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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학 > 사회복지
· ISBN : 9788957335796
· 쪽수 : 296쪽
책 소개
목차
머리말
1부 복지국가를 낳은 웹 부부의 삶
1. 웹 부부의 사회민주주의
누가 비어트리스를 아는가 / 웹 부부와의 인연 / 개인주의 비판 / 공공서비스의 정신 / 점진주의 / 사회민주주의 / 복지국가 / 웹 부부의 사상사적 위치 / 1부의 구성
2. 비어트리스 포터의 사회민주주의자로의 성장
긍정적 자아와 부정적 자아 사이의 갈등 / 진보의 시대, 노동의 비참 / 가문의 발전 / 내성적 소녀 / 허버트 스펜서 / 신앙과 직업을 찾기 위한 노력 / 위장취업 / 1880년대의 상황 / 부스와 라운트리의 사회조사사업 / 비어트리스의 사회조사사업과 여성 참정권 문제 / 협동조합과 사회주의
3. 시드니 웹의 사회민주주의자로의 성장
시드니 웹의 성장 / 공무원과 사회교육 / 제테티컬협회와 쇼 / 페이비언협회의 시작 / 페이비언주의의 형성 / 페이비언협회의 기본원칙 / 신노조운동 / 『페이비언 사회주의』
4. 웹 부부의 사회민주주의 잉태 ― 노동조합, 교육, 복지
1890년대의 결혼 /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집 / 『노동조합운동의 역사』 / 『산업민주주의』 / 사회민주주의 교육개혁 / 지방자치 연구 / 빈민법 개혁
5. 웹 부부의 사회민주주의 형성 ― 노동당
영국의 정당 / 노동당 창당 / 페이비언협회의 변화 / 제1차 세계대전과 노동당 활동 / 1920년대의 정치활동 / 1920년대의 저술활동 / 소련 방문 / 만년의 생활
2부 복지국가에 대한 웹 부부의 생각
1. 초기 사상과 페이비언주의
페이비언협회 / 비어트리스의 초기 논문 / 협동조합 연구 / 최초의 페이비언 트랙트 / 쇼의 페이비언주의 / 『사회주의자를 위한 사실』과 『런던 사람들을 위한 사실』 / 『페이비언 사회주의』 서문 ― 국유화와 점진주의의 원칙 / 『페이비언 사회주의』 제2장 ‘역사’ / 19세기 자유주의와 20세기 사회주의 / 시드니의 전통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 / 경제이론과 도덕 / 체제 이행을 위한 계획 / 페이비언 사회주의의 한계
2. 의회사회주의, 지방사회주의, 교육사회주의
시드니의 정치이론 / 지방사회주의와 도시사회주의 / 도시사회주의의 특징과 한계 / 교육사회주의 / 런던정치경제대학교의 설립 / 런던대학교의 개혁
3. 노동조합주의와 산업민주주의
『노동조합운동의 역사』의 구조 / 『노동조합운동의 역사』 서론 / 『노동조합운동의 역사』의 의의 / 『노동조합운동의 역사』의 관점 / 『노동조합운동의 역사』의 한계 / 민주주의와 자유 / 『산업민주주의』의 경제학 / 내셔널 미니멈
4. 복지국가주의
빈민법의 역사 / 신빈민법 / 빈민법 철폐와 실업대책 구상 / 「소수파 보고서」 / 베버리지 / 복지국가와 민주주의
5. 웹 부부에 대한 평가
평가의 다양성 / 러셀의 평가 / 토니의 평가 / 베버리지의 평가 / 클리프의 평가 / 레닌의 평가 / 베른슈타인의 평가 / 나의 평가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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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책속에서
“우리가 아는 영국 여자가 몇 명일까? 엘리자베스 여왕? 그리고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대처는 복지국가를 사회주의라고 욕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런 말이 옛날부터 복지국가나 사회주의를 용납해온 영국이나 유럽에서는 큰 울림을 가져오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사회주의는 물론 복지국가를 주장해도 ‘빨갱이’라는 식으로 와전될 수도 있기 때문에 엄청난 울림, 고막까지 찢는 파괴력을 초래한다. 대처가 그렇게도 싫어해 파괴하고자 한 복지국가를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은 또 한 사람의 영국 여성 비어트리스 웹과 그녀의 남편 시드니 웹이었다.”
“웹부부가 쓴 「소수파 보고서」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문서 중 하나였다. 그것은 전반적인 사회보험제도를 주장한 「베버리지 보고서」보다 35년 앞서 복지국가의 개요를 명확하게 묘사한 것이었다. 비어트리스는 빈민법을 완전하게 해체하여 그 기능을 지방당국에 이양하기를 요구했으나 다수파는 그 존속을 주장했다.”
“그녀는 페이비언협회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자 했으나 그전에 죽었다. 이어 4년 뒤 시드니가 죽었다. 그들은 함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당시 90세가 넘은 (버나드) 쇼가 《타임스》에 투고한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부부가 함께 묻힌 것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