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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 + 문화@혼불_α

서사 + 문화@혼불_α

장일구 (지은이)
  |  
전남대학교출판부
2017-06-30
  |  
12,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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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 + 문화@혼불_α

책 정보

· 제목 : 서사 + 문화@혼불_α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문화/문화이론 > 한국학/한국문화 > 한국인과 한국문화
· ISBN : 9788968494123
· 쪽수 : 268쪽

책 소개

‘서사+문화’ 항은 각각에 관여된 현상이나 텍스트의 의미 관계를 통해 역학적으로 구성된다. 소설 <혼불>을 통해 재구성된 문화장의 횡단적이고 융합적인 의미망과, 이를 통해 확산되는 서사의 문화 가치를 탐색하는 책이다.

목차

서사+문화, 그 방법적 전제들 / 7
문화 객체의 발굴과 서사적 모의 / 16
서사 언어의 문화 변인 / 47
서사 은유의 문화적 함수 / 81
서사적 인지소와 은유의 문화적 자장 / 134
서사의 미감과 문화적 감성 / 181
서사의 저자성과 소통의 문화적 지형 / 218
지평과 남은 단서들 / 246
에필로그 / 252
참고문헌 / 256

저자소개

장일구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현대 소설 이론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현재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이다. 최명희의 소설 『혼불』에 관심하여 저서 『혼불읽기 문화읽기』, 『혼불의 언어』, 『서사+문화@혼불_α』 등을 냈으며, 서사 공간에 관심하여 『경계와 이행의 서사 공간』, 『서사 공간과 소설의 역학』 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을 냈다. 요즈음 공간에 대한 관심을 확장하여 차원・인지・뇌・신경에 관한 과학적 성과를 공부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문학의 조건과 변수를 탐색한 ‘문학 더하기’는 그 과정의 한 소산이다. 이후 관련 워크북이나 문학 입문 교양서를 내려고 하는데, 어느 정도 진척된 상태다. 문학 플러스 인지 과학에 관한 책을 내고자 하는데 다소 원대한 꿈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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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머리말
나는 문학, 그도 소설을 공부할 생각이 없었다. 오만한 얘기이지만 사실이다. 소인배들이 주절대는 소리라는 축자적 의미는 물론 동서의 문학사를 통해 확인한 바, 시정의 소리를 학문의 대상으로 삼을 심산이 전혀 없었다.
대학 신입생 시절, 두서 없고 일천하나마 헤겔과 마르크스의 저작을 탐독하며 변증법적 세계관에 푹 빠져 들었고, 레비스트로스와 기어츠, 터너 등을 통해 문화의 의미망을 탐색하며 학문 여정의 방향을 모색하였다. 특히 방대한 HRAF(Human Relationships Area Files)를 뒤져, 지구 전역 구석구석 삶의 장에서 생활을 도모하며 지혜를 모으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기록한 마이크로 필름과 마이크로피시를 투영해 보면서, 인류의 문화에 대한 흥미로운 경이감을 일찍이 만끽하였다. 여러 문화장을 견주어 이미지를 사상하던 일은 지금 돌이켜 보아도 그 재미가 생생하다. 해석학을 공부하는 때와 맞물리면서 문화에 대한 관심을 구체화하였는데, 문화적 적층의 가장 큰 동력원인 문학에 관심하기 시작한 것은 예기치 않은 수순이었다.
