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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59139224
· 쪽수 : 496쪽
책 소개
목차
나오미 이야기
가나코 이야기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역 앞의 양과자점에서 선물로 쿠키를 사서 가나코의 맨션으로 갔다. 봄답게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가나코는 화장까지 하고 웃으며 맞아줬다. 다만 부기는 가셨지만 멍 자국은 여기저기 남아 있어서 가슴 아픈 것은 변함이 없었다. 나오미는 새삼스레 남자의 폭력에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나오미는 이혼을 권할 생각이었다. 가정 폭력이 당사자들로만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부모님을 봐서 알고 있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휘두르는 폭력은 광기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며, 당사자들에게만 맡겨놓는다는 것은 방치나 다름없는 일이다.
아케미가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죽여버리세요” 하고 내뱉었다. “그런 남자는 살 가치가 없어요. 죽여도 아무 불만 없을 겁니다.” “그건 좀…….” 역시 나오미는 할 말을 잃었다. “죽이면 감옥에 가잖아요. 나만 손해예요.” “그럼 잡히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생각해야죠. 나 같으면 상하이로 같이 여행 가서 거기에서 갱한테 의뢰해 죽일 거예요. 중국 갱의 소행이니까 일본 경찰은 손을 쓸 수 없겠죠. 중국 경찰은 일본인 여행자가 한 명 죽은 정도로는 쉽게 수사하지 않아요. 그걸로 끝이에요.” 아케미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나오미는 이 여사장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분명 중국인에게 산다는 건 전쟁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활을 지키기 위한 거짓말이나 책략은 모두 정당방위가 된다. “나도 그렇게 강해지고 싶네요.” 나오미가 한숨을 섞어 말했다. “당신은 충분히 강해요. 내가 만난 일본인 여자 중에서 제일 강한걸요.”
나오미는 즉흥적인 의견을 말로 옮기면서 정말 이게 실현될 수는 없을까, 하고 목이 바싹 타들어가는 기분으로 생각했다. 농담이아니라 다쓰로는 죽는 편이 낫다. 아니, 죽어 마땅한 인간이다. “가나코가 바라는 건 뭐야?” 나오미가 묻자 가나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평범하게 살고 싶어” 하고 말했다. “밤이면 꼬박꼬박 잠을 자고 맛있는 물만 먹을 수 있으면 돼.” “뭐야, 맛있는 물이라는 게.” “써. 물이. 처음에는 입속이 갈라져 따끔따끔 아팠는데 그게 익숙해지자 이번에는 쓰게 느껴져.” “그래……. 틀림없이 정신적인 문제일 거야.” 맛있는 물이라. 나오미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지금의 가나코는 평범한 일상조차 소중한 것이다. 그것을 잃은 그녀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로에 들어와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탈출할 기운도 빼앗겼다. 남편의 폭력에 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