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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으로 읽는 동아시아 삼국지 2

옆으로 읽는 동아시아 삼국지 2

(한중일 동아시아史를 한 바늘로 꿰어낸 신개념 역사서)

이희진 (지은이)
동아시아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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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으로 읽는 동아시아 삼국지 2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옆으로 읽는 동아시아 삼국지 2 (한중일 동아시아史를 한 바늘로 꿰어낸 신개념 역사서)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아시아사 > 동아시아/극동아시아사
· ISBN : 9788962622324
· 쪽수 : 548쪽
· 출판일 : 2018-06-12

책 소개

한중일 동아시아史를 한 바늘로 꿰어낸 신개념 역사서 <옆으로 읽는 동아시아 삼국지 2> 중세편. 분량이 1권 '고대'편의 1.5배에 달한다. 총 548쪽에 중세시대 동아시아 삼국의 역사를 담아냈다.

목차

들어가면서

1장 율령체제의 붕괴와 수습
1. 중국: 5대10국시대의 혼란
당의 멸망과 5대10국시대의 시작 | 5대의 변화 | 10국의 부침 | 요의 건국과 세력 확장
2. 한국: 신라의 붕괴와 고려의 성립
신라의 붕괴와 후삼국 성립 | 왕건의 정변과 후삼국의 통일 | 왕건의 정책 | 광종의 개혁 | 호족 세력의 제도권 흡수와 전시과
3. 일본: 율령체제의 붕괴
체제 붕괴의 조짐 | 장원의 발달 | 인세이 | 무사 세력의 부각 | 호겐·헤이지의 난 | 당풍문화와 국풍문화

2장 새로운 체제의 성립
1. 중국: 송과 이민족 왕조
북송 건국 | 요의 체제 정비와 쇠락 | 서하의 대두와 파란 | 송의 개혁 시도와 좌절 | 금의 등장 | 요의 몰락 | 요의 사회와 문화 | 북송의 붕괴 | 금의 북송 정벌 | 남송의 성립 | 금의 전성기 | 금의 붕괴 | 남송의 안정과 쇠퇴 | 금의 멸망 | 금의 사회와 문화 | 남송의 멸망 | 송의 사회와 문화
2. 한국: 고려 문치체제의 확립
성종의 개혁과 중앙집권체제의 확립 | 통치제도와 이념의 정비 | 고려 초의 국제정세와 거란과의 분쟁 | 고려의 신분 구조와 과거 | 고려 정국의 혼란과 대외관계 | 묘청의 등장과 금과의 관계를 둘러싼 갈등
3. 일본: 막부체제의 성립
겐페이 전쟁과 겐지의 부각 | 가마쿠라막부의 성립 | 호조씨의 대두와 조큐의 난 | 호조씨의 통치 | 가마쿠라시대의 산업과 문화 | 가마쿠라시대의 사상

3장 몽골제국의 등장과 동아시아
1. 중국: 칭키즈칸의 등장과 몽골제국
칭기즈칸과 몽골제국의 부각 | 칭기즈칸의 유산과 몽골제국 | 쿠빌라이의 등장과 원의 성립 | 쿠빌라이 사후의 혼란과 원의 쇠퇴 | 순제의 즉위와 원의 몰락 | 홍건적의 반란과 원의 멸망 | 원의 사회와 문화
2. 한국: 무인 정권에서 몽골의 영향까지
무인 정권의 등장과 권력투쟁 | 최씨 정권의 성립 | 농민과 천민의 봉기 | 몽골의 침략과 항쟁 | 무인 정권의 종말 | 원의 일본 원정과 고려의 희생 | 원의 간섭과 고려의 변화 | 지배기구의 개편과 개혁 | 고려 후기의 불교계 개혁
3. 일본: 몽골의 침공과 그 이후의 변화
몽골의 일본 침공 | 몽골의 침공 이후 발생한 후유증 | 가마쿠라막부의 붕괴 | 겐무신정 | 난보쿠초시대 | 무로마치막부의 성립

4장 원의 몰락과 새로운 체제 모색
1. 중국: 명의 건국
주원장의 부각 | 홍무제의 정책 | 영락제의 등장과 명의 팽창 | 명의 안정 | 명 내부의 혼란 | 잠깐의 중흥, 그리고 쇠퇴
2. 한국: 고려에서 조선으로
원의 몰락과 공민왕 | 신흥사대부와 이성계 | 원과 명의 교체, 그리고 조선의 성립 | 사대부 중심의 개혁 | 조선의 새로운 신분제 | 태종의 등장과 개혁 | 조선의 전성기를 이끈 세종 | 세종이 죽고 세조가 등장하다 | 훈신을 키운 세조 | 문치주의의 확립 | 사림의 성장과 파란
3. 일본: 센고쿠시대를 거쳐 통일까지
슈고다이묘의 부각 | 무로마치막부의 경제적 기반과 국제무역 | 무로마치막부의 혼란 | 왜구와 동아시아 | 농민의 저항, 잇키의 시대 | 오닌의 난 | 무로마치막부의 몰락 | 무로마치시대의 문화와 사회 변화

