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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고무신

달과 고무신

박목월 (지은이), 정민 (엮은이)
태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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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고무신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달과 고무신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59666959
· 쪽수 : 240쪽
· 출판일 : 2015-04-25

책 소개

태학산문선 306권. 박목월 수필집. 2015년 박목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의 제자인 정민 교수가 기존에 간행된 목월의 각종 산문집에서 대표적 글 44편을 가려 뽑아 <달과 고무신>으로 묶어 그의 수필 세계를 정리했다.

목차

제1부 고향의 풍경
동화적 환상
첫 여행
달과 고무신
바다의 수수께끼
명주 안감
안개 속에서
낚시
왕릉의 달무
경상도적(的)
고향을 생각함
램프
교직 조끼

제2부 나의 문학 여정
문학적 자서전
천애(天涯)의 유배지
문단 데뷔 전후
지훈과 나
학 같던 두진
『청록집』출판 기념회
땅에서 파낸 작품
1950. 6. 25.
때 아닌 입영
습기에 전 책들
갈증과 사투리
시지프스의 형벌
지훈의 마지막 모습
환상의 지도
구황룡의 아지랑이와 꽃고사리
이리 온, 참새야
정결한 바위

제3부 일상의 경이
미하엘의 미소
한국의 아내
모 씨 부인의 축구 시합 구경
새끼 염소
등의자에 앉아서

밤과 난(蘭)

