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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사회과학계열 > 정치외교학 > 국제정치학
· ISBN : 9788964362211
· 쪽수 : 463쪽
책 소개
목차
옮긴이 서문 | 한반도 핵 위기의 반면교사, 쿠바 미사일 위기
들어가는 말
프롤로그
1 네메시스
견습 대통령
게임의 주도자
2 붉은 도박
공산주의의 승리
로켓맨
핵경쟁으로
아나디르 작전
공해
3 결정의 고뇌
베를린의 포로
제보
신혼여행
“모두 없애버려라”
검역
4 진실의 순간
모스크바의 밤
어둠 속의 깜박임
나무칼
미국인들이 쳐들어온다!
5 검은 토요일
터키라는 수렁
통제권 상실
“목표물 명중”
비밀 회동
버뮤다 삼각지대
6 부활
일요일의 공포
승자와 패자
분노
7 해결
미션 임파서블
바리케이드로 돌아가다
추수감사절
에필로그
감사의 말
주
찾아보기
책속에서
뚱뚱하고 대머리에 에너지 넘치고, 허세를 잘 부리고, 연기를 잘하고, 종종 떵떵거리곤 하는 흐루쇼프는 젊은 미국 대통령과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었다. 가난한 하층계급 신분으로 태어난 그는 성장 과정, 경력 행적, 정치적 이념에서도 케네디와 완전히 대척점에 있었다. 젊은 케네디의 야망이 의지 강한 자기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흐루쇼프의 야망은, 가족의 실패자로 여겨진 남편과 달리 아들의 성공을 보고 싶어 한 어머니의 바람에서 비롯되었다. 케네디가 국가가 제공하는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면, 흐루쇼프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 케네디가 사람을 다룬 경험이 2차대전 중 PT-109 순찰 어뢰고속정을 지휘한 것이 전부였다면, 흐루쇼프는 생애 대부분을 큰 프로젝트와 많은 사람들을 감독하면서 보냈다. 케네디가 평생을 국제 정치에 관여하기 위해 준비했다면, 흐루쇼프는 60세가 넘어서야 고위급 외교에 처음으로 관여했다. 두 사람 사이의 나이 차이도 컸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은 흐루쇼프 인생과 경력의 전환점이었다. 그보다 스물세 살 젊은 케네디는 바로 그해에 태어났다.
“만일 미국이 독일을 놓고 전쟁을 벌이겠다면 그렇게 하시죠. 아마 소련은 즉시 평화조약을 맺고 그에 따라 대처할 것입니다. […] 전쟁을 원하는 미치광이가 있다면 구속복을 입혀야죠.” 케네디는 깜짝 놀랐다. 지금 흐루쇼프는 대통령을 전쟁으로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그날 늦게 흐루쇼프와의 사담에서 베를린으로 화제를 다시 돌리려던 케네디의 시도는 무산되었다. 흐루쇼프는 강경했다. “무력에는 무력으로 대항할 것입니다.” 케네디는 이 말로 대화를 마쳤다. “추운 겨울이 닥쳐올 것입니다.”
아이젠하워의 뒤를 이은 독일 주둔 미군 감독관이자 1948~49년 베를린 공수작전의 영웅인 클레이를 케네디는 자신의 자문관이자 서베를린 주민들을 안심시키는 사절로 1961년 8월 서베를린으로 보냈다. 클레이는 그 목표를 달성했지만 10월 27일 모든 사람을 대단히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날 그는 동베를린을 포함해 베를린 전체를 자유롭게 이동할 미국의 권리를, 2차대전 종결 직후 4개국 합의에 의해 보장된 대로 집행하기 위해 서베를린과 동베를린 간 국경의 체크포인트 찰리에 미군 탱크를 보냈다. 소련은 자국 탱크를 그 지점에 보내는 것으로 대응했다. 초저녁 즈음 2열의 탱크부대가 체크포인트 찰리 경계선 양쪽으로 100미터 미만의 거리를 두고 서로 대치했다. 탱크에는 포탄이 장전되어 있었고, 만일 상대가 포격하면 대응 사격을 하라는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미군을 지휘하는 클레이 장군은 탱크를 이용하여 새로 건설된 베를린 장벽 일부를 부술 생각이었다. […] 10월 27일 오후 5시에 시작되었던 대치 상황은 10월 28일 오전 11시에 종결되었다. 현장의 명령은 가장 최고위층, 즉 백악관과 크렘린에서 내려왔다. 케네디도 흐루쇼프도 모두 대치 상황이 전쟁으로 발전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