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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기타 국가 소설
· ISBN : 9788965707301
· 쪽수 : 340쪽
· 출판일 : 2018-12-26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 슬픔을 쓰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1장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으면 기다릴게요
2장 내 잠꼬대라고 생각해도 괜찮아요
3장 우리가 아니면 또 누굴 만나시겠습니까?
4장 적은 꿈속에서 파멸시키고 벚꽃은 침대 옆에 흐드러지게 피었네
추천사
리뷰
책속에서
그 무서운 침묵은 어디서 왔을까? 내가 기억하는 짧은 유년기를 가득 채운 건 수없이 다녔던 이사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 여덟 번이다. 매번 도망치듯 떠나 완전히 낯선 곳으로 옮겼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자다가 한밤중에 잠이 깨면 깊이 잠드는 게 무서워 차가운 바닥으로 옮기곤 했다.
나중에야 그것들이 모두 슬픔이라는 것을 알았다. 슬픔에는 정해진 형식이 없다. 꼭 눈물을 흘리며 울어야만 슬픔인 것은 아니다. 슬픔이 침묵의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 오랫동안 나를 가두고 있던 고집, 두려움, 외로움이 군대에서 한꺼번에 나를 놓아주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겐 아직 슬픔이 남아 있다. 털어놓지 않은 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사람의 일생에 몇 번의 연애가 허락된다 해도 나는 단 한 번으로 끝날 수 있기를 바란다. 방금 전 그 길이 첫 번째 길이었다고 해도 그다음은 영영 오지 않으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이런 확고한 생각이 조금 황당할 수도 있지만 사랑이라는 길 위에서 어떤 구간이 가장 옳은지 누가 알 수 있을까? 사랑도 원래 영감처럼 아슴아슴 떠다녀 붙잡기 힘든 것이다. 영감이 찾아오지 않으면 머릿속은 죽은 바다나 다름없다. 그 바다에 거센 파도가 몰아쳐야만 외로운 세상도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파도가 계속 밀려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단 한 번뿐이라도 파도가 치는 그 순간을 담아둘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큰 파도가 지나가면 그 여파가 오랫동안 맴돌게 내버려두고 뭍으로 올라가야 할 때 배를 잘 묶어두기만 하면 된다.
내가 너의 순수함을 사랑하는 건 운명이야. 네가 예뻐서도 아니고, 남자의 본능 때문도 아니야. 내가 사랑하는 건 비가 쏟아지던 그날 오후 처음 본 내게 손짓을 했던 너야. 특별할 것 없는 그 동작이 내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어. 넌 나를 가족처럼 생각했던 거야. 너 자신도 몰랐겠지만. 구부러진 작은 손가락. 천사 만 명이 하나씩 떨어뜨린 만 개의 깃털 중에 유일하게 바람에 날아가지 않은 깃털 하나가 그 순간 내 인생 속으로 날아 들어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