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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신앙생활일반
· ISBN : 9788953139640
· 쪽수 : 380쪽
책 소개
아마존 베스트셀러!
"쓰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가장 많이 느낀 책이다."
췌장암 투병 중 집필한 팀 켈러의 진솔하고 힘 있는 신앙고백
불안의 시대, 일상을 일으킬 확실한 희망을 찾다!
'오늘 여기'서 '장차 올 그 나라'를 사는 패러다임의 대전환
오늘날 기독교의 대표 절기 부활절의 풍경을 떠올려 보라. 교회에서 달걀 나눠 주는 날? 사순절과 고난주간이라는 심적 부담감에 마침표를 찍고 다시 환한 얼굴과 즐거운(?) 일상으로 돌아갈 자유를 주는 연례 행사? 예수의 부활은 성경에 나오는 그저 놀라운 초자연적 기적일 뿐인가? 오늘의 내 삶, 신음하는 이 시대와 별 상관없는 한낱 과거의 사건인가? 현대 기독교는 지금 가장 중요한 복음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한 지금, 심하게 양극화된 사회 분열로 혼란한 미국 뉴욕 한복판에서 췌장암 투병 중인 팀 켈러 목사가 '예수 부활'의 사실성과 참의미를 고찰한다. 죽음, 팬데믹, 불의, 사회 붕괴로 두려움이 일상이 된 작금의 현실에서 우리는 왜 눈을 들어 다시 '예수의 부활'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이 아니라, 오늘을 견디게 할 '진짜 희망'이 절실한 세상에 내놓는 생명의 답!
예수 부활의 권능을 입어 다시 사는 것,
이보다 더 장엄하고 강력한 희망은 없다
팀 켈러는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성경 속 부활 사건을 새롭고 깊게 조망한다. 1부에서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임을 밝히고, 2부에서 예수님의 부활이 성경 전체의 줄거리를 이해하는 열쇠이자 또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영위하는 원리임을 고찰한다. 3부에서는 마리아, 요한, 도마, 베드로, 바울을 통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날 때 희망 없던 우리 인생이 어떻게 근본적으로 변하는지 살펴본다. 4부에서는 우리 삶의 여러 특정 영역에 자리 잡은 깊은 두려움들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부활에 힘입어 거기에 맞설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예수의 부활은 신기한 마술이 아니라 선한 침략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신자의 현재 삶을 속속들이 재창조한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힘의 위력'이 이제 우리 안에 있다. '나를 위해 가장 깊은 어둠으로 뛰어드신 예수'를 바라보라. 인간의 자원이 아니라 '다시 사신 예수' 안에서 안식하라. 두려운 현실 한복판에서 '온 세상을 새롭게 하시고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누리다!
목차
서문. 모든 두려움을 몰아내는 생명의 빛
프롤로그. '거짓 희망'과 '불안'이 뒤엉킨 세상을 표류하다
Part 1. 답 없는 세상, 희망을 묻다
: 확실한 희망
1. 인생 단 하나의 희망, 다시 사신 예수
Part 2. '부활 복음'으로 성경과 인생 새로이 읽기
: 장래의 희망
2. 예수 부활, '미래의 창조세계'를 '오늘 여기'에 들여놓다
: 영광스러운 희망
3. 예수 부활, 잃어버린 하나님 임재를 회복하다
: 이 땅의 가치관을 뒤엎는 희망
4. 복음의 역사, 늘 인간의 직관에 반하게 움직였다
: 궁극의 대반전
5. 반전의 절정, 그분이 우리와 자리를 맞바꾸시다
Part 3. 예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다
: 인격적인 희망 Ⅰ
6. 내 틀과 범주로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다
: 인격적인 희망 Ⅱ
7. 내 연약함이 곧 하나님과의 연결 고리다
Part 4. 두려운 현실 한복판에서 부활의 권능을 입다
: 당신을 위한 희망
8.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온 삶이 생명을 입다
: 관계를 위한 희망
9. '은혜'의 새 자아를 입고 경청하다
: 정의를 위한 희망
10. 가난하고 약한 사람을 사랑하는 자리에 '능동적으로' 서다
: 고난 중의 희망
11. 터져 나오는 눈물, 낭비하지 않고 '기쁨의 씨'로 뿌리다
: 미래에 대한 희망
12. 부활 예수, '끝'이 아닌 '새 시작'을 향해 역사를 이끄신다
에필로그. '가장 깊은 흑암을 통과하신 예수'께 마음의 닻을 내리라
감사의 말
주
리뷰
책속에서
부활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서 저절로 그것이 우리의 "산 소망"이 되지는 않는다. 부활이 실제 사건임을 아는 데서 그치지 말고 부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부활절을 제외하고 부활을 자세히 논하는 설교를 들었던 때를 떠올려 보라면, 대부분은 잘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중략)…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객관적 사실을 아는 것은 바울의 말대로 "그〔분의〕 부활의 권능"(빌 3:10)을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후자는 직접 체험함으로써 인격적으로 안다는 뜻인데, 놀랍게도 여태 교회가 이 부분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준 내용은 많지 않다. …(중략)… "예수는 ……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같은 구절들에서 보듯이, 예수님의 죽음만이 아니라 그분의 부활도 우리를 구원한다. 그런데 대다수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제시하다가 구원받는 법을 설명할 때면, 온통 십자가 이야기만 하고 부활은 곁다리로 덧붙이거나 아예 생략해 버린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4절에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라고 했다. "헛것"의 헬라어 원어 "케노스"는 "능력이 없다"는 뜻이다. 그의 말인즉 "불의에 맞서 싸워야 한다"든지 "불안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등의 윤리적 권면은 아무리 옳은 말일지라도 무력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역사 속에서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말이다. 그분이 부활하셨기에 우리에게는 선을 위해 힘쓸 이유가 얼마든지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살 내면의 능력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분이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고대 철학자들과 현대 과학자들이 공히 말하듯이 세상은 결국 불타 없어질 것이다. 살아남아 그것을 슬퍼할 사람도 아무도 없을 것이고, 누가 무엇을 하든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시대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는 자신이 진지하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 줄로 안다. 스스로 꽤 착한 사람이라 여긴다. 그러나 대다수 그리스도인이 바울처럼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깨닫듯이, 우리는 결코 진리를 진지하게 추구한 적이 없다. 삶을 자신이 주관하고 싶어 자신의 욕망에 맞는 진리와 신을 원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만나 주셨고, 우리 눈이 멀어 정당한 근거도 없이 그분을 불신하고 있음을 은혜로 깨우쳐 주셨다. 바울에게 벌어진 일도 그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예수가 누구인지 자신이 안다고 생각했으나 다 잘못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