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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88967341886
· 쪽수 : 232쪽
· 출판일 : 2023-09-14
책 소개
책속에서
에우헤니오는 다른 친구들이 나에게 뭐라고 쓰는지 끊임없이 알려 달라고 했다. 다른 아이들의 댓글에 중요한 거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수천 번도 더 그렇게 이야기했다.
“마리나 네가 바보라서 그 말에 담긴 진짜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 그 댓글의 다른 뜻 말이야.”
에우헤니오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나는 행간의 의미를 찾아서 댓글을 읽고 또 읽어 봤다. 단어 하나하나, 글자 하나하나 또박또박 읽으면서 말이다.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네가 그들에게 뭔가 말했을 거야.”
끈덕지게 자기주장만 했다.
“아니라고 맹세해.”
나는 맹세해 본 적이 결코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맹세하는 데 익숙하게 만들었다. 내가 분명하게 말하거나 약속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그에게는 맹세가 필요했다. 맹세가 최상의 것이니까.
“네가 그 애들한테 뭔가 말했을 거라고.”
“아니라고 맹세해.”
수천 번을 맹세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순간에는 그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의 안에 있던 악한 존재가 완벽하게 그의 모든 감각을 장악해 평화롭게 살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아니면, 내가 완벽한 바보라서 상황 파악을 못 했을 수도 있다.
• 본문 <2장> 중에서
희미한 종이의 네모 칸 위에
한 자 한 자 너의 이름을 그려 나간다.
내가 그어 나가는 선이 차가운 네모의 완벽함을 부숴 버린다.
나의 선들은 균형에 맞서 반항한다.
춤을 춘다. 그 회오리 속에서 너의 얼굴이 떠오른다.
부드러운 너의 목소리가 메아리쳐 다가온다.
나의 미소는 그 어떤 미소에도, 그 어떤 마음 상태에도,
그 어떤 이야기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그 희미한 선이 내 마음의 창살이라고
누군가 생각했을까?
• 본문 <3장> 중에서
“정확하게 같은 말을 다시 말해 줄 수 있지.” 에우헤니오가 극단적으로 냉정하게 말했다. “아니면 다른 말로 표현할 수도 있어.”
“말해 봐!”
나는 침착함을 잃고 있었다.
“우리 그만 만났으면 좋겠어.”
똑같은 표현이었다.
그 순간 내 영혼이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아빠의 표현대로 내 영혼이 산산조각 난 것 같았다.
“이제 우리 애인이 아닌 거야?” 멍청하게 물었다.
“응.”
• 본문 <13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