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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경제경영 > 경제학/경제일반 > 경제이론/경제사상
· ISBN : 9788947527255
· 쪽수 : 516쪽
· 출판일 : 2009-11-05
책 소개
목차
추천의 글_위기의 경제를 극복하고 희망찬 미래를 그려줄 경제학
프롤로그_경제학, 모두를 위한 과학
은행가의 역설/경제학은 암울한 학문인가/경제학은 가장 객관적인 과학이다
제1장_대도약
수렵채집자 사회에서 소비교역자 사회로/아래로부터의 경제/최후통첩 게임
제2장_통념 경제학의 오류
제로섬 게임은 끝났다/민중의 로맨스/경제는 복잡하지 않다
제3장_아래로부터의 자본주의
누구를 위한 반독점인가/자유무역과 경제적 번영/보호무역주의와 중상주의로의 진화/보이지 않는 손과 자연선택/상향식 경제 시스템
제4장_진화하는 경제
판다의 엄지발가락/쿼티 자판의 경제학/드보락의 패배/표준이 선호를 낳는다/기술 진화가 가져온 시장의 변화/적응과 이중적응/연속적 변화에서 불연속적 변화로/욕구가 진화를 촉진한다
제5장_돈에 대한 우리의 틀린 생각
실수는 행해졌다/뇌의 착각/자기관찰의 맹점/나는 합리적, 너는 충동적?/보이는 것이 주는 오류/실현 가능성의 오류와 뒷북 편향/비합리적인 뇌구조의 진화 경로/잘못된 확신과 신경계의 연관성/잃는 것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
제6장_호모 에코노미쿠스의 멸종
합리적 선택의 불합리성/미래 할인 효과/경제적 선택을 좌우하는 신경계/구매 결정은 감정적인 반응이다
제7장_미덕의 가치
도덕 감정은 어떻게 진화하는가/도덕적 선택은 왜 중요한가/진화를 위한 적응, 협력과 이타주의/진화는 평등한 쪽으로 진행된다/가장 사회적인 것이 가장 도덕적이다/우리 몸에는 사회적으로 진화한 세포가 있다/시장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인간의 마음
제8장_행복의 진화적 해석
경제는 번영했는데 행복한 인구는 늘지 않았다/우리의 유전자는 여전히 행복하지 않다/행복 상대성 이론/행복 감정은 어떻게 진화하는가/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행복을 위한 진화는 어떻게 작동되어야 하는가
제9장_경제는 신뢰의 진화적 산물
유전자는 이기적이지 않다/신뢰는 경제적 번영의 촉진제/진화경제적 인간
제10장_좋은 진화를 유도하는 좋은 규칙
비공식과 공식의 균형을 찾는다/우리를 정상적으로 만들어주는 신뢰의 망/사유 재산 시스템의 진화적 근거
제11장_사악함이 부르는 진화의 돌연변이
우리는 얼마나 쉽게 악에 빠져드는가/사악함도 진화한다/상황은 어떻게 악을 부르는가/악이 발생시킨 돌연변이: 엔론의 기업 시스템/선이 가져온 진화: 구글의 기업 시스템
제12장_선택과 결정의 순간
우리의 유전자는 어떤 선택을 하는가/좋은 진화를 위한 개입/행복한 선택을 위한 최상의 과학적 접근
에필로그_진화하는 시장과 함께 가는 경제학
진화의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대도약 이후의 문제/협력은 평화와 번영의 길/정보와 지식이 국경을 넘을 때/모든 이들에게 열린 세계
리뷰
책속에서
당신은 지금 대출자금을 넉넉하게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은행의 은행주다. 그런데도 당신이 신용도가 취약한 사람에게 대출을 해준다는 것은 엄청난 도박이다. 만일 그들이 채무를 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파산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한 가지 역설을 만들어낸다. 돈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은 신용도가 낮기 때문에 대출을 받지 못하는 반면, 돈이 거의 필요없는 사람들의 신용도는 높다. 여기서도 부자가 더 큰 부자가 된다는 진리가 증명된다. 진화심리학자인 존 투비(John Tooby)와 레다 코스미데스(Leda Cosmides)는 이를 ‘은행가의 역설(banker’s paradox)’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이 역설을 보다 심원한 진화론적 문제인 ‘우리는 누구에게 우리의 우정을 베풀 것인가?’라는 것에 적용시킨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은행가의 역설은 우리의 영장류 조상들이 직면했던 심각한 문제와 유사하다. 우리의 수렵채집자 조상들의 신용이 나빠진 순간은 누군가의 도움을 가장 절실히 필요로 했던 때였다. 그런데 이런 이유로 그들은 그닥 매력적이지 않은 원조 수혜자로 남들에게 비쳐졌다.”
