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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88950963514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16-11-03
책 소개
목차
머리말
내가 이 책을 쓸 자격이 있는 이유
첫 번째 에피소드
1. 내 불안의 유래
2. 허리케인 메릴린
3. 내 마음속 미친 원숭이
4. 에스터
5. 여행
6. 단검
두 번째 에피소드
7. 자유와 불만
8. 최초의 진단
9. 배우 준비
10. 책 속의 사람들
세 번째 에피소드
11. 사실
12. 겨드랑이
13. 불안한 사랑
14. 뇌
15. 참호 파기
역자 후기
불안에 시달리는 남자의 좌충우돌 극복기
책속에서
나는 불안해. 불안해서 집중할 수 없어. 집중할 수 없어서 직장에 서 용서받지 못할 실수를 저지를 테지. 직장에서 용서받지 못할 실수를 저지르니 해고당할 거야. 해고당할 테니 집세를 낼 수 없을 거고, 집세를 낼 수 없을 테니 펜웨이 파크 뒷골목에서 몸을 팔 수밖에 없겠지. 펜웨이 파크 뒷골목에서 몸을 팔 수밖에 없을 테니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될 거야.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돼서 에이즈 말기에 이르겠지. 에이즈 말기가 될 테니 외롭고 망신스럽게 죽을 거야.
어머니는 택시를 잡으려고 했지만 멈춰서는 택시는 한 대도 없었다. 택시 운전기사들은 백지장처럼 창백한 낯빛에 눈물을 글썽이는 사나운 눈빛의 사람들을 슬쩍 훑어보고선 액셀을 밟았다. 이제 어머니는 통제 불능이 되기 시작했다. 끔찍한 장면들이 머릿속에 사정없이 떠올랐다. 경찰서, 병원, 영안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찍고 있는 지역 방송국 카메라맨들! 어머니는 몸이 떨렸고 땀이 났으며 깬 채로 악몽을 꾸는 것 같은 상태에 빠졌다.
내가 알던 엄마는 충동적이고 포옹력이 없는 사람, 목수의 연장처럼 거칠게 포옹하는 브롱크스 출신의 식품점 주인 딸이었다. 그에 비하면 통풍구를 통해서 올라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선종의 승려처럼 차분하고 신중하고 이해심이 있었다. 어머니가 고통을 진정시킬 수 있다는 점은 놀랍지 않았다. 그녀는 내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분만실에서부터 내 고통을 진정시켜왔다. 그러나 어머니가 그것을 논리적이고 공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 어머니의 위로가 직감이 아니라 이성에서 나올 수 있다는 점, 어머니가 치유를 신중하게 연출할 수 있고 저지 및 지휘할 수 있으며 배분할 수 있다는 점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미안하다!" 어머니가 말했다. "내가 망쳐버렸어. 미안해. 내가 그랬어! 나는 아이들을 키우는 법을 몰랐어. 불안했어. 순진했어. 나는 네가 태어날 즈음이 되면 네 아버지랑 내가 제대로 해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너는 셋째니까.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팬케이크를 굽는 것과 같아야 하잖아. 처음 두 번은 약간 망치기 마련이지만 세 번째는 대체로 모든 것이 순조롭거든. 그런데 내가 나 자신을 방해 했어. 나는 불안했어. 정말 미안하다."
"어서 와라." 어머니가 말했다. "주말 잘 보냈어?"
나는 그 말 한마디에 무너졌다. 봇물이 터졌다. 모든 감정이 용솟음쳤다. 모든 감정이 풀려났다. 모든 감정이 고조되었다. 숨어 있던 심문관이 내 몸 깊숙이 들어가 내 신경 말단에 전선을 꽂은 양, 누군가 내 피에 독을 주입한 양, 갑자기 모든 감각이 구역질이 나도 록 생생하게 빙빙 돌았다.
그러고 나서 맥베스 앞에 나타난 단검이 있었다. 치명적인 환영이었다. 처음에는 깨끗하지만 나중에는 피로 물들어 있다. 볼 수 있지만 만지지는 못한다. 우리는 수업 시간에서 그 유명한 독백을 읽었고 나는 혼자 생각했다. 진짜야. 단검은 진짜야! 나는 이를 아주 확실하게 느꼈다. 우리가 읽는 동안 내 마음의 단검이 내 눈앞이 아니라 내 가슴속에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 복장뼈 속에 서리가 꽃을 피웠다. 차갑고 날카롭고 뾰족한 얼음으로 된 내 고드름.
내 스물다섯 번째 갈비뼈.
자유는 말한다. 네가 선택 할 수 있는 삶이 이렇게 많단다. 서로 다르고 상반되고 상호 배타적 인 삶들이 있어. 자유는 말한다. 네가 원하지 않아도 선택해야 하고 올바르게 선택했는지 끝내 확신할 수 없어. 자유는 말한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야. 자유는 말한다. 네 자유를 깨닫고 나면 자유가 가져오는 불편을 경험하게 될 거야.
자유는 말한다. 너 스스로 해야 해. 알아서 해.
"너는 미치지 않았어. 아가, 너는 괜찮아질 거야. 너는 그냥 불안한 거야. 너는 나처럼…… 극심한 불안증이야. 정신장애야, 그게 다야. 도움만 받으면 극복할 수 있어. 치료와 약이면 돼. 그저 질환,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이야."
이 말을 듣자(내가 받은 최초의 진단) 마침내 불안이 경계선을 뚫었다. 나처럼. 집에서 320킬로미터 떨어진 콘크리트 섬에서 본의 아니게 대관식에 참석했고 왕위에서 물러날 희망이 거의 없다는 것을 즉시 알았다. 다윈이 공황에 대해 한 말이 옳았다. 털이 꼿꼿이 섰고, 호흡이 가빠졌고, 근육에서 힘이 빠졌고, 정신적 기능은 훨씬 더 동요했다. 곧이어 완전히 탈진했다.
당신이 아프리카의 동물 보호 구역에서 캠핑 중인데 산 채로 잡아먹힐까봐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이는 정상적인 불안이다. 하지만 당신이 포트로더데일(플로리다의 도시-옮긴이)에 있는 바에서 맥주를 마시는 중인데 언젠가 캠핑을 가게 될지 모르고 그곳에서 어느 동물이 텐트로 어슬렁어슬렁 들어와 당신을 산 채로 잡아먹을까봐 초조해진다면 처방전을 받아야 한다.
땀의 역할이라고는 초조함을 주변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것뿐이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더 초조해지고, 더 땀을 흘리게 되고, 다시 더욱 초조해지고, 더욱 땀을 흘리게 된다. 이런 식으로 창피함과 무서움의 모욕적인 악순환이 계속된다. 따라서 불안에 시달리는 현대인이 자문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내 겨드랑이를 어떻게 해야 하지?
아내가 상자를 계단으로 들어 올리는 것을 보고(아내는 "이 정도면 폐경기가 올 때까지 쓰겠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아르키메데스(Archimedes)가 욕조에서 깨달음을 얻은 것과 같은 순간을 경험했다. 그 기다란 패드가 내 땀의 해결책임을 즉시 알아챈 것이다.
"자, 그럼, 대니얼이 불이 난 집에 있는데, 불이 난 원인을 알아내려고 소방관을 파견하는 것이 타당한 것임을 설명해봐요. 그보다는, 어, 뭐랄까, 먼저 불을 끄는 것이 낫지 않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