5장 동아시아, 전란에 휩싸이다
1. 중국: 명의 붕괴와 동아시아의 혼란
가정제의 즉위와 북로남왜의 위협 | 융경제와 만력제의 개혁 시도 | 명 정치의 파행과 전란 발생 | 누르하치의 등장과 명의 몰락 | 명의 멸망 | 명 후기의 사회와 문화
2. 한국: 조선 체제의 약화와 전란
사림이 세력을 얻으며 시작된 당파 싸움 | 16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격변과 조선 군사력의 약화 | 임진왜란의 발발 | 심해지는 당쟁 와중에 이룬 광해군의 업적 | 인조의 즉위 뒤에 닥친 위기 | 병자호란 이후의 갈등과 북벌을 둘러싼 파란 | 예송 문제와 현종의 즉위
3. 일본: 동아시아 대전쟁의 뿌리
센고쿠다이묘의 부각 | 유럽 세력의 아시아 진출과 일본에 대한 영향 | 오다 노부나가의 등장 | 정리되는 센고쿠시대 |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센고쿠시대의 종말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개혁 | 조선 침공

6장 전란 복구에서 근대의 입구까지
1. 중국: 중원의 새로운 정복왕조, 청
청 제국의 성립 | 청의 전성기를 이끈 강희제 | 파란을 딛고 이어진 청의 전성기 | 이어진 전성기, 그리고 이율배반적 쇠퇴 | 청의 몰락 | 서양 세력의 침략과 태평천국의 반란 | 청의 사회와 문화
2. 한국: 전란 수습에 이은 변화
환국 | 영조 초기의 탕평 | 사림정치의 붕괴와 사도세자의 죽음 | 정조의 탕평과 개혁 | 북학파의 등장과 상업의 변화 | 조선 후기의 사회 변화와 균역법 | 외척 세도정치와 천주교 |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그리고 대원군 | 조선 후기 사회체제의 붕괴 | 삼정의 문란과 민란 | 풍양 조씨의 권력 장악과 흥선대원군
3. 일본: 에도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집권과 도요토미 가문의 몰락 | 새로운 막부의 정책과 막번체제의 성립 | 에도막부의 사회구조 | 에도막부의 대외 관계 | 쇄국 | 에도막부의 정책 변화 | 에도막부의 혼란 | 에도막부의 동요 | 서양 세력의 접근과 에도막부의 붕괴 | 에도시대의 학문과 문화

마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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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이희진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제멋대로 생각해도 좋다는 식의 인문학 풍조에 염증을 느껴 그나마 객관적이라는 자연과학을 좋아하려고 애를 썼다. 고려대 이과대학으로 진학했던 것도 이러한 노력의 결과다. 하지만 소신껏 공부할 수 있는 대학에 들어가자, 운명의 장난인지 인문학의 유혹을 받게 되었다. 그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2년 더 공부를 강행, 이학사에 더하여 문학사 자격까지 따냈다. 석·박사 과정을 각각 다른 곳으로 진학하는 우여곡절을 겪다가 마지막으로 서강대에 안착했다. 어렵게 들어간 박사 과정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듯이 학문적 자유라는 측면에서는 최고의 행운을 누렸다. 전혀 다른 학풍을 경험한 것이 학문적으로는 귀중한 자산이 되어 신나게 연구 성과를 축적했다. 덕분에 서강대 사학과의 최단기 박사 학위 취득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멀쩡한 박사 학위논문이 표절로 몰리는 비극을 겪은 후 세상을 보는 눈이 삐딱해졌다. 그런 사태를 겪은 이유가 거룩하신 일류대 출신 선학들의 학설을 미천한 신분 주제에 철없이 비판한 것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역사학계 기득권층의 생리가 어떠한 것인가, 역사학 자체는 어떠한 길을 밟고 있는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도 여기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역사에 관한 것이라면 무조건 관심을 갖는 병적인 습관 때문에 너무나 많은 주제에 관해 손을 댔기 때문에 여기서 나열하기가 민망하다. 그래도 박사 학위 주제를 잡을 때부터는, 그동안 한국과 일본에서 많은 관심을 모아온 이른바 ‘임나일본부’의 실체를 밝히는 데 주력했다. 《가야정치사 연구》, 《가야와 임나》, 《한국전쟁의 수수께끼》(공저), 《거짓과 오만의 역사》, 《전쟁의 발견》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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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왕건의 가문은 예성강·임진강과 강화도를 연결하는 해상 세력이었다. 896년에 왕건의 아버지 용건이 궁예 휘하에 들어가며 용건은 철원태수로, 왕건은 금성태수金城太守로 임명되었다. 용건과 함께 궁예 밑으로 들어간 이후, 왕건은 자신의 능력으로 전공戰功을 세우면서, 913년에는 파진찬波珍. 벼슬을 받고 시중侍中에까지 올랐다.
궁예가 미륵관심법을 핑계로 많은 인물을 제거하는 동안, 왕건 역시 역모 혐의를 받아 위기에 처했으나 제거되지는 않았다. 결국 918년 6월, 왕건 수하의 장수들인 신숭겸申崇謙, 홍유洪儒, 복지겸卜智謙, 배현경裵玄慶 등이 정변을 일으켜 궁예를 쫓아내고 왕건을 추대했다.
궁예는 천한 사람의 복장을 하고 도망쳐 산골짜기에 숨어 있다가 부양斧壤(지금의 평강)에서 백성들에게 피살되었다고 한다. 궁예의 개혁은 중앙집권체제 건설의 모범이 되었으나 호족들의 반발로 무산되고 말았다. 호족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한계를 보여줬던 것이다.
918년 왕위에 오른 왕건은 나라 이름을 고려高麗라 하고 연호를 천수天授라 했다. 919년 1월에는 도읍을 다시 송악으로 옮겼다. 궁예와 달리 신라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다. 왕건은 고려를 세우면서 견훤과도 화친을 시도했다. 견훤도 인질을 교환하며 화해를 맺기도 했지만, 견훤이 보낸 인질이 병으로 죽으면서 화친이 깨졌다.
/ 1장 율령체제의 붕괴와 수습