만일 우리의 삶을 경제로 생각한다면, 그리고 재화―여기에는 특별히 우정도 포함시킬 수 있다―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그 무엇이라 생각한다면, 도움 받을 사람들의 신용도를 평가할 때 우리는 은행가의 역설 논리에 따라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풀어야 할 보다 큰 문제가 있다면 바로 이타주의다. “왜 나는 나의 유전자를 다른 사람의 유전자를 위해 희생시켜야 하는가?”라는 문제다. 좀 더 기술적으로 말하자면 이타적 행동은 다른 누군가의 번식 성공률을 높이는 반면 나 자신의 번식 성공률은 낮추는 것이다.
-본문 19쪽, ‘은행가의 역설’ 중에서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런 현실은 가난한 자들을 떠받쳐주고 부유한 자들을 억누르는 정책을 낳는다. 진화 기간 동안 우리는 제로섬(zero sum, 얻고 잃어서 결과는 ‘0’) 세계에서 살았는데, 그 안에서 누군가의 이익은 누군가의 손실을 의미했다. 이는 어째서 상호이익과 식량의 공유가 수렵채집자 무리 구성원들에게 그토록 중요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어째서 그들이 공동으로 사냥과 채집을 하면서 획득한 것들을 나눠 갖는 습속과 도덕을 발전시키게 되었는지 그 이유도 설명해준다.
파라과이 동부에 사는 아체(Ache) 족은 전적으로 유목에 종사하는 수렵채집자들이며 가축에게 먹일 풀을 찾아서 상당히 먼 거리를 이동한다. 사냥한 짐승의 고기는 부족 내에서 두루 배분되지, 그것을 잡은 사냥꾼 개인이 독차지하는 법이란 없다.
그런데 인류학자인 킴 힐(Kim Hill)과 힐라드 카플란(Hillard Kaplan)이 발견한 사실이 흥미롭다. 가장 뛰어난 사냥꾼은 보다 많은 여인들을 취하는 것이 허용되고 그 결과 많은 자손을 퍼뜨림으로써 성공적인 번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힐과 카플란은 사냥 참가가 강제적이거나 의무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최고의 사냥꾼은 아이를 잘 봐주겠다든지 무리 내에서 높은 지위를 보장해주겠다는 실질적이고 사회적인 보상 제안을 받고 사냥길을 떠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성공 확률이 낮은 사냥에 나설 때 식량 나누기나 보상 시스템을 채택했다면, 예측 가능하고 실제로 많은 것을 획득할 수 있는 채집을 할 때에는 그 결과물을 개별 가족 구성원들끼리 나눠 가졌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비(非)제로섬 세계에 살고 있다. 발달된 과학과 테크놀로지에 힘입어 생산성을 엄청난 높이까지 올렸다. 이는 과거와 같은 양의 혹은 더 적은 활용 자원을 가지고도 식량의 생산을 계속 늘릴 수 있는 단계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우리가 아직도 제로섬 법칙이 유효한 중간 대지에 살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본문 61-62쪽, ‘제로섬 게임은 끝났다’ 중에서
굴드가 우연성 효과의 표본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판다곰의 엄지발가락이다. 그는 1978년에 쓴 에세이 《판다의 특이한 엄지발가락(The Panda’s Peculiar Thumb)》에서 판다의 엄지발가락은 자연의 필연적 법칙에 따라 형성된, 예측 가능한 설계 형태가 아니라고 했다. 그보다는 판다의 진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즉석 장치라는 것이다.
실제로 판다의 엄지발가락은 ‘아래로부터 위로’ 설계의 한 본보기다. 진화 과정에서 이용 가능한 생물학적인 ‘장비’들이 되는 대로 동원되어 즉흥적인 땜질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만일 저 위에 전지전능한 설계자가 있었다면 그보다는 훨씬 정교하고 효율적인 엄지발가락을 만들어 선사했을 것이고, 댓잎을 따는 일이 지금보다는 아주 쉬웠으리라. 그러나 판다의 그것은 말이 발가락이지 연약하고 작은 혹에 불과하다. 잎사귀를 떼어낼 때 쓰는 발가락을 판다의 ‘엄지발가락’이라고 부르지만 실상은 늘어난 방사상 종자골(放射狀 種子骨), 즉 발목뼈가 연장된 것에 불과한 것이다.
판다의 발은 원래부터 5개의 발가락이 제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진화를 겪으면서 발달된 근육과 힘줄과 신경을 통해 발가락을 움직여 무엇인가를 움켜잡을 수 있도록 되었다. 이는 여타의 곰 종류나 기타 육식성 포유류와 다르지 않았다. 다른 말로 하면 판다가 여분으로 가지고 있는 발가락은 ‘지적으로 설계된’ 엄지발가락이 아니고, 원래 있던 신체 부위를 가지고 진화 과정에서 임시변통으로 조립한 것이라는 얘기다. 말하자면 발목뼈를 가지고 만든 사기(詐欺) 발가락인 셈이다. 우리의 엄지에 비해 판다의 그것은 기능도 부실해 보이고 생김새도 어색하기 짝이 없지만 나뭇잎을 따는 용도라면 그런 대로 쓸 만하다. 적응을 못하면 ‘자연도태’가 된다. 하지만 그 정도 일을 하기 위해 발을 통째로 개조해야 할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본문 108-109쪽, ‘판다의 엄지발가락’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