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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과학 > 기초과학/교양과학
· ISBN : 9788956608433
· 쪽수 : 540쪽
· 출판일 : 2015-03-10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헤켈의 이론과 그것을 생물학뿐 아니라 정치학과 심리학에 적극적으로 응용하려는 태도는 유럽의 세계적 팽창과 정복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출현했다. 아홀로틀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그 팽창이 시작되는 중심에 놓여 있었다. 스페인이 멕시코를 정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참화가 빚어지긴 했어도, 아홀로틀은 포로로 살아남아(아홀로틀은 실험실과 수족관에서 아주 잘 번식한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더 정교한 세계관의 발달에 기여하고 있다. 인류와 도롱뇽 모두를 위해 더 나은 무언가를 약속하는 그런 세계관 말이다.
_1장 〈아홀로틀〉 중
재생아에서 부속지가 재구성되는 과정은 동물이 처음에 배아 발달 단계를 거치면서 부속지가 형성될 때의 과정과 비슷하지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 배아에서 부속지가 발달할 때의 사건 순서는 언제나 부속지의 뿌리(어깨나 엉덩이)가 형성되는 것으로 시작하여 점점 더 먼 쪽에 있는 구조들을 만들어가다가 이윽고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만드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아홀로틀은 부속지가 어디에서 잘리든, 상처가 어디에 있든 간에, 그 잘린 부분만을 재생한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도롱뇽이 불의 비밀을 안다고 믿었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이 기이한 동물―그중에서도 아홀로틀―은 생명의 불꽃을 지피는 단서를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현대 동물우화집에 실릴 만하다.
_1장 〈아홀로틀〉 중
항아리해면이 속한 강인 보통해면류(Demosponges)는 원생대 말기인 크라이오제니아기(Cryogenian), 즉 ‘눈덩이 지구’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가장 오래된 현생 다세포동물이다. 이 초기 해면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생명의 온전한 악보로 나아가는 첫 화음 중 몇 가지를 연주했으며, 다른 모든 다세포동물은 이 계통의 첫 가지 중 어느 하나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다음에 해면을 보면, 당신보다 해면을 더 닮은 무언가가 당신의 직계 조상임을 생각하자. 그들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경이로움을 간직한 존재이며, 그들이 개척한 생명 과정들에 우리가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떠올리자. 빌붙어 살아가는 쪽(sponger)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다.
_2장 〈항아리해면〉 중
장수거북은 우리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쉽게 들려줄 수 있다. 잔혹함, 어리석음, 황폐함이 난무하지만, 가장 암울한 와중에도 극적인 회복의 가능성이 엿보이는 이야기(개체군의 수가 멸종 직전까지 갔다가 회복되고 생태계가 복원되는)를 말이다. 환경 보전론자들은 특히 그런 이야기를 원한다. 물론 오래된 전형적인 이야기의 변주곡이다. 상실, 회복, 새로운 지혜, 새로운 번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말이다. 그래도 나쁘진 않다. 사실 그것은 우리의 본질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상의 것이 있다고 생각하며, 어쨌거나 현대판 동물우화집은 중세 동물우화집이 그랬듯 다중적인 의미와 모순을 함축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장수거북을 화두로 삼아서 자연 자체를 생각할 수도 있다.
_12장 〈장수거북〉 중
씰룩거리면서 먹이 알갱이를 안으로 밀어 넣는 게의 입을 지켜보고 있자면, 나는 아무리 불합리하게 여겨질지라도 음란하게 탐식하는 기계를 보고 있다는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다. 따라서 이것이 예티게가 많은 연갑류 사촌들과 더불어 문턱의 생물임을 말해주는 두 번째 방식이다. 그들은 우리가 으레 구분하는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나는 이것이 로봇과 로봇을 보는 우리의 태도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_26장 〈예티게〉 중
많은 연구자들이 하나의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메커니즘을 연구하거나 컴퓨터로 유전체 서열을 분석하고 이론 모형을 구축하는 데 매진하는 이 시대에도, 육안으로 직접 제브라피시의 배아 발달을 관찰하는 일에는 매혹적인 무언가가 있다. 세포들이 발달하고 모이고 갈라지면서 주요 기관들과 각종 구조들을 형성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자면, 마치 생물학의 맨 밑바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흔히 말하듯이, 우리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_27장 〈제브라피시〉 중
하지만 일이 어떻게 될지를 정확히 예측하려고 할 때면, 이 모든 요소들뿐 아니라 다른 요소들도 로르샤흐 잉크 얼룩(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헤르만 로르샤흐는 무작위적인 잉크 얼룩에서 어떤 이미지를 보느냐에 따라 심리를 분석했다─역자 주)과 같아진다. 즉 우리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간에 거의 다(하지만 전부는 아닌) 얼룩 속에서 찾아내어 읽을 수 있다. 지구-인간 시스템의 복잡성이 아무리 애써도 알아낼 수 없는 것이 반드시 많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라면, 초인간주의(transhumanism)의 두 비판자가 말하듯 우리는 ‘겸손함을 회복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듣고 싶어 하는 목소리뿐 아니라 듣기 어려운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다. 오이디푸스 이야기에서처럼, 비극은 우리가 들으려 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
_〈결론,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