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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과학소설(SF) > 외국 과학소설
· ISBN : 9788950988203
· 쪽수 : 344쪽
책 소개
목차
제1장. 여우의 길
제2장. 새의 길
리뷰
책속에서
“겉모습이 어떻든 넌 내가 아는 측천이잖아.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난 네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여자라고 생각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심장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럴 순 없어. 이치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서는 떠날 수 없어.
“이치.”
내 목소리는 자욱한 연기가 낀 듯 어둑하게 들렸다.
“미안, 내가 좀…… 그랬나? 아, 그래. 너무 이상했지?”
이치의 웃음이 떨렸다.
“얼마나 이상했어? 수치로 표현해 봐. 1부터 시작해서, 제일 높은 수치는 ‘늙은 아저씨가 너한테 웃어보라고 말했을 때 드는 나쁜 기분’이라고 쳐. 얼마나 불편했어?”
“이치.”
나는 그의 두 손을 잡았다. 이 손의 미약한 온기가 지금부터 이치가 받게 될 충격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는 입을 다물고 당황한 얼굴로 맞잡은 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입에서 오랫동안 간직해 왔던 그 말이 흘러나왔다.
“나, 첩 조종사로 입대할 거야.”
“그럼 그냥 양광이 전투에서 죽어버리게 둬. 남자 조종사들이 스물다섯을 넘길 때까지 사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
“넌 몰라. 그를 죽이는 건 나여야만 해. 내가 직접 언니의 복수를 할 거야.”
“왜? 언젠가 그놈은 업보를 치르게 될 텐데.”
나는 말을 이로 으깨듯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내뱉었다.
“세상엔 업보 같은 건 없어. 아니, 있더라도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해당되지 않아. 우리 같은 사람은 그저 남에게 이용당하고 버림받으려고 태어난 거야. 삶의 거대한 흐름에 순응하며 살아갈 여유도 우리에겐 없어. 이 세상 그 무엇도 우리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으니까. 우리 같은 사람이 뭔가를 원할 땐 주변의 모든 것들과 맞서 싸워서 억지로 빼앗아야 해.”
이치는 말이 없었다. 그저 피곤한 기색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반묶음 한 머리카락 몇 가닥이 깨끗하고 단정한 옷 앞으로 흩날리다가, 창문으로 들어온 거센 바람결에 옆으로 둥글게 말렸다.
“우린 어차피 다 죽을 거야. 그렇다면 적어도 언제나 꿈꿔왔던 일을 해봐야 하지 않겠어?”
나는 속삭였다.
“여러분은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영웅에게 위로와 동지애를 선사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도 아주머니가 했던 입소식 연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우리가 처음 모여 그녀 앞에 어수선하게 줄을 섰을 때였다.
“오늘부터 여러분은 우리의 영웅을 기쁘게 해주는 존재가 됩니다. 여러분의 봉사로 그분은 신체와 정신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상태에서 우리의 국경을 위협하는 혼돈과 싸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분의 건강과 행복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시장하실 때는 식사를 드리고, 목이 마르실 때는 물을 따라드리고, 그분이 즐기는 모든 일에 활기찬 열정으로 함께해야 합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면 마음을 다해 들어드리세요. 이때 말을 끊거나 말대꾸를 해서는 안 됩니다. 우울하거나 비관적이거나 무심한 태도를 보여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분의 손길에 거부 반응을 보여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