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전기(개국~임진왜란 이전)
· ISBN : 9788952243577
· 쪽수 : 198쪽
· 출판일 : 2021-12-31
책 소개
목차
제11대 중종, 반정으로 왕위에 오르다
제12대 인종, 8개월의 짧은 치세로 생을 마감하다
제13대 명종, 권신 정치기의 절정과 쇠락을 맞이하다
제14대 선조, 사림 정치 시대를 열다
제15대 광해군, 난세를 이끌고 패륜의 멍에를 쓰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중종은 즉위 후 연산군 대에 시행되었던 모든 정책에 혁신을 시도했다. 먼저 연회 장소로 사용하여 훼손된 성균관을 수리하고 경연을 다시 개설했다. 또한 두 번의 사화를 거치면서 화를 입었던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유학을 숭상하는 기풍을 조성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로 학자들의 사기는 점차 살아났다.
중종은 연산군과는 달리 왕의 전제적 권한 행사를 피하고 유능한 유학자들의 의견을 존중했다. 이에 위로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학문을 계발하고, 아래로는 교화 사업을 펼치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도학 정치를 실현하려는 인재들이 계속해서 등용되었으며, 유숭조(柳崇祖)를 필두로 조광조의 동지들이 뒤를 이었다.
고려 말부터 조선 초에 걸쳐 전개되었던 억불 정책은 유학 자체를 진흥시키려는 차원의 운동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불교의 세속화를 조장한 폐단으로 지적된 경제력을 몰수함으로써 국가 재정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더 컸다. 물론 몇몇 왕들에 의해 불교가 중흥되는 모습도 간간이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불교는 여전히 탄압받고 있었다.
억불 정책으로 사찰 정리와 사찰 재산의 몰수, 도승법(度僧法) 시행과 폐지, 승과 폐지, 교리상의 특성을 무시한 종파 통합 그리고 다비와 같은 불교의 전통적인 풍습 금지 등의 조치가 이루어졌다. 특히 도승법과 승과 폐지는 승려에 대한 국가 차원의 관심과 보장을 전적으로 거부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승려의 지위는 크게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신립의 패전과 선조의 피난으로 나라는 극도의 불안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에 비상 타개책으로 제시된 것이 광해군의 세자 책봉과 분조 활동이었다. 당시 서울은 민심이 극도로 흉흉한 가운데 “나라가 반드시 망할 것이다”라는 말이 난무했다. 이에 우승지 신집(申楫)이 민심을 진정시키는 방도로 세자 책봉을 건의하기에 이르렀다. 평소 서장자인 임해군을 신뢰하지 않았던 선조는 영의정 이산해・좌의정 유성룡 등의 대신을 소집해 서차자인 광해군을 세자에 책봉했다. 신립의 패전 소식이 전해진 바로 그날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