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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54616010
· 쪽수 : 284쪽
책 소개
목차
미쿠마리
세계를 뒤덮는 거미줄
2035년의 오르가슴
세이타카의 하늘
꽃가루와 꿀벌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겠다고 결심한 듯한 얼굴로 “지금까지 고마웠어” 하고 내 정면에 앉은 안즈가 작은 소리로 말하며 머리를 숙였다. “가지 마.” 주저할 틈도 없이, 내 입에서 이 말이 튀어나왔다. “싫어 안 돼. 싫어 안 돼. 가지 마 가지 마 가지 마 가지 마. 나를 두고 가면 안 돼.” 꼴사납게 떼쓰면 안즈가 안 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나는 아이니까. 안즈는 그런 나를 딱 한순간 울 것 같은 얼굴로 바라보더니, “이제 그만 돌아가야지” 하고 아까보다도 더 작고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다리 한가운데 바보가 된 양 우두커니 서서 저녁 해에 벌꿀색으로 물든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떨어지면 죽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았지만, 2학기 개학날 목발을 짚고 비칠비칠 학교로 걸어가는 내 모습이 떠오를 뿐이었다.
「미쿠마리」
내가 원하는 손길은 오직 타쿠미 군의 손길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쿠미 군의 등으로 손을 돌리자, 전보다 훨씬 넓어진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여름의 햇볕을 받아 쑥쑥 성장해가는 해바라기 같은 타쿠미 군의 몸도 언젠가는 반드시 말라갈 거야.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늙어가는 인간의 몸에 대해 생각하자, 나는 아이같이 소리 내어 울고 싶어졌습니다.
캄캄한 우주에 떠 있는 지구가 하늘거리는 투명한 거미줄로 덮여 있고 수많은 문자와 동영상과 음성이 오갈 때마다 그 가느다란 실이 반짝반짝 빛난다면, 무척 아름다울 겁니다. 나와 타쿠미 군의 이 순간은 그 거미줄 위로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영원히 떠돌 겁니다. 미안해, 타쿠미 군. 나와 만난 것이 불시에 얼굴에 달라붙는 거미줄같이
네 인생에 달라붙어 다니게 될지도 몰라. 멍청하고 못생기고 뚱뚱하고 불임에 변태 주부인 나를 지금까지 만나줘서 정말 고마워.
「세계를 뒤덮는 거미줄」
열다섯 살의 여름방학. 나는 아직 처녀고, 가슴도 A컵이고, 호우 속에, 내 방에 갇혀 있다. 옆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타쿠미가 자고 있다. 타쿠미의 발바닥이 내 눈 앞에 있었다. 혀를 내밀어 그 발바닥을 핥아보았다. 아주 조금 짠맛이 났다. 비가 그치면 타쿠미의 어머니에게 수건과 비옷을 돌려주러 가야지. 타쿠미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고, 나는 타쿠미의 방에 거침없이 들어가 올라타고 주먹으로 때려줘야지. 타쿠미의 눈앞에서 료타와 둘이서 주스를 단숨에 마셔줘야지. 내가 스스로 이젠 됐다 할 때까지. 싫어해도 끈질기게 타쿠미의 방에 가는 거다, 하고 나는 결심했다. 한 번 더, 타쿠미의 발바닥에 입을 맞췄다.
「2035년의 오르가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