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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88954756150
· 쪽수 : 232쪽
책 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
제1강. [비블리오 게네세우스] 이 오래된 책에 묻다
그리스도교보다 먼저 탄생한 「마태복음서」 / 이 오래된 책이 아직도 유효할까? / 고전의 자격 / 뒷모습을 비추는 거울 / 렘브란트의 그림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기둥까지 / 천지창조 이전의 독백 / 윤동주의 시 「팔복」 / 문(文)의 세계
제2강. [역설과 해체의 통치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인생은 결국 한 줄로 요약된다 / 족보의 반전 / 혈통을 거부하다 / 역설과 해체 / 구원에 담긴 정치적 의미 / 새로운 통치자를 맞이하는 법 / 대학살을 부른 크리스마스 / 희생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제3강. [격돌하는 두 질서] ‘회개한다’는 것에 대하여
난세를 살아가는 네 가지 방법 / 오독과 참뜻 / 기존 체제를 향한 정면 도전 / 진실 앞에 선 우리 /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니 / 낙관과 용기 / 권력보다 중요한 것
제4강. [새 나라의 윤리와 지혜] 철학자처럼, 통치자처럼
악인에게도 해는 떠오른다 / 계급 사회의 윤리 / 철학자처럼 행동하라 / 통치자처럼 행동하라 / 전통적 지혜 / 전복적 지혜 / 실천적 지혜 / 악의 순환을 끊는 법
제5강. [기적이 바꾸는 것] 빛이 있는 곳으로 담대하게 걸어가라
과학적 방법론과 기적 / 세리와 함께 한 식사 / 마태의 소명에서 순교까지 / 침묵 듣기 / 자신을 낮추는 이들에게 /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아무것도 못하는
제6강. [변혁의 시어] ‘합당한 것’과 ‘정의로운 것’
산문적 인생의 복판을 가로지른 시 / 보물을 맞딱드린다면 / 낙관과 확신의 비유 1 :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 낙관과 확신의 비유 2 : 하늘나라는 누룩과 같다 / 포도원 주인의 비유 : 합당한 품삯은 얼마인가? / 정의로운 분배 / 능력주의와 공정함
제7강. [공존의 윤리] 나의 눈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비판과 심판 / 내 눈 속에 들보 / 공동체의 윤리 / 돌이킬 공간을 줄 것 / 인과응보의 사슬 / 어떤 세상에 살고 싶은가
제8강. [전복적 상상력]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성전을 뒤엎다 / 기복 아닌 혁명 / 납세 논쟁 / 부활 논쟁
제9강. [살해의 구조와 십자가형] 나도 예수를 죽인 자인가
십자가형 / 사건을 기억하는 법 / 제자들의 배신 / 책임 있는 자 / 십자가에서 내려다본 얼굴들 / 반복되는 희생의 구조
제10강. [부활이 연 상징 세계] 다시, 끝까지 살아내는 용기
부활의 시작 / 내가 스파르타쿠스다 / 빈 무덤에서 갈릴리로 / 부활은 어떻게 사실이 되는가 / 가르침을 통한 통치 / 생존을 넘어 상징 세계로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클래식이란 한 사람이, 한 사회가, 인류가 전쟁과 같은 위기 상황에 있을 때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정신적 자원이 될 만한 사상, 지식, 책을 일컫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고전’이라 부르는 것에는 생존과 그 이상의 인간다움을 구현하는 ‘강력한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한편 전쟁이 났는데 보낼 수 있는 자원이 자기 아들밖에 없는 사람들,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을 ‘프롤레스(pr?es)’라고 불렀습니다. 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노동자 혹은 노동자계급이라 알고 있는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라는 말의 뿌리가 바로 ‘프롤레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태복음서」는 고전입니다. 이 옛 문서는 인간은 누구인가,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인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목표로 살아야 할까,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신적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기적이란 무엇인가, 용기란 무엇인가, 희망은 어디서 오는가, 폭력에 맞설 수 있는가, 새로운 질서를 꿈꿀 수 있는가, 이런 심오한 삶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심도 있는 대답을 제시합니다. _‘제1강’ 중에서
광야에서 은둔 생활을 벗어난 요한이 외쳤습니다. “회개하시오. 하늘나라가 이미 가까이 왔습니다.” 바로 이 외침, 일종의 슬로건을 예수가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비유하자면 이어달리기에서 뒤에 오는 주자에게 바통을 건네주듯이, 이 슬로건과 거기에 내포된 의미를 세례자 요한이 들고 뛰다가 예수에게 건네줍니다.
요한의 저 외침은 오늘날 비종교인뿐 아니라 많은 기독교인도 오해하는 구절입니다. 회개하라는 말부터가 그러합니다. 회개하라고 하면 뭔가 기분 나쁘지요. 내가 뭘 잘못했나 싶고, 잘못한 것도 별로 없는데 회개하라니 언짢습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이나 예수가 말한 ‘회개하라’는 것은 도덕적, 윤리적, 법적 죄를 돌이키라는 뜻 이상입니다. ‘삶의 방식 자체를 돌이키라’는 의미이지요. _‘제3강’ 중에서
인간의 존엄은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예수는 늘 오른뺨을 맞는 사람들에게 고개 숙이지 말라고 합니다. 당신도 존엄하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채무자로 평생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돈이 없다고 자신의 삶을 함부로 유린하도록 놓아두면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가난한 삶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법과 권력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함부로 대하고, 그 삶에 짐 지우는 이들에게 경고하지만 동시에 법과 권력의 힘에 짓눌려 슬기와 용기와 위엄을 접어두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법과 권력으로 다른 사람을 편의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늘 당해온 사람들은 자기는 마땅히 그런 대접을 받아도 된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말합니다. 그렇지 않다고! 당신은 철학자 통치자라고. _‘제4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