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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54635301
· 쪽수 : 452쪽
· 출판일 : 2015-03-10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는 아직 학생이었을 때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이 소설가는 변변한 현실 경험도 없으니 금방 쓸거리가 바닥날 거다, 아니면 요즘 젊은이처럼 기발한 변신을 도모할 요량이겠지, 하는 식의 야유를 듣곤 했다. 그래도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때가 오면 ‘익사 소설’을 쓸 거다. 그 소설을 쓰기 위한 수련을 하고 있는 거다. 그렇게 생각했다. ‘나’로서 쓰기 시작해 강 아래 물살에 흐르는 대로 몸을 내맡기다가 드디어 이야기를 끝낸 소설가가 단번에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가버리는, 그런 소설……
사실 나는 소설다운 소설 한 권 제대로 읽지 못했을 무렵부터 내 ‘익사 소설’의 한 장면을 꿈에서 보았다. 여러 번 반복되던 그 꿈은, 열 살 소년 때의 체험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그리고 스무 살에 어떤 시인의 영시(프랑스어 버전도 함께 있었다)에서 ‘익사’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아직 단편조차 써본 적이 없을 때였는데, 내 소설은 이미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 머리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지만, 그것은 내 머리가 혼란스럽고 무력해져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뇌가 명쾌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자각한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 맞다. 진행중인 작업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커다란 안도감과 함께 참담한 자조감이 나를 엄습한다. 말하자면 여기에 있는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죽은 나 자신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전혀 없음은 당연한 일. 이어서 그것과는 다른 공황감이 찾아온다.
수면 밑에서 물길 가는 대로 떠오르다가 가라앉는다……하지만 아직 소용돌이에 휩쓸린 건 아니다. 뿐만 아니라 he라고 하고 있으니, 이 나는 나이면서 내가 아니다. 나는 그다, 아버지다. 현기증의 공격을 받은 나 자신보다 스무 살 이상 젊은(지금의 감각으로 말하자면 장년인) 아버지다. 익사한 아버지. 그리고 나는,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