 그 못지않게 세계가 중국을 위치시킨 방식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대국은 중국이 스스로 선택한 정체성만큼이나, 타자가 부여한 범주였으며, 때로는 타자가 필요로 했던 상징 자원이었다. 브룩의 책은 이 상호 구성의 역사를 13개의 장면으로 펼쳐 보이며, 이를 통해 하나의 다른 질문을 제기한다. 중국은 언제, 어떻게, 왜 그리고 누구에게 ‘대국’이었는가?
이 질문은 오늘의 세계에서 다시 중요해졌다. 중국이 다시 대국을 연출하고 있는 시대, 그리고 대국에 대한 인정 여부가 지정학의 쟁점이 된 시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은 대국인가』는 과거에 대한 책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책이며, 과거가 현재를 어떻게 만드는가에 대한 책이다.
Ⅱ. 세계사의 뒷면에서 읽는 중국사
중국사는 오랫동안 자족적 서사로 취급되곤 했다. 왕조 교체와 혁명, 내전과 개혁, 국가 건설과 성장의 내적 논리가 서술을 주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이 성립하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중국은 유사 이래 거대한 공간과 인구를 바탕으로 독립적 체계를 유지한 실체였다는 전제이다.
브룩은 이 전제를 해체하지는 않지만, 다른 방향에서 접근한다. 그는 중국사를 세계사 속에 삽입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세계사의 후면에서 중국을 읽는다. 즉 중국을 설명하기 위해 세계를 소환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중국이 소환되는 방식을 포착한다. 다시 말해 중국은 세계사의 주변부가 아니라 전개를 가능하게 한 매개였다.
이때 매개란 단순한 중개자가 아니라, 흐름을 조정하고 경로를 바꾸고 속도를 바꾸는 존재를 의미한다. 원제국의 팽창은 실크로드를 재편했고, 명대의 해금과 정화의 항해는 인도양의 질서를 조정했으며, 청대의 상업 체계는 유라시아의 은 유통과 화폐 질서를 관통했다.
브룩이 선택한 장면들은 이 매개적 순간들이다. 제너두, 타브리즈, 카파, 실론, 발탐, 광둥, 남경, 후흐노르, 오스텐드, 요하네스버그, 상하이, 뉴욕과 키토는 세계사의 지도를 확장하고, 교교하게 이어진 사건들은 유라시아·해양·식민·고용·이민·국제기구의 층위에서 대국을 구성하는 방식을 드러낸다.
이것은 중국이 세계를 구성한 방식과 세계가 중국을 구성한 방식이 서로 맞물려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은 단지 ‘큰 나라’가 아니라 ‘거대한 질서’였으며, 그 질서는 인접한 지역뿐 아니라 원거리의 영역에서조차 작동했다. 유럽의 상인과 신학자, 무굴과 티베트, 해적으로부터 외교관에 이르기까지 브룩의 중국은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능동적 조율자였다.
이 점에서 『중국은 대국인가』는 중국사를 내부 질서의 연속으로 보는 대신, 세계 속에서의 연쇄적 반응의 역사로 제시한다. 중국이라는 실체는 국경의 선이 아니라 관계의 총합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대국’이 영토의 크기가 아니라 세계 속 위치의 문제임을 천천히 드러낸다.
Ⅲ. 세 시기(元·明·清)의 전환과 ‘대국 만들기’
브룩이 선택한 세 왕조—원·명·청—는 단순한 시간 배열이 아니다. 각각은 ‘대국을 만든 방식’의 차이를 보여주는 실험들이다.
원은 유라시아의 평원을 관통한 제국이었다. 그것은 중국의 행정·문자·의례 체계 위에서 구축된 제국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반도에서 헝가리에 이르는 복합적 지배의 장치를 중국이라는 무대 위에 얹어놓은 형태였다. 제너두에서 그려진 칸의 초상화는 지배자가 자신의 이미지를 주변으로 투사하는 방식을 드러냈다. 대국은 자신의 중심을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이 세계 속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연출하는 과정이었다.
명은 정반대의 실험을 시도했다. 중국적 중심을 다시 내부에서 구축하는 프로젝트였다. 정화의 항해는 외부를 향한 시선처럼 보이지만, 실은 내부 질서를 외부에까지 확장시키는 방식이었다. 조공 체계는 단지 외국의 조공 자체가 아니라 세계가 중국 질서에 반응하는 방식을 형식화한 체계였다. 대국은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게 ‘정책을 강요하는 문법’을 제공함으로써 성립했다.