그런 가운데 소설도 연구할 대상으로 삼아도 좋겠다는 생각의 단서를 얻어 방향을 다시 잡게 된 것은 『혼불』 때문(덕이든 탓이든)이다. 여러 자리에서 밝힌 대로 『혼불』을 처음 대면한 기억이 유쾌하지는 않다. 고 김열규 선생께서 과제로 『혼불』(당시 네 권 분량)의 언어적 수행소(performative)를 낱낱이 분석해 오라는 준엄한 명(!)을 내리셨으며, 기한에 맞추기 위해서는 밤을 새워 읽어도 시간이 모자랄 판이었다. 차라리 철학 책이나 문학 이론서를 그만큼 읽으라 하셨다면 기꺼운 마음이었을 것이다. 무에 볼 것 있으리라고 소설 따위(그 때 심산은 정말 이러했다)를 읽는 데 시간을 허비하라는 것인지 불만 가득한 생각 속에 사나흘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과제와 관련된 대목들만 추리며 주마간산할 속셈으로 별수 없이 책을 펼쳤다. 짐짓 그랬다.
시쳇말로 번트 댈 요량으로 『혼불』을 들추기 시작했지만, 이 소설은 사반 세기 넘는 시간 동안 학문의 동반자가 되었다. 석사학위 논문의 중대한 논지를 『혼불』 해석에서 찾았고, 신춘문예 당선의 영예 또한 『혼불』 비평으로 얻었다. 무엇보다, 이론적 관심에 치우친 연구의 균형 잡힌 퍼스펙티브를 통해 온당한 청사진을 그릴 수 있도록 『혼불』이 돕는다. 이 책은 이렇듯 소중한 동반자에게 부치는 연서 중 하나다.
실은 이 책을 내려고 일하기 시작할 때에는 『혼불』에 대한 연구를 완결하겠다는 심산이 강했다. 저간의 단편들을 모으고 지난 저서의 논지를 사상하여 『혼불』 열 권의 출간 20주년을 기념할 요량으로 『혼불』 연구를 완성할 책을 내겠노라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의치 않은 여러 사정에 직면하면서 마음을 따라 일을 진척시키지 못한 채, 『혼불읽기 문화읽기』를 내던 때와는 달라도 너무 달리 약해 빠진 내 자신의 의지를 원망하며 이 정도 선에서나마 일단락할 수밖에 없다. 『혼불』에 대한 해석이 공전하고 있다고 깨닫고 공간 위상이나 인지 공정과 관련하여 해석의 여지를 넓히고자 애썼지만 현재 한계에 봉착해 있어 여기 담지 못했다. 공간적 사유를 빌미로 그럴싸하게 말하자면, 소용돌이치듯 확산하는 나선형적 사유를 통해 『혼불』의 의미망을 탐색해 가는 과정의 일말을 우선 제시한다고 해도 좋을지는 모르겠다. 대상에 대한 논의 지점에 따른 나선형적 인지 공간의 구성, 확산적ㆍ창발적ㆍ융합적 사유와 인지 도식 구성의 역학 등에 대해서는 장과 시간을 달리하여 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제목 끝에 알파(α) 기호를 꼬리표로 달 수밖에 없다. 몇 명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늘 마음으로만 심려하면서도 오래 뵙지 못한 이재선 선생님을 뵈올 면목과 계기가 생겨서 다행이다. 부쩍이나 세월의 강한 자장을 느끼는 와중이지만, 상대적으로 부지불식간에 성숙하여 소망을 키우고 실현해 가는 서연, 서은 자매를 보며 위안을 얻는다. 더 없는 동반자이자 선생 역할을 해 주는 아내는, 사회적 위상이 예전 같지 않은 국문학자의 삶을 여전히 지지해 주고 『혼불』을 같이 논할 줄 알기에 마음 깊이 고마운 존재다.
부산한 가운데 교정하는 일을 기꺼이 도와 준 정미선 선생과, 기일을 맞추지 못한 사정을 인내하고 결실을 맺도록 배려와 정성을 아끼지 않은 출판부 윤화정 선생님과 송미숙 과장님께 감사의 뜻을 표한다.
최명희 선생께서 더 오래 사셔서 『혼불』도 완결짓고 훌륭한 작품을 더 내 주셨으면 하는 상념이 짙어지는 밤이다. 아뿔싸, ‘강실이’ 이미지에 비견된 진달래 만발한 계절의 기운을 느껴보지도 못하고 지나쳐 버렸군!


