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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88960532212
· 쪽수 : 344쪽
· 출판일 : 2012-03-15
책 소개
목차
7. 걸승(乞僧) 김민세
8. 한양으로
9. 스승의 부름
10. 대결
11. 밀양 천왕산
12. 내의원(內醫院)
저자소개
책속에서
문둥이 소년을 한 팔에 끼고 김민세는 강물을 타고 헤엄쳤다. 김민세의 목에 두 손을 감은 채 자기 또한 죽을 곳으로 끌려가는 게 아닌가 어린 문둥이는 소리 내 울어댔다. 김민세가 외치고 있는 소리는 “나를 용서해다오. 내가 너를 기어이 낫게 해주마”였다.
그 소리를 수없이 외치며 이윽고 강을 건넌 김민세는 그 길로 밤을 도와 서울로 향하며 과 천 어간 인적 뜸한 물레방앗간에 소년을 기다리게 하고 서울로 달렸다. “내가 기어이 네 병 을 고쳐줄 것이니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려라”수없이 다짐하고 다짐한 채.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원으로서 비록 천형의 환자일지언정 네 사람씩이나 살인을 했다는 사람으로서의 양심 따위가 쓰려서 소년과 약속을 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것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것만도 아니었다. 그는 이미 한 사람의 의원으로서 자기 눈앞에 나타난 저 대풍창이라는 참혹한 병에 연민을 느낀 한 의원으로서 새로 눈을 뜬 것이 었다.
세상에 하늘이 있다면 저럴 수 없다 싶엇다.
“네가 저 병을 못 고치면 내가 저 병을 고치리라!”
서울로 오는 동안 김민세는 구름 사이로 파랗게 드러난 그 조각난 하늘을 너라고 타매하며 수없이 주먹을 내둘렀다.
- 중권
‘내일 사시까지 이백육십 리.’
약재를 써는 허준의 동작이 정지했다. 말인즉 오늘과 내일하고 이틀을 꼽을수 있되 기실 그 건 내일 새벽까지와 사시까지의 한나절을 의미했다.
“그러나……”
‘어서 떠나야 해!’
허준의 손은 아직 약재를 썰고 있었다. 위중한 병자였다. 저 천둥벌거숭이 같은 떠꺼머리에 게 부자附子라는 극약이 섞인 약을 달이게 할 순 없었다. 또 자기가 지어주고 자기가 달여 준 약을 먹고 병자가 편안해하는 모습도 자기 눈으로 보고 싶었다.
아니 그보다 자기가 떠난 후에라도 산천에 자생하는 약초를 일러주어 아들의 효성으로 제 어미의 병을 낫울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아니야!”
하고 허준의 칼질이 다시 멎었다. 과장 입장은 내일 아침의 사시일지라도 과장에 들어가는 수속은 내일이 아니요 바로 오늘 해 안으로 내의원에서 마친 후 그 시권試券을 받아들어야 내일 과장에서의 입장도 허용될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한양에 도착해야 할 시간은 내일 사시가 아니라 내의원 시관들이 퇴청하기 전인 바로 오늘 신시申時: 오후 3~5시까지 가 닿아야 하리라.
그건 절망이었다. 개처럼 달리고 새처럼 날아가지 못하는 한 오늘 해 안으로 이백육십 리 길을 갈 순 없다.
- 중권
이에 너 허준은 명심하라. 염천 속에서 내 몸이 썩기 전에 지금 곧 내 몸을 가르고 살을 찢어 사람의 오장과 육부의 생김새와 그 기능을 똑똑히 보고 확인하고 사람의 몸속에 퍼 진 삼백예순다섯 마디의 뼈가 얽히는 이치와 머리와 손끝과 발끝까지 퍼진 열두 경락과 요소를 살피어 그로써 네 정진의 계기로 삼기를 바라노라.
읽기를 마친 허준은 복받치는 감동과 비통함에 다시 유의태에게 엎드려 울부짖었다.
“어찌 이럴 수가 있사오리까. 버려진 시체가 있다 하기 기대한 것이옵지 어찌 그것이 스 승님인 줄 알았으……리……까.”
무너진 허준의 손에서 안광익이 유의태의 유서를 뽑아들고 읽기 시작했다. 허준의 가슴은 터질 듯했다.
‘유의태! 유의태!’
아직도 피를 흘리고 있는 스승의 손목을 움켜쥐고 허준은 숨이 막힐 듯했다.
지난날 그가 아들 도지에게 말했던 비인부전非人不傳이라는 말이 이제야 새삼 허준의 가 슴 복판에 마치 불덩이처럼 되살아나 뜨겁게 뜨겁게 담금질하고 있었다. 배워서흉내 내는 재주도 아니며 한 권 책 속에 담긴 지식도 아니다. 스승은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죽여 자기 에게 물려준 것이다.
- 중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