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삭임의 바다

“그 여자야, 탐.”
“누구?”
“바다유리에서 본 얼굴.”
“그때 절벽 꼭대기에서 네가 나한테 한사코 말해주지 않았던 그 얼굴?”
헤티는 계속해서 노파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렇게 멀리서도 얼굴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헤티는 주머니 속을 더듬거려 바다유리를 찾아서 잠시 만져보았다.
“믿을 수가 없어, 탐. 마치…….”
헤티는 적당한 말을 찾으려고 얼굴을 찡그렸다.
“마치 저 노파는 순전히 나를 찾으려고 온갖 어려움을 뚫고 여기 온 것 같아. 그런 기분이 들어.”

“그래서 모라 섬 사람들은 용감할 수밖에 없단다. 그렇게 고립된 상태가 용감하게 만든 거지.”
“그럼 아까 모라 섬 사람들이 겁이 많다고 하신 말씀은 무슨 뜻이에요?”
“그건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란다.”
“그 두려움은 왜 생기는 건가요?”
“같은 이유지. 고립된 상태 말이다.”

서서히 졸음이 몰려왔다. 탁자 위에 바다유리를 내려놓고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갑작스러운 한기에 헤티의 몸이 떨렸다. 잠옷 위에 가운을 걸치고 바다유리를 가운 주머니 안에 넣은 다음, 헤티는 침대에 누웠다. 저 아래 바다에서 계속해서 속삭임이 들려왔다. 헤티는 누운 채 눈을 감았다. 밤이 깊어 가면서 마음 한 부분도 함께 흘러가는 꿈을 꾸었다. 손님용 침실에 누워 있는 노파와, 바다유리에서 보았던 얼굴들과, 줄곧 찾아 헤맸지만 결코 찾지 못한 얼굴들에 대한 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