청은 세 번째 실험이었다. 그것은 유라시아의 북방과 티베트·몽골 세계와의 연동을 통해 대국을 구성한 방식이었다. 라마 승려와 황자가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청은 한족 중심 국가가 아니라 다민족·다언어·다종교 제국이었으며, 대국의 권위는 문명적 우월에서 온 것이 아니라 질서의 조율 능력에서 나왔다. 따라서 18세기의 중국은 유럽이 상상한 봉건적 동양이 아니라, 유라시아의 전략적 제국이었다.
원·명·청은 각각 다른 원리—팽창, 내향적 표준화, 다중적 조율—를 통해 대국을 만들었다. 이 세 방식은 동시대 중국을 분석할 때 다시 출현한다. 예컨대 현대 중국의 해양 진출은 명의 항해와 유사하게 보이지만, 대유라시아 네트워크와의 결합은 청의 특징을 띤다. 경제적 확장은 원의 재정적 교환 구조를 다시 호출한다. 즉 ‘대국’은 단일 모델이 아니라, 교체 가능한 전략과 장치의 집합으로 남는다.
Ⅳ. 대국의 장치: 인물·사건·공간의 방식
브룩이 이 책에서 보여주는 가장 흥미로운 방법론은 국가 대신 인물을, 체계 대신 사건을, 영토 대신 공간을 택하는 방식이다. 13개의 장은 각각 한 쌍의 인물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칸과 초상화가, 환관과 포로, 선교사와 개종자, 협력자와 변호사 등. 이 인물들은 대국을 구성한 실제 행위자들이다. 그들은 구조에 종속되지만 동시에 구조를 조정하기도 한다.
사건 또한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는다. 카파의 흑사병은 중국과 유럽을 연결한 인과적 고리였으며, 오스텐드와 광동의 교역은 은과 차, 그리고 일종의 세계 화폐경제를 출현시켰다. 요하네스버그의 사진사는 청 말기의 중국 노동자가 남아공 금광을 어떻게 구성했는지 보여준다. 대국은 이러한 사건의 연쇄 속에서만 드러난다.
공간은 제국의 형식을 규정한다. 제너두, 타브리즈, 카파, 실론, 발탐, 광둥, 남경, 후흐노르 등은 ‘중심이 있는 세계’가 아니라 ‘다중 중심의 세계’를 구성했다. 여기서 중국은 중심이면서 동시에 중심 중 하나에 불과했다. 대국은 중심의 유일성이 아니라 중심의 중첩 위에서 작동한다.
브룩의 장치적 접근은 중국을 ‘안에서 본 중국’과 ‘밖에서 본 중국’의 대립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그것은 중국을 중간에서 본다. 중간은 조율이 일어나는 공간이며, 대국이 연출되는 파사주이다.
Ⅴ. 영토·통치·교역: 세계 질서와의 접촉면
‘대국인가’라는 질문은 세 가지 분야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영토와 통치, 그리고 교역.
영토는 대국의 물리적 기반이었다. 그러나 원과 청의 영역은 중국적이지 않은 광대한 외부를 포함했다. 청이 티베트와 몽골을 품는 방식은 병합이 아니라 조율이었다. ‘중화’는 기원적으로 문화적 범주였으며, 지리적 경계는 오히려 늦게 등장한다.
통치는 제국을 제국이게 하는 장치였다. 환관, 문관, 군인, 승려, 선교사, 번역자 등이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그들은 지휘 체계의 말단이 아니라 질서를 매개하는 존재였다. 대국은 통치의 위계만큼이나 통치의 번역 가능성에 달려 있었다.
교역은 세계 체제를 연결했다. 명대의 해금은 내부 통제처럼 보이지만, 실은 민간 교역망이 그 공백을 메우는 방식으로 세계 경제를 재조정했다. 은은 중국의 세금을 매기고 세계의 화폐 질서를 규정했다. 청대 광동의 정무는 영국과 유럽의 소비 패턴을 좌우했다.