서사+문화, 그 방법적 전제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할 줄 아는 존재다. 언어야말로 인간이 다른 생물 종과 변별되게 하는 핵심 자질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른 종들이 소통하는 방식에 비해 언어는 정교한 생각과 감정의 표현과 이해를 통한 복잡한 의사소통을 활성화하는 데 쓰이도록 발전한 고도의 체계이다. 다른 동물들도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며 서로 소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언어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인간의 의사소통 양상에 비할 바는 전혀 아니다.
사회적 존재인 사람들은 의사소통을 통해 관계를 이루고 유지하는데, 다사다난한 삶의 갈등을 엮고 푸는 데 이야기를 동원한다. 이야기를 통해 마음을 나누고 서로의 생각을 견주어 가며 자기 한계를 넘어서게 돕는 공동의 예지를 얻으려 도모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삶의 조건을 조율하고 삶의 장을 둘러싼 환경을 개선하여 삶을 진전시킬 동력을 발전하고자 애쓴다. 이야기는 삶의 발전기이며 이야기의 장은 삶의 발전소인 셈이다.
과연 인간은 삶을 이야기로 이해하고 이야기를 통해 경험을 나누어 삶의 문제를 해결할 지혜를 얻고 생활의 예지를 모아 문화를 구성한다. 요컨대 이야기는 문화의 중요한 구성 동인이자 방편이다. 이야기 없이는 인간 종의 종차에서 구심인 문화를 이룰 수 없으니 이야기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중요한 인자인 것이다.
이야기로 표현하고 이야기로 이해하여 서로의 감정과 생각, 경험 등을 나누는 ‘서사 행위’는 인간의 행위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표지다. 서사narrative는 이야기로써 소통하는 인간 행위의 수렴적 방식이다. 같은 이야기라도 어떻게 하면 더 잘 표현하여 상대방의 이해를 도울 수 있을지 궁리하는 것이 서사 행위를 수행하는 거점인 까닭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서사의 문화적 기능을 타진할 단서를 얻을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문화의 서사적 구성 메커니즘을 추론할 방향을 추산할 수 있다. 나아가 서사 행위를 통해 인간이 거두는 문화적 수렴항과 문화적 소산을 추동하는 서사적 동력의 구심점들을 탐색할 여지를 열 수 있다. 서사와 문화의 관계에 대한 탐색은 단순히 소재 차원의 호환 정도를 묻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둘의 존립과 진전 과정의 본색에 관여된 자질 차원의 호혜적 개연성을 궁리하는 데 맞닿는 것이다.
기실 서사가 문화적 수행의 결과인 까닭에, 서사와 문화의 관계는 자명해 보인다. 특히 매체가 다변화되고 문화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확산되는 가운데, 서사적 소통의 영역 또한 다른 매체와의 공분모를 전제로 모색하는 등 서사와 문화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듯하다. 가령 소설을 각색하여 영화 대본을 구성하거나, 하나의 이야깃거리를 다채로운 ‘문화적 콘텐츠’로 변주하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일찍이 문화적 상호텍스트성을 단서로 소설의 본질을 간파했던 미하일 바흐친Mikhail Bakhtin의 입론들이 적어도 낯설지는 않게 느껴진다. 오늘날 서사적 수행이 문화의 영역에 포괄되는 현상이 가시화된 데 부응하여 문화와 서사의 관계를 직시하는 관점에서 진행된 연구 성과가 포착되기도 한다.
이때 서사와 문화의 관계가 단순히 소재적 영향 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서사가 문화의 일부라고 해서 모든 서사물을 그 대상으로 환원할 경우, 범주의 기준을 설정하여 연구의 영역을 구획하는 데 난항이 빚어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문화’와 ‘서사’가 ‘무엇’에 상응하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정황과 맥락에 따라 그 외연과 내포가 구성되는 개념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둘의 관계에 관해 논의를 펴는 것이 그리 자명한 논점에 기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문화’나 ‘서사’ 양항 모두 모종의 실체를 상정할 수 있다. 