칭기즈칸은 또다시 해외 정벌에 나섰다. 우선 칭기즈칸의 서방 정벌에 참여를 거부했던 서하가 목표였다. 이때 서하는 몽골·금과의 관계에서 시달리던 이준욱이 아들 이덕왕李德旺에게 선위하고 물러난 상태였다. 그 이덕왕이 서하의 헌종獻宗이다. 그는 금과 화친 관계를 맺어 몽골의 정벌에 협력하지 않았다. 칭기즈칸은 1227년 감행된 서하 원정 중 진중에서 병으로 죽었으나, 서하는 멸망하며 몽골군에 의해 대규모 학살을 당했다.
칭기즈칸이 죽은 후 몽골제국의 판도는 서쪽으로 카스피해, 동쪽으로 동중국해, 남쪽으로는 파미르·티베트고원에 이르렀다. 이렇게 광대한 영역의 이질적인 종족과 문화가 몽골제국을 이루는 요소로 흡수되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몽골제국의 보호하에 중국, 페르시아, 인도, 중앙아시아, 흑해 주변에서 러시아까지를 포함한 동양과 서양이 통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교역이 이루어졌다.
몽골의 지배자들은 ‘초원의 길’이라 전해지는 동서의 교통로에 역과 말, 그리고 숙소를 마련했다. 그 덕분에 외국 사절과 여행자들은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몽골제국에서는 파이자라는 여권이 발행되어 여행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탈리아 상인 마르코 폴로가 멀리 중국을 여행하다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그 영향이 크다. 파이자는 현재의 러시아 영토에서 여러 장 발견된 바 있다.
/ 3장 몽골제국의 등장과 동아시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여러 정책을 통해 일본 열도를 안정시켰다. 그렇지만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일본 열도를 장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중국 대륙에 대한 야심을 내비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이묘의 힘을 약화시키고 해외무역을 장악하려 했다는 등 여러 가지가 지목된다.
그렇지만 하나하나의 이유들을 따로 떼어보면 납득이 갈 것 같지는 않다. 그가 정치적 기반이 약했기 때문에 다이묘를 견제할 전쟁을 일으켰다고 보는 시각부터가 그렇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다른 다이묘와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세력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다이묘의 영지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었고 대부분의 다이묘가 꺼리는 원정을 강행할 수 있었다는 점 자체가 그의 권력 기반이 쉽게 흔들릴 상황이 아님을 보여준다.
또 경쟁이 될 만한 다이묘를 견제하려 했다면, 가장 위협이 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빼놓은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조선 침공에 앞세운 다이묘는 고니시 유키나가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등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래에서 성장한 다이묘들이다.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서 할 수도 있는 해외무역을 굳이 전쟁으로 해결하려 했다는 점, 공명심이나 영웅 심리, 아들 쓰루마쓰의 죽음 등도 납득할 만한 이유가 되기 어렵다.
그러고 보면 진짜 이유는 좀 복합적이라 해야 할 것 같다. 그 문제는 일본에서 무사가 권력의 핵심으로 등장한 이후의 구조적 문제였다. 이 체제에서 쇼군과 무사집단의 관계를 유지시켜주는 것이 주군에 대한 봉사를 은상恩賞으로 보상해주는 시스템이었다. 일본 열도가 내란으로 혼란스럽던 시대에는 이런 체제가 쓸모가 있지만, 내란이 해소되어버리면 그 문제점이 드러난다. 은상으로 나누어줄 영지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이 막혀버리기 때문이다.
/ 5장 동아시아, 전란에 휩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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