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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사 일반
· ISBN : 9788968498848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22-04-30
책 소개
목차
三國ㆍ統一新羅時期의 無等山과 光州 / 변동명 / 7
삼국ㆍ통일신라시기 광주 중심지 연구 / 최영주 /105
高麗의 無等山處士 殷元忠 / 변동명 / 155
무등산 일원의 전통적 수리체계(水利體系) / 이옥희 / 199
무등산 타잔의 메아리, 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 / 유경남 / 235
▪ 간행후기 / 277
책속에서
三國ㆍ統一新羅時期의 無等山과 光州
변동명
Ⅰ. 머리말
무등산(無等山)은 광주(光州)를 상징한다. 사실 이 산이 들어선 지리적 공간은 광주광역시를 넘어 전남(全南) 화순군(和順郡)과 담양군(潭陽郡) 등에까지 미친다. 산줄기가 상당히 넓은 지역으로까지 뻗어나가며 그 위용을 자랑하는 셈이거니와, 광주 말고도 담양이나 화순 등지에서 저마다 제 고을과 무등산 사이의 연관성을 내세우곤 하는 소이연이다. 그렇지만 대체로 무등산이라고 하면 문득 광주를 떠올리고, 또 광주를 생각할 때 먼저 연상되는 자연지형의 상징물로서 무등산을 첫 손에 꼽는 게 일반적인 형세는 아닐까 싶다. 광주사람들이 무등산을 남다른 감성으로 대하며 또한 광주 지역사회와 이 산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일과 같은 것도 그러한 증표의 하나일 터이다.
무등산은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만큼이나 관련 연구도 무척 많다. 간단히 무등산만을 검색어로 입력하더라도 300건을 훌쩍 넘어서는 논저 목록이 줄을 서는 정도이다. 한데 그처럼 일일이 꼽기 어려울 만큼 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막상 무등산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정리된 지식을 찾아내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은 듯 보인다. 인문적인 차원에서의 연구가 더욱이 그러한 듯싶거니와, 학문적인 엄정함을 지키는 가운데 인문학의 측면에서 무등산을 밝히려는 노력이 다소 부족하지는 않았던가 돌이켜보게 한다. 지역민의 삶과 유리시키지 않은 채, 무등산의 모습을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도록 하나하나 따져가는 차분한 자세가 필요한 듯 여겨진다.
이 글에서는 무등산을 광주 지역사회 특히 그 역사와 연관시켜 살피고자 한다. 인문적인 측면에서 무등산에 접근하되 각별히는 그 역사적 부분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광주의 역사적 흐름에 비춰 무등산을 조명함으로써, 지역의 주민들과 애환을 함께 한 이 산의 지난날을 더듬어 그 면모의 일부나마 드러내려는 것이다. 아울러 그 시기는 대체로 삼국(三國)에서 통일신라(統一新羅)에 이르는 사이로 한정하려 한다. 고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통시적으로 한꺼번에 훑어보는 게 중요하다 함은 이를 나위가 없다. 다만 하나의 글에서 그 모두를 다루는 것은 힘에 부치며, 더불어 특정한 시기로 집중하여 밀도 있게 논의하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아 보여서이기도 하다.
먼저 무등산의 