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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 비평
· ISBN : 9788950982546
· 쪽수 : 344쪽
· 출판일 : 2019-08-20
책 소개
목차
1. 과학소설이란 무엇인가?
2. 기술적으로 포화한 사회의 문학
3. 인지적 소외
4. 메가텍스트
5. 사변소설
6. 실천공동체
7. 신념의 문학
8. 변화의 문학
9. 과학소설성
감사의 말
해제
연대기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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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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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한국어판 서문
최근 한국 SF 단편 소설 13편이 영어로 번역되어 『레디메이드 보살Readymade Bodhisattva』이라는 제목의 단편집으로 미국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작년 저는 이 책의 편집자인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의 박선영 교수와 더불어 번역 및 출간 작업에 참여한 캐나다 출신 작가 고드 셀라, 한국SF협회 박상준 대표, 정소연 작가 등 한국의 SF 관계자들을 미국에 초청해 대담을 나눌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 초청 대담에서 출간된 단편집의 내용에 대해서 뿐 아니라 한국 내 과학소설의 전반적인 동향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토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대담에서 저에게 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정소연 작가의 발언이었습니다. 그녀는 한국에 소개된 영미권 SF 작품들 대부분이 여성 번역자들에 의해 번역되었고, 이것이 현재 한국 사회가 미국의 SF 고전을 이해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한국의 여성 SF 번역가들은 특정한 주제들, 가령 사회상의 변화라거나 가족상의 미래, 기존 성 역할의 유동성, 미래의 변화한 정치 제도들에 대해 깊이 관심을 기울였고, 이것이 영미권 SF가 한국에 소개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죠. 영미권에서는 SF의 역사를 설명할 때 주로 1920~30년대의 대중 잡지에 실린 SF 작품들과 더불어 그 직후 존 W. 캠밸에 의해 소개된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크, 로버트 하인라인 등 소위 말해 1950~60년대 “황금시대” 작가들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정소연 작가의 발언은 한국의 작가들이 영미권의 작가들과는 완전히 다른 궤적을 통해 SF라는 장르와 SF의 고전들을 접하게 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이 특별히 흥미로운 이유는 이것이 바로 문학 장르의 본질에 대해 잘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저는 문학의 장르란 단지 같은 역사의 반복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언급한 영미권의 대중 잡지들과 단편소설의 전통이 우리가 오늘날 아는 SF의 주요 테마들, 가령 우주 전쟁이니 초은하 제국, 천재 발명가, AI 로봇 등을 형성하는 데 있어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과학소설을 단순히 이것들만으로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영미권 전통만 떼어 놓고 보더라도 유토피아 소설의 전통과, H. G 웰스류의 ‘과학 로맨스’ 같은 사회 비평 소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환상적 “사고 실험”들이 모두 1920년대 대중 잡지 전통 이전에 등장하였으며, 각각의 부류들은 서로 다른 문학적 양식들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소설이 과거에 무엇이었는가를 넘어서, 더 중요한 문제로 미래에 과학소설이 무엇이 될 것이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장르를 둘러싼 구성원들 간에 다양한 시각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짧은 SF 가이드 『에스에프 에스프리』를 통해 여러분께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가 될 것입니다.
이를 전달하기 위해 이 책의 각 장들은 과학소설이라는 장르가 정의되어 온 다양한 방식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으며, 이러한 다양한 정의가 장르에 대한 각 구성원들의 서로 다른 생각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난 십 년간 과학소설 학계가 성취한 가장 큰 성과를 꼽자면 주제 의식과 서사의 세계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십 년 간 과학소설 학계에서는 과학기술과 미래 그리고 인간에 대해 새로운 방식과 시각을 통한 재정의가 이루어져 왔으며, 이 과정에 있어 한국의 예술계는 큰 역할을 담당해 왔습니다. 일례로 앞서 언급해 드린 SF 단편집 『레디메이드 보살』에 참여한 소설가들,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 <설국열차> <옥자>와 같은 작품들을 생각해 보면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언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이 잘 보여 주듯, 이 책은 과학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 단지 활자 매체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 매체들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책 속에서 자세히 다뤄지고 있지만, 저는 과학소설이 근본적으로 과학기술과 인간사회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장르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과학소설은 결국 과학기술이 시민의 일상과 눈에 띄게 관계 맺기 시작한 19세기의 한 장르로서 그 맥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장르를 바라본다면, 왜 과학소설이 봉준호 같은 영화감독이나, 이창래, 콜슨 화이트헤드 같은 소설가들에 의해서 선택될 만큼 오늘날 큰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는지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블랙미러>와 같은 영미권 드라마나 테드 창 혹은 켄 리우와 같은 작가들의 소설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과학소설은 다양한 SNS 매체를 비롯한 커뮤니케이션 기술들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에도 매우 적절한 장르입니다. 또한 <설국열차>가 잘 보여 주듯, 과학소설은 킨 스탠리 로빈슨과 같은 저명한 작가가 평생을 바쳐 다루고자 했던 끊임없는 기후변화 문제들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도 가장 적절한 문학 장르입니다. 