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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학/외교학/행정학 > 정치인
· ISBN : 9788962170825
· 쪽수 : 408쪽
· 출판일 : 2013-10-09
책 소개
목차
책 머리에
프롤로그 _ 시대의 별, 지다
Ⅰ부 세상에 움트기 시작한 김재익이라는 씨앗
1장 김재익, 태어나서 자라다
2장 스탠퍼드의 수재, 자유주의에 눈을 뜨다
3장 유신 정부 시절, 안정론을 잉태하다
Ⅱ부 꽃을 피웠고, 꽃이 졌다
4장 신군부와의 운명적인 만남
5장 기득권과의 싸움이 시작되다
6장 수입 자유화, 그리고 물가
Ⅲ부 우리는 지금… 그를 그리워한다
7장 그의 사후에 꽃핀 한국의 경제, 그리고 김재익의 사상
8장 인간 김재익
에필로그_그를 추억한다(미망인 이순자 교수 인터뷰)
_김재익 박사와 함께 한 5년을 추억하며(맹정주)
부록 1_김재익의 마지막 연설
_김재익이 걸어온 길
_‘김재익 펠로우십’ 발족식에서의 이순자 교수 연설 전문
_2011년 서울대 발전 공로상 수상식에서의 이순자 교수 인사말
리뷰
책속에서
2010년 11월, 신문을 보니 미망인 이순자 교수께서 ‘김재익 장학재단’을 만든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평생 모은 거의 전 재산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가난한 나라의 젊은이들이 서울대학교에서 공부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에 쓰도록 하겠단다. 장학금의 첫 수혜자로 몽골, 인도네시아 청년이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김재익을 위해 무엇을 했나? 남은 가족은 사재를 털어놓는데, 우리 사회는 그를 위해 뭘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 박사에 대한 추모사업이 체계적, 가시적으로 이뤄지는 게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낯이 뜨거워졌다. 후세인들이 너무 무심하지 않나? 혹시 나 자신이라도 뭔가 할 일이 없을까? 고심하다 얼핏 ‘평전’의 필요성이 떠올랐다. 그의 삶과 업적을 객관적으로 기술(記述)한 정통파 평전 말이다.
1970년대와 80년대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오로지 모든 요소들을 ‘민주주의에 동참했느냐, 독재 정부에 동참했느냐’로 구분 짓는 것은 매우 어리석다. 역사에는 단지 그 두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살펴보았고 앞으로도 살펴보겠지만, 김재익은 철저히 정치적으로 무색무취한 테크노크라트였다. 김재익에게 중요한 것은 조국의 발전이었고, 국민들의 삶이 개선되는 것이었다. 김재익 같은 테크노크라트에게 정치 권력 구조란 어찌 보면 적절한 관심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의 재능을 어떻게 해서든 국민들에게 돌려주고 싶어 했고, 오로지 그 일에 매진했던 인물이었다.
김재익이 국보위 참여를 결심했을 무렵 이런 일이 있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김재익의 아들이 “아버지는 왜 독재 정권에 협력하려 하십니까?”라고 항의를 한 것이다. 당시 젊은이들에게 신군부의 쿠데타는 곧 군사 독재의 연장을 뜻했다. 아들의 항의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이 질문에 대해 김재익은 조금도 흔들림 없이 이렇게 답했다. “경제의 개방화와 국제화는 결국 독재 체제를 어렵게 하고, 시장경제가 자리 잡으면 정치의 민주화는 자연히 따라온다. 아빠가 하려고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라고.
김재익이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있으면서 기득권층과 가장 격렬하게 부딪쳤고, 가장 무참하게 패퇴한 대표적 사건이 바로 1982년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이른바 ‘금융실명제 파동’이었다. 김재익은 경제 정의 실현을 이루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한국에 금융실명제 도입을 추진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이 꿈의 실현을 위해 기득권층과 그야말로 목숨을 건 전투를 벌였다. 그의 오랜 벗인 이상우(李相禹) 서강대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그 사건은 “‘정치로부터 경제의 해방’을 추진하려던 김재익과 이를 저지하려던 신군부 핵심들과의 사투(死鬪)”였다. 많은 사람들이 금융실명제를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재임 시절 도입된 제도로만 알고 있지만, 그 제도의 도입을 위해 정치적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싸웠던 1982년의 김재익이 없었다면 금융실명제는 어쩌면 더 오랫동안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