가령 한국의 전통 혼례 문화와 영국의 혼례 문화를 대비하여 변별되는 특질을 골라낼 수 있을 텐데, 이런 경우 문화는 개별적인 삶의 면면을 추산하여 구조적 개념으로 환산한 태에 상응하는 실체로서 전제된다. 세계에 편재한 설화 가운데서 혼사婚事 장애 모티프의 서사적 구조를 추론하는 경우라면 ‘보편적 이야깃거리’로서 서사의 실체를 추정할 수도 있다. 이때 혼례 문화와 남녀의 결연에 관한 서사가 어우러져 이를테면 ‘혼사에 관한 문화적 서사’ 같은 항을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하위 논점들을 아우르는 과정에서 짐짓 문화와 서사의 관계를 논점으로 삼는 연구 영역을 구획할 수 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삶의 다기한 변항으로 말미암아 문화를 고정불변의 실체로 상정할 수 없다는 관점에서 보면, 문화의 현장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수행 양상의 변이형들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문화에서 취한 이야깃거리라도 구조적 모티프에 국한된 것일 수 없다. 게다가 서사의 층위 또한 제재 차원의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고 수행 차원의 이야기에 걸쳐 있는지라, 언뜻 생각하듯이 문화적 모티프를 구현한 이야기에 한정하여 ‘문화적 서사’ 같은 논항을 일별할 수는 없다. 요컨대 ‘이야기’는 그 자체가 문화적 수행의 구심이다. 문화나 서사의 적층성積層性을 염두에 두고 보면, ‘문화’, ‘서사’, 그리고 ‘문화+서사’가 구성적 개념constitutive notion이라는 점은 더욱 명징해진다.
분명 서사와 문화의 관계를 물을 때 그 결과물의 관계를 실체적으로 연관지어 제재 층위에서 연관성을 묻기에 어려움이 없으며, 그러한 논의의 방향이 부당할 리 없다. 그렇지만 두 항을 고정된 실체로 전제하지 않고, 정황 조건에 따라 그 외연과 내포가 형성된다고 보아 구성적 개념으로 전제하자면 그리 단순한 환원 구도에 회부하기 어려운 면이 드러난다. 이런 맥락에서 서사와 문화 양항을 ‘그 무엇’에 상응하는 실체로 대입하지 않고 구성적 개념으로 대입하여, 인간 삶의 다기한 변항으로 빚어지는 다양한 수행의 국면을 이해할 수 있는 수렴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는 ‘총체적 삶의 양식whole way of life’이므로 총체에 상응하는 실체적 국면이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그만큼 삶의 전역에서 작동하는 생활 방식으로서 삶의 과정에 작용하는 구성적 기제로 전제될 수도 있기에, 인간 삶의 다기한 변항에 대입하여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더 생긴다. 문화장cultural fields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문화적 수행cultural performances을 온전히 살필 수 있는 방법적 거점은 문화를 실체로 고정시키지 않고 과정적 구성 개념으로 전제하는 편을 택하여 의미망의 외연을 키우는 유리한 방편을 얻는 데 있다.
서사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야기는 사람들이 제 감정이나 생각, 경험 등을 나누어 공유하는 데 동원하는 손쉬운 방법이다. 그리하여 얻어지는 이야기 편린들을 정리하여 고정된 이야기 편編을 얻을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이야기의 전모가 오롯이 포괄되지는 아니한다. 사람들은 온전히 고정된 이야기의 텍스트라도 소통에 부쳐 그 의미의 여지를 삶의 장에 투사함으로써 삶의 여러 국면으로 의미망을 확산하고 이를 또 다른 이야기 편의 정보원source으로 삼기 일쑤다. 서사는 이렇듯 이야기를 통해 빚어지는 인간적 수행을 이해하는 방법적 개념이다. 이야깃거리fabula, story나 이야기 편plot, text 층위에 국한되지 않는 이야기 소통의 담론discourse 층위를 상정하여, 이야기를 통해 거래되는 문화적 수행의 양상을 온전히 거론할 수 있도록 ‘서사narrative’ 개념이 방법적 거점에서 상정되고 거론되기 시작한 사실을 재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때 이야기가 인간의 소통을 활성화하고 문화적 거래의 구심적 방편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서사적 수행이 문화적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이 강조되는 정황이 여러 국면에서 드러난다.
