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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58611530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15-10-12
책 소개
목차
죽음과의 경주 7
엄마의 인생 56
죽음을 응시하며 81
촛불이 꺼지듯 120
신 앞에서의 침묵 183
산자와 죽은 자 191
영원한 이별 196
실존, 혹은 공허 208
옮긴이의 글
리뷰
책속에서
나는 존경스런 마음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는 아주 오랫동안 스스로가 아주 젊다고 믿어왔었다.
언젠가 사위가 엄마의 나이를 두고 말실수를 하자, 엄마는 심술궂게 쏘아 붙였다.
“그게 몹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나도 안다네, 내가 늙엇다는 걸. 하지만 자네가 그걸 알려주려고 애쓸 필요는 없어.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야.”
엄마는 사흘 동안이나 마침 안개 속에서 헤매듯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오갔었다. 그리곤 갑자기 일흔여덟이라는 당신의 나이 앞에 과감하게 그리고 똑바로 설 수 있는 힘을 찾아냈던 것이다.
‘이제 내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칠 때야.’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놀라운 용기로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를 펼쳤었다.
엄마가 마흔 살 때인가, 어쩌다가 가구에 가슴을 살짝 부딪치기만 해도 엄마는 겁에 질려서 이렇게 말했었다.
“유방암에 걸릴지도 몰라.”
지난 해 겨울, 내 친구 한 명이 위암으로 수술을 받았을 때는 “아마 나도 위암에 걸릴 것 같아.” 하고 말했었다. 그때 나는 단지 어깨를 움찔해 보였을 뿐이다. 사실 타마린드잼으로 치유되는 변비와 암 사이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엄마가 가지고 있던 강박증이 언젠가 현실로 나타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윗입술 부근에 솜털이 살짝 덮힌 엄마의 얼굴은 어떤 뜨거운 관능을 드러내고 있었다. 두사람의 애정은 확실하고 완전해 보였다. 아버지는 엄마의 두 팔을 안고 애무하면서 귀에 대고 달콤한 말을 속삭이곤 했다.
내가 예닐곱 살쯤 되었을 때다. 어느 날 아침, 엄마는 하얀 천으로 된 하늘거리는 긴 잠옷을 입은 채 붉은 양탄자가 깔린 복도에 맨발로 서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흰 목덜미 위로 흘러내렸고, 입가에는 눈부신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엄마의 모습은 이제 막 나온 침실과 어떤 신비로운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싱싱하 모습의 여인이 바로 내가 존경하는 커다란 사람, 곧 나의 엄마라는 것은 겨우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