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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왕조실록 2

신라왕조실록 2

(법흥왕~문무왕 편)

이희진 (지은이)
살림
9,8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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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왕조실록 2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신라왕조실록 2 (법흥왕~문무왕 편)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고대~고려시대 > 한국고대사 > 신라/통일신라
· ISBN : 9788952237125
· 쪽수 : 200쪽
· 출판일 : 2017-08-25

책 소개

살림지식총서 한국사 왕조실록 시리즈. <신라왕조실록>에서 저자는 <일본서기>의 왜곡 부분을 대조해 사실을 바로잡으려는 노력과 함께, 신라 역사를 왕대별로 일목요연하게 서술해 나라의 흥망성쇠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목차

제23대 법흥왕
제24대 진흥왕
제25대 진지왕
제26대 진평왕
제27대 선덕여왕
제28대 진덕여왕
제29대 태종무열왕
제30대 문무왕

저자소개

이희진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제멋대로 생각해도 좋다는 식의 인문학 풍조에 염증을 느껴 그나마 객관적이라는 자연과학을 좋아하려고 애를 썼다. 고려대 이과대학으로 진학했던 것도 이러한 노력의 결과다. 하지만 소신껏 공부할 수 있는 대학에 들어가자, 운명의 장난인지 인문학의 유혹을 받게 되었다. 그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2년 더 공부를 강행, 이학사에 더하여 문학사 자격까지 따냈다. 석·박사 과정을 각각 다른 곳으로 진학하는 우여곡절을 겪다가 마지막으로 서강대에 안착했다. 어렵게 들어간 박사 과정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듯이 학문적 자유라는 측면에서는 최고의 행운을 누렸다. 전혀 다른 학풍을 경험한 것이 학문적으로는 귀중한 자산이 되어 신나게 연구 성과를 축적했다. 덕분에 서강대 사학과의 최단기 박사 학위 취득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멀쩡한 박사 학위논문이 표절로 몰리는 비극을 겪은 후 세상을 보는 눈이 삐딱해졌다. 그런 사태를 겪은 이유가 거룩하신 일류대 출신 선학들의 학설을 미천한 신분 주제에 철없이 비판한 것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역사학계 기득권층의 생리가 어떠한 것인가, 역사학 자체는 어떠한 길을 밟고 있는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도 여기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역사에 관한 것이라면 무조건 관심을 갖는 병적인 습관 때문에 너무나 많은 주제에 관해 손을 댔기 때문에 여기서 나열하기가 민망하다. 그래도 박사 학위 주제를 잡을 때부터는, 그동안 한국과 일본에서 많은 관심을 모아온 이른바 ‘임나일본부’의 실체를 밝히는 데 주력했다. 《가야정치사 연구》, 《가야와 임나》, 《한국전쟁의 수수께끼》(공저), 《거짓과 오만의 역사》, 《전쟁의 발견》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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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어쨌든 신라에서 본격적으로 불교를 도입했던 시기가 법흥왕 때였음은 분명하다. 이때 왕이 불교를 일으키고자 하였으나, 뭇 신하들이 이런저런 불평을 많이 하여 난처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왕의 가까운 신하 이차돈(異次頓: 또는 처도處道)이 제안을 하나 했다. 자신의 목을 베어 반대 여론을 꺾어버리라는 것이다. 법흥왕은 “도(道)를 일으키고자 하면서 죄 없는 사람을 죽일 수 없다”며 반대했으나, “도를 이룰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이차돈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이렇게 이차돈과 시나리오를 짜놓은 법흥왕은 신하들을 불러 불교 도입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물론 신하들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중들을 보니 깍은 머리에 이상한 옷을 입고, 괴상한 논리를 펴는 것이 정상적인 도(道)가 아니다. 이를 방치하면 후회할 것이다. 무거운 벌을 받더라도 명을 받들지 못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그러자 이차돈이 나섰다. “이는 잘못된 논리다.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불교가 심오하여 도를 이룰 수 있다 하니, 믿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을 편 것이다. 법흥왕은 미리 짜놓은 대로 이차돈을 나무랐다. “여론이 기울었는데, 유독 너만 다른 말을 하니 어쩔 수 없다”며 이차돈을 관리에게 넘겨 목을 베게 했던 것이다. 이차돈은 처형당하기 전, 예언 하나를 남겼다.

“나는 불법(佛法)을 위하여 형(刑)을 당하는 것이니, 부처에게 신령스러움이 있다면 반드시 이상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의 목을 베자, 과연 목이 잘린 곳에서 우윳빛처럼 하얀 피가 솟구쳤다.


550년(진흥왕 11) 정월, 백제가 고구려 도살성(道薩城)을 빼앗았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3월에는 고구려가 백제의 금현성(金峴城)을 함락시켰다. 그러자 진흥왕은 거듭되는 공방전에 양쪽이 지친 틈을 이용해, 이찬 이사부가 지휘하는 병력을 통해 이 두 성을 빼앗았다. 그리고 이 성들을 보강하고 군사 1,000명을 방어 병력으로 배치했다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좀 의문이 있다. 바로 다음 해 신라는 백제와 협력하여 한강 지역을 빼앗는 연합 작전을 벌였기 때문이다. 백제가 고구려에게서 빼앗은 성을 신라에 빼앗겼다면 1년도 안되어 고구려를 협공하는 연합이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이 사건이 일어난 시점이나 배경에 왜곡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당나라 군대와 따로 출발한 신라군은 7월 9일, 황산(黃山) 벌판까지 진군했다. 이때 백제 장군 계백(堦伯)의 부대가 먼저 험한 곳 세 군데에 진영을 짜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김유신을 지휘관으로 하는 신라군은 네 번이나 세 군데 요충지를 돌파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병사들의 사기가 꺾였다.
이 상황에서 신라군은 사기를 올리기 위해 즐겨 쓰는 수법을 사용했다. 먼저 장군 흠순이 아들 반굴(盤屈)을 적진으로 돌격시켜 전사하게 했고, 뒤이어 좌장군 품일도 아들 관장(官狀: 또는 관창官昌)을 내몰았다. 관장이 처음에는 생포되었다가, 계백이 돌려보내 돌아왔다. 하지만 다시 되돌아가 싸우다 전사했다. 이렇게 해서 사기를 회복시킨 신라군이 백제군을 격파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계백은 전사했고, 좌평 충상(忠常)과 상영(常永) 등 20여 명은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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