씨 뿌리기
3분간의 명상
일기 세 도막
삼온(三溫)
금붕어와 꽃나무
오솔길의 사상
바다
태몽의 신비
시와 신앙에 대하여

발문: 박목월 선생의 산문 세계_정민

저자소개

박목월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16년 1월 6일, 경상남도 고성(固城)에서 부친 박준필(朴準弼)과 모친 박인재(朴仁哉) 사이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고성이지만, 본적지는 경상북도 월성군 서면 모량리(毛良里) 571번지로 기록되어 있다. 본명은 영종(泳鍾)인데 동시를 지을 때는 이 이름을 사용했다. 그는 계성중학교 재학 중에 동요시인으로 각광을 받았다. 1933년, 윤석중(尹石重)이 편집하던 ≪어린이≫란 잡지에 동시 <통딱딱 통딱딱>이 특선되고 같은 해 ≪신가정(新家庭)≫이란 여성 잡지의 현상 공모에 동요 <제비맞이>가 당선된 이후 많은 동시를 썼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엄마 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 어릴 적에 누구나 애송했던 이 동요도 목월의 동시인 <얼룩송아지>를 가사로 하고 있다. 목월은 1939년 9월호에 <길처럼>과 <그것은 연륜(年輪)이다>로 첫 번째 추천을, 같은 해 12월에 <산그늘>로 두 번째 추천을, 그리고 1940년 9월에 <가을 어스름>과 <연륜(年輪)>이란 시로 세 번째 추천을 받고 공식적으로 시단에 등단했다. 후세에 남겨진 박목월(朴木月)이란 이름은 목월이 ≪문장≫지에 응모할 때 본인 스스로 지은 이름이다. 작명할 때 아이디어는 수주(樹洲) 변영로(卞榮魯)와 소월(素月) 김정식(金廷湜)에게서 따왔다. 수주의 나무 수 자를 나무 목으로 바꾸고 소월의 달 월 자를 그대로 따와서 붙인 이름이다. 조국이 해방되자 당시 출판계에 발이 넓었던 조풍연(趙豊衍)은 ≪문장≫의 추천 시인 몇 사람을 묶어 합동 시집을 내면 좋겠다고 을유문화사에 제의해서 ‘자연(自然)’을 공통분모로 시작을 하고 있던 박목월, 박두진(朴斗鎭), 조지훈(趙芝薰) 등 3인의 합동 시집을 기획하게 되었다. ‘청록집(靑鹿集)’이란 시집명은 목월이 제안해서 이루어졌다. 그 결과 1946년 6월 6일, 해방 후에 처음 나온 창작 시집으로 ≪청록집≫이 간행되었다. 1947년 목월은 10여 년 가까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뒤에 모교인 대구 계성중학교의 교사로서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1949년 서울의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사로 초빙되어 교편을 잡으면서 한국문학가협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산아방(山雅房)’이라는 출판사를 경영했다. 1950년 6월에는 ≪시문학≫ 창간호를 조지훈, 박두진, 이한직(李漢稷) 등과 함께 발행했다. 그러나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그 창간호는 종간호가 되고 말았다. 전쟁이 발발하자 목월은 공군종군문인단의 일원이 되어 활동했다. 그는 휴전 후에 홍익대학교와 서라벌예술대학교 등에서 강의하다가 1959년 4월 한양대학교에 부임해 1978년 은퇴할 때까지 국문학과 교수로 재임하면서 문리과대학 학장을 지냈다. 1968년에 시인협회 회장에 선임된 이래 작고할 때까지 연임했다. 1955년에 시집 ≪산도화(山桃花)≫로 제3회 아세아자유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68년에는 시집 ≪청담(晴曇)≫으로 대한민국문예상 본상을, 1969년에는 ≪경상도(慶尙道)의 가랑잎≫으로 서울시문화상을, 그리고 1972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다. 지 ≪아동≫(1946), ≪동화≫(1947), ≪여학생≫(1949), ≪시문학≫(1950) 등을 편집하고 간행했으며 1973년부터는 월간 시 전문지 ≪심상(心象)≫을 발행했다. 교수로, 시인협회 회장으로, ≪심상≫의 발행인으로 1인 3역을 감당하던 목월은 과로가 쌓여 갔다. 당시 그는 이미 고혈압을 지병으로 앓고 있었다. 1973년 삼중당에서 ≪박목월 자선집(自選集)≫을 간행했다. 그리고 1976년에는 생애 마지막 시집이 된 ≪무순(無順)≫을 발간했다. 한양대 교수직에서 퇴임한 목월은 그의 나이 63세 되던 해인 1978년 1월, 서울 원효로의 효동교회에서 장로 안수를 받았다. 그러나 장로 장립을 받은 지 약 두 달 만인 3월 24일, 새벽 산책에서 돌아온 뒤 현기증을 느끼며 자리에 누워 지극히 평안한 모습으로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그의 유해는 용인 모란공원에 안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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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엮은이)    정보 더보기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조선 지성사의 전방위 분야를 탐사하여 한문학 문헌에 담긴 깊은 사유와 성찰을 우리 사회에 전해온 인문학자이자 고전학자. 옛글에 담긴 전통의 가치와 멋을 현대의 언어로 되살려왔다. 저서로 다산 정약용의 복잡다단한 면모를 복원한 《다산의 일기장》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연암 박지원의 산문을 살핀 《비슷한 것은 가짜다》 《오늘 아침, 나는 책을 읽었다》, 18세기 조선 지식인과 문헌을 파고든 《호저집》 《고전, 발견의 기쁨》 《열여덟 살 이덕무》 《잊혀진 실학자 이덕리와 동다기》 《미쳐야 미친다》, 한시의 아름다움을 탐구한 《우리 한시 삼백수》 《한시 미학 산책》 등이 있다. 청언소품집인 《점검》 《습정》 《석복》 《조심》 《일침》, 조선 후기 차 문화사를 총정리한 《한국의 다서》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 산문집 《체수유병집-글밭의 이삭줍기》 《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 어린이를 위한 한시 입문서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등 다수의 책을 지었다. 근래에는 초기 서학 연구에 천착해, 조선에 서학 열풍을 불러온 《칠극》, 초기 교회사를 집대성한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 서학 주요 문헌인 《서양 선비, 우정을 논하다》 《역주 눌암기략》 《역주 송담유록》 등을 펴냈다. 2022년 롯데출판문화대상 대상, 2021년 한국가톨릭학술상 번역상, 2020년 백남석학상, 2015년 월봉저작상, 2012년 지훈학술상, 2011년 우호인문학상, 2007년 간행물문화대상 저작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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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그 뒤로도 나는 분황사에 드나들게 되고 달빛 속에 떠오르는 탑신은 물에서 갓 건져낸 것처럼 맑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탑신을 씻어 내리는 달빛에는 형언할 수 없는 설움이 깃들고, 탑의 표정도 전과는 다르게 애수를 머금고 있었다. 참으로 한 켤레의 평생 처음 신어 보는 신기한 신발을 잃어버림으로써 달과 달빛과 깊은 애수에 잠긴 탑의 서러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럴수록 탑은 더욱 아름답고 달빛도 한결 아름다웠다.


그 후 20년의 세월. 나는 ‘스스로 맺는 풀 열매’ 같은 작품을 빚으며 살아왔다. 성의를 다하였음에도 가난하기 그지없는 것밖에 이룰 수 없다면, 이미 그것은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시로 말미암아 청춘이 병들었더니, 시로써 다시 뜻이 서게 되었구나.”
이것은 지훈의 말. 내게는 감개무량한 말이다.


나는 늘 혼자였다. 사무가 끝나면 거리로 나왔다. 거리랬자 5분만 거닐면 거닐 곳이 없었다. 반월성으로, 오릉으로, 남산으로, 분황사로 돌아다녔다. 실로 내가 벗할 것이란 황폐한 고도(古都)의 산천과 하늘뿐이었다. 이 유배의 지역에서 나는 스물, 스물하나, 스물둘―그야말로 꽃 같은 젊음을 보냈다. 왕릉에 누워서 달을 보는 것, 기와 조각을 툭툭 차면서 길을 걷는 것, 밤이면 램프 밑에서 책을 읽는 것, 그리고 아무 주막에서나 술을 마시는 것. 그 외에 낮이면 주판알을 튕기는 것이 전부였다. 이 풀 길 없는 고독이 안으로 응결되어 나의 초기 작품 세계의 터가 잡히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시를 쓰는 것과 시인이 되는 것 외에 다른 소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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