이렇듯 문화와 서사는 그들 자체로서 자명한 실체가 주어지는 고정태로 대할 것이 아니라 인간적 수행을 통해 외연과 의미망이 변하는 구성적 가능태로 대할 때 그 면면을 살필 최적의 시야가 열린다. 그러니 문화와 서사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자명한 실체적 관계만을 따질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셈이다. 문화적 제재를 이야깃거리로 취했다거나 문화 현장의 면면을 세밀하게 기술하여 이야기의 실감을 드높였다고 해서 문화적 서사의 반열을 짓고 이에 등극시킬 대상을 찾을 궁리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한 지시적 유연성有緣性을 통해 서사의 문화적 가치를 가늠하는 일이 부당한 것은 아니지만, 성원들 사이 소통의 여지를 드넓힐 수 있는 경로를 트는 서사 본연의 문화적 기능을 구현한 가능태에 주목해 마땅하다.
문화와 서사의 관계는 자명한 것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대신 문화에서 취한 제재의 서사화 과정에 작용하는 기법적 역학 관계나, 서사가 소통되는 과정에서 작용하는 기제의 역학 관계 등에서 추론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문화+서사’ 범주를 수행 차원에서 구획하고 텍스트를 해석하거나 창출할 때, 그 대상을 특정한 문화적 수행의 결과물에만 국한해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전통 문화의 단면을 고증하고 복원하는 데 주안하여, 잊혀져 가는 옛이야기를 채록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그만으로 서사의 문화적 층위에 관련된 어떠한 일을 했다고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소통의 매체가 다변화된 오늘날의 문화적 현장에서 거래되는 여러 장르의 서사체를 정리하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거나 디지털 콘텐츠로 각색하는 작업이 긴요하지만, 그것만이 문화 서사의 전역이라고 확정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문화란 삶에 작용하는 지표이면서도 성원들의 삶의 체험이 총화된 지층이기도 하므로, 소통 공동체의 형성을 활성화하는 서사체의 심층을 발굴하는 데서 서사의 문화적 단서를 얻을 수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이야기는 이야깃거리에만 한정되지 않고 이야기하고 이야기 나누어 소통될 때라야 본색이 드러난다. 이야기의 소재와 구조를 재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야기의 구성 원리를 밝히고 이야기의 장에서 펼쳐지는 소통의 기제와 전략을 해석하는 데 서사론narratology의 거점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서사는 문화적 차원의 장르로 수렴되는 것이다. 단순히 제재의 호환성 여부를 통해서만 상호텍스트성 여하를 판단할 수 없듯이, 문화적 제재를 채용한 서사를 단적으로 문화 서사 조합의 범주에 포괄할 수 없다.
서사적 거래narrative transaction에서 파생되는 문화적 상호텍스트성은 분명 문화적 제재를 채용하여 소설이나 영화의 이야깃거리로 삼은 데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삶에 관여된 여러 수행의 장에서 성원들이 소통하여 어우러짐으로써 문화적 공동체가 구축되는 것에 비견되게, 소설을 통한 서사적 소통의 장이 형성될 개연성이 조성됨으로써 서사가 문화적 층위에 산입될 수 있는 식이다. 문화의 장에서 펼쳐지는 입담이나 극적인 상황이 글과 영상을 통해 구현되는 것도 마찬가지 식이다. 물론 어떠한 경우라도 직시적 표지를 통해 관여 자질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저러한 문화와 서사의 관계는 상징이나 기호적 표지를 통해 맺어진다. 그래서 더욱, 대상적 실체를 전제한 제재적 호환성을 단서로 삼을 수 없는 것이다.
문화와 서사의 관계는 관련 텍스트들의 상호성을 산출하는 역학을 통해 구성된다. 서사의 제재가 되는 삶의 장이 구성되는 문화적 표징에 대한 이해, 이야깃거리를 구성지게 하여 그럴싸하게 짓는 과정에서 투사된 마음이 모이는 문화장의 구심에 대한 이해, 구성진 이야기의 효과를 최적화하기 위해 동원하는 매체의 활용을 통해 활성화되는 소통 회로에 대한 이해 등이 그러한 역학의 이해에 관여된 항이다. 이들을 포섭할 수 있는 폭넓은 시야와 촘촘한 의미망을 통해 ‘서사+문화’ 항에 여러 상수와 변수를 대입하여 도출할 수 있는 결과치를 바탕으로 그 가치를 추산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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