프랑스의 쥘 베른 같은 초기 SF 작가들은 새로운 과학 지식을 대중에게 교육할 목적으로 소설을 활용하고자 했지만, 20세기에 이르러 과학소설은 과학기술에 대한 교육적 효과보다는 오히려 경제적 불평등이나 감시 사회의 위험성 같은 사회적 주제들을 교육하는 데 더 효용성이 있다는 것이 알려졌고, 오히려 이러한 사회적 주제에 대한 교육적 효과 때문에 오늘날 아동 청소년 문학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과학소설의 역사가 다른 대중 문학 장르와 크게 구별되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장르가 처음부터 장르를 둘러싼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에 기여해 왔다는 것입니다. 초기의 SF 팬덤은 SF라는 장르의 미래가 어떻게 되어야 할지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벌였고, 이로 인해 SF 팬덤 공동체가 형성되었으며, 이 공동체는 오늘날 초-매체적 글로벌 SF 팬 공동체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가령 오늘날 전 세계의 관객들은 이러한 SF 장르를 통하여 마블 유니버스와 같은 SF 테마의 프랜차이즈 영화를 보고, 한국 밖의 관객들은 심지어 한국어를 하나도 모르더라도 자막을 통해 K-드라마와 같은 각 나라의 문화를 배우고 있습니다.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또 다른 핵심 주제는 과학소설이라는 장르가 우리로 하여금 생각을 위한 도구를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과학소설을 통해 나는 무엇인지, 나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 우리의 사회는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지도를 그릴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이 장르를 통해 우리의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가령 더 포용적이며 정의로워야 하는지 아니면 더 위계적이며 분열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해하고, 어떻게 하면 그러한 미래의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구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작가이든, SF 문학의 팬이든, 비평가이든, 혹은 그저 일반 독자이든지 간에 SF 장르에 참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리의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우리의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고민하는 작업에 이미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SF를 둘러싼 구성원들은 비록 무엇이 더 ‘나은 미래’인가에 대해서 언제나 일치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변화에 참여하고 그러한 목적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를 원합니다.
2018년 12월 저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 한국 사람들을 이해하고 식당과 찜질방을 방문해 한국 사회의 단편적 일상을 경험하며, 한국의 역사를 공부했습니다. 이를 통해 세상 저편에 사는 한국의 작가와 학자들이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에 대해 함께 공유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은 것은 덕수궁 뜰에서 바라본 서울의 풍경입니다. 덕수궁 안에서 바라본 서울의 풍경은 조선의 건축양식과 일본 제국주의의 흔적들이 이루는 대비와 더불어, 근대 초기 궁궐 양식이 그를 둘러싼 현대적 서울의 건축들과 병치를 이루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풍경은 마치 SF 작품을 읽을 때의 흥분 같은 그러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저는 마치 제가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분리되어 수 세기의 역사들이 서로 뒤섞이는 것을 보는 듯한 느낌, 혹은 마치 덕수궁이 뜰이 궁궐을 둘러싼 현대적 도시로 솟아올라 변화하는 듯한 상상, 혹은 마치 알렉스 프로이아스의 영화 <다크 시티>(1998)의 한 장면에서처럼 도시의 풍경이 특수 효과를 통해 변형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의 사이언스 픽션적인 눈으로는 마치 이 도시의 풍경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오늘날의 서울이 친숙하면서도 낯선 미래의 서울로, 서구 세계의 습관적 상상력을 통해서 본 미래가 아닌 지구 저편 한국인의 시각을 통해 상상한 미래의 모습으로 변화되어가는 듯했습니다.
저의 책이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 번역된다는 것에 대해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제가 한국의 과거와 한국 작가들의 미래에 대한 시각을 배우면서 흥분할 수 있었던 바와 같이, 한국의 독자들 역시도 『에스에프 에스프리』를 통해 영미권 과학소설의 전통과 더불어 이 장르를 둘러싼 다양한 구성원들이 이 장르의 중요성을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즐겁게 배울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제가 이 분야를 계속 연구하는 동기는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변화한다는 느낌입니다. 오늘날의 과학소설이 어제의 것이 아니듯, 내일의 과학소설도 무엇인가 다른 것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세계 전역에서 다양한 배경과 새로운 시각을 가진 신진 작가들이 이 변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저는 이 대화의 흐름에 한국의 구성원들이 기여하는 바를 배워 나가고 싶습니다.
셰릴 빈트, UC 리버사이드 교수
(번역: 유상근)
이 책은 창의적인 힘(저자, 감독, 예술가)과 마케팅 필수 요건(제작자, 네트워크 브랜딩, 편집자) 및 청중(팬층 및 그 이상까지도)을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에 의해 적극적으로(그리고 종종 경쟁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항상 진행 중인 장르로서 SF를 탐구할 것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관점에서 이 복잡한 장르를 살펴보겠지만, ‘과학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포괄적인 답변에 도달하려 애쓰기보다는, SF의 다양한 비전을 동시에 볼 수 있게 해 줄 프리즘적인 시각으로 답을 찾아 나가려 노력할 것이다. 이때 각각의 비전은 이 장르의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설명이 되고, 전체로서의 비전은 단순하거나 단일한 이미지가 아닌 오히려 복수의 이미지로서 때로는 생산적인 긴장 가운데 모순된 가능성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1. 과학소설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