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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액션/스릴러소설 > 외국 액션/스릴러소설
· ISBN : 9788952215642
· 쪽수 : 452쪽
· 출판일 : 2011-09-16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아픔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가더니 무언가 그를 잡아채 마구 흔들었다. 물살에 거꾸로 휩쓸려 가는 그의 위로 갖가지 빛깔들이 쏟아졌다. 붉은빛이 칠흑빛과, 다시 푸른빛과 뒤섞였고 불현듯 그는 자신이 한 소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소녀는 열다섯 살쯤으로 보였다. 검은 머리칼에 눈동자는 푸르렀다. 눈동자가 어찌나 드넓은지 마치 작은 바다 같았다. 그는 소녀를 응시하며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내려고 애썼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이 소녀는 구급차에 전화했던 그 소녀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넌 누구니?” 그는 자신이 말을 하고 있음을 느꼈다.
소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그를 바라보았고 그러는 동안에도 눈동자는 계속 커져 갔다. 그녀가 같은 편이기를 빌었다. 그녀는 아름다웠지만 한편으로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제 소녀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잔상을 붙잡으려 해 봐도 헛수고였다. 그녀는 사라졌다. 아니면 그가 사라졌거나.
“저 남자는 이름이 뭐야?” 그가 물었다.
“여기 사람들은 ‘크로’라고 불러. 별명이지. 진짜 이름은 아무도 몰라.”
“왜 ‘크로’야?”
“생긴 게 까마귀를 닮았거든. 덥수룩한 검은 장발에 검은 수염에 코는 새 부리처럼 뾰족하고 눈빛은 교활하지. 주로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시간을 보내고 사람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주워서 먹고살아. 헤이븐스마우스에서는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지.”
“일 년 내내 저 텐트에서 살아?”
“아냐, 아냐. 크로는 떠돌이야. 매년 봄이 되면 난데없이 나타나 여름 내내 해변에서 노숙을 하다 사라져. 어디로 가는지는 몰라. 여기 있는 동안에는 주로 해변을 어슬렁거리며 파도에 떠밀려 온 잡동사니들을 주워 연명하지. 모든 면에서 괴상한 사내야. 크로가 곶 너머 해변의 관광객들을 쫓아내고 있지만 마을 사람들이 저 남자를 싫어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어.”
“저 남자는 이름이 뭐야?” 그가 물었다.
“여기 사람들은 ‘크로’라고 불러. 별명이지. 진짜 이름은 아무도 몰라.”
“왜 ‘크로’야?”
“거짓말하는 게 아냐.” 윌이 말했다. 침묵이 이어졌다. “거짓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가 다시 말했다. “물가에 선 여자애를 지켜보다가 크로를 만났어요. 함께 텐트로 가서 수프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복면을 쓴 괴한들이 나타나 크로를 포위했어요. 그중의 하나는 은신처에 숨은 먹을 찾으러 떠났고 둘은 절 잡으러 쫓아왔다고요. 간신히 도망쳐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이번엔 더 긴 침묵이 이어졌다.
“제 말을 안 믿는군요. 아무도요.” 그가 말했다.
“윌.” 로즈가 입을 열었다. “네 말을 안 믿는 게 아냐. 단지…….”
“아뇨, 아줌마는 절 안 믿으세요.” 그는 고개를 돌려 벽을 응시했다. “날 믿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