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고대사(선사시대~진한시대)
· ISBN : 9788952129321
· 쪽수 : 284쪽
· 출판일 : 2020-12-15
책 소개
목차
여는 글
제1장 들어가며
제2장 상주시대 경계 출입과 통과의례
1. 상대 경계의식과 통과의례
1) 상의 공간구조와 경계의식
2) 경계의 출입과 그 절차
(1) 상읍의 출입
(2) 상읍 이외 지역의 출입
3) 접빈과 통과의례
2. 서주시대 경계의 출입과 통과의례
1) 서주 금문에 보이는 왕래 사례
(1) 주 왕실의 방문
(2) 사자(使者)의 파견과 사행
2) 영빈 장소와 의례 절차
3) 향례(饗禮)와 예물 증여의 의미
(1) 영빈과 향례
(2) 영빈과 예물의 증여
소결
제3장 춘추전국시대 경계 출입과 그 성격 변화
1. 춘추전국시대 경계의 성격 변화
1) 춘추시대 성역과 국의 경계
(1) 성역으로서의 도성
(2) 변읍의 경계와 경(境)
2) 전국시대 군현지배의 등장과 국의 경계
(1) 군주 직할지와 군현의 경
(2) 지배 영역의 범위와 국경
2. 춘추시대 경계의 출입과 통과의례
1) 국의 출입과 의례 절차
(1) 도성의 출입 의례
(2) 교(郊) 지역의 출입 의례
2) 제사 예물의 교환과 통과의례
3. 전국시대 경계 출입과 통행자 관리
1) 내지의 통행과 징세
(1) 성문의 출입 관리
(2) 관(關)진(津)의 통행과 징세
(3) 시(市)의 출입과 화물의 검색
2) 변관의 통행과 검문
소결
제4장 고대 제국의 경계와 그 출입
1. 제국의 내부 경계와 그 출입
1) 경기(京畿)와 군현의 경계
2) 내지 통행과 출입 관리
(1) 경기의 출입 관리
(2) 주요 통과소(通過所)에서의 검문
2. 제국의 외부 경계와 그 출입
1) 변군과 제국의 국경
2) 변관의 통행과 검문
소결
제5장 맺음말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지리 공간에 형성된 경계는 인간의 정주생활과 함께 등장했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자신들의 취락 주변에 해자나 담을 만들어 외부와의 경계로 삼았다. 현재 확인되는 중국 초기 취락 유지를 보면 그 외연에 환호(環壕)를 파서 외부 세계와 경계를 구분했다. 그러나 취락 주변에 형성된 경계가 정치적 경계는 아니다. 독일의 지리학자 프리드리히 라첼(Friedrich Ratzel)은 정치적 경계인 변경과 국경은 국가 형성 과정에 따라 단계별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1단계는 국가가 무한한 공간에 지배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중심부와 주변 지역이 구분되기 시작한다. 2단계는 무주지(無主地)에 타국이 등장하여 공간제약현상이 나타나면서 선점과 편입조치의 확대로 쌍방의 주변 지역에는 지배력이 중복되는 변경지대가 성립한다. 3단계는 인접 국가들이 각각의 배타적 지배영토를 구별하는 경계선을 구체화하면서 국경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갑골문 중 외부에서 상읍으로 들어오는 문제와 관련된 복사를 보면, 상읍으로 들어오는 왕을 비롯한 모든 사람에 대해 그 길흉 여부를 점쳤다. 왕이 출행했다 상읍으로 귀환할 때는 상읍으로의 귀환 자체를 점치거나 미래의 특정 일자 혹은 당월당일의 귀환과 같이 귀환 시기를 자세하게 점쳤다. 그런데 상왕이 상읍으로 돌아오는 문제가 점복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왜냐하면 상읍의 최고 통치자 역시 자신의 정치적 중심지로 들어갈 때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동일한 갑골에 왕의 귀환 시기에 관한 여러 점복 기록이 있는 점으로 미루어, 왕은 상읍으로 귀환하는 시기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했음을 알 수 있다.
서주시대 향례는 일족이나 사자가 방문했을 때 제주를 사용하여 빈(賓)을 자신의 신(神)?인(人) 공동체에 맞아들이는 제의의 일부였으나, 서주 후기 종묘 의례의 성격이 변하면서 향례는 제사를 지낸 후 진행되는 성대한 향연의 절차로 확대되었다. 춘추시대 열국 간의 빙문 절차에서도 향례는 여전히 제의의 형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천자에 대한 향례인 구헌(九獻)을 초(楚)?오왕(吳王)에게 행했던 것과 같이 주왕의 의례적 권위는 더는 통하지 않게 되고, 조상신을 배알하기 위한 재계의 성격을 지닌 향례 역시 점차 빈(賓)에 대한 연회의 성격으로 변했다. 이는 나라의 안위를 결정하는 권한이 조상신에서 점차 실제적 권력을 장악한 세속 군주에게로 옮겨가기 시작했고, 그 결과 신(神)?인(人) 공동체를 방문하는 영빈 의례의 절차 역시 제의의 성격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