이 세 가지 접촉면에서 중국은 세계를 흡수한 만큼 세계에 반응하는 방식으로 대국을 구성했다. 대국은 주변을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조율하여 중심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Ⅵ. 민국과 유엔: 20세기의 질서 속 중국
브룩은 이야기의 끝을 제국의 붕괴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민국과 유엔이라는 20세기 질서를 통해 대국의 마지막 장치를 보여준다.
1946년의 상하이는 협력자의 재판과 변호를 통해 승전국·패전국·점령과 해방·내전과 외교가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상하이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세계가 중국을 부르는 방식’의 압축이었다.
이 에피소드 뒤에는 외교 전선이 등장한다. 1971년 뉴욕에서 중화민국 대신 중화인민공화국이 유엔의 자리를 차지한 사건은 단순한 외교적 인정이 아니라 세계 질서가 중국을 다시 배치한 장면이었다. 이어지는 2010년 키토에서의 평면적 외교는 이미 중국이 유엔 안에서 관리하는 대국으로 재출현했음을 보여준다.
이 시점에서 대국은 더 이상 조공이나 해상 교역이나 은의 유통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국제기구의 표결, 제재, 승인, 가입, 조약으로 구성된다. 제국의 시대가 끝났지만, 대국의 시대는 다른 형식으로 이어졌다.
Ⅶ. 결론 — ‘대국인가’에서 ‘대국을 만든다’로
『중국은 대국인가』의 질문은 매우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브룩은 질문을 회수하여 다른 방향으로 전환한다. 그는 중국이 언제나 대국이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중국은 여러 시기에 걸쳐 세계의 질서 속에서 대국을 만들어왔다고 말한다.
이 책이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통찰은 다음과 같다.
대국은 중국의 본질이 아니라, 세계의 구성 방식이었다. 따라서 ‘중국은 대국인가?’라는 질문은 오늘 다시 유효하다. 현대 중국은 다시 대국을 연출하고 있으며, 세계는 그 연출에 반응하고 있다. 경제력과 군사력 못지않게 인프라, 해양망, 기술, 외교, 금융, 표준, 규범이 동원되고 있다. 브룩의 책은 이 현재를 해석할 수 있는 가장 긴 역사적 렌즈를 제공한다.
중국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대국을 만드는 과정’에 있으며, 그 과정은 세계 속에서만 읽힌다. 바로 이 점에서 『중국은 대국인가』는 지금 한국 독자에게 필요한 책이다.
*편집자 노트
이 책의 각 장은 비슷한 방식으로 구성된다. 각 장의 앞에는 그림이나 지도, 사진과 같은 이미지가 한 장씩 실려 있으며, 그것은 중국과 외부 세계의 관계사를 보여주는 특정한 장면과 연결된다. 브룩은 먼저 이 이미지 속의 세부들을 세심하게 묘사하고, 그것이 제작자의 인식과 사고방식을 어떻게 반영하는지를 설명한다. 이렇게 독자를 과거의 장면으로 끌어들인 뒤, 이미지에서 개인으로 초점을 전환한다. 대부분의 장에서 두 인물이 등장하는데, 한 명은 중국인, 한 명은 외국인이다. 이 둘은 기묘하게 뒤엉킨 역사적 사건의 흐름 속에서 연결된다. 때로 이 인물들은 국가의 중대한 외교 문제 한복판에 있는 고위 인사들(예컨대, 달라이 라마와 그와 협상하러 온 청나라 황자)이기도 하고, 때로는 보다 사적이고 일상적인 관계(남경의 가톨릭 선교사와 개종자)로 나타나기도 한다.
브룩은 매우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그러나 그는 단지 자료들을 엮어 흥미롭고 읽기 좋은 서사로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서사 능력을 활용해 역사학자들이 어떻게 상충되고 모호한 자료들 속에서 단서를 찾아내고, 그것들을 조합해 과거를 일관되게 재구성하는지를 보여준다. 『중국은 대국인가』의 여러 장은 일종의 미스터리 서사처럼 전개되며, 역사학자와 독자가 함께 숨겨진 정보를 추적하고 맞추어가는 형식이다. 그중 일부—예컨대 13세기 흑사병이 중국에 도달했는지에 대한 브룩의 조사—는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이 책은 일반 독자에게 울림을 줄 뿐 아니라, 학부생에게 ‘역사학자의 작업 방식’을 가르치는 데에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드문 저작에 속한다.
추천도서
분야의 베스트셀러 >
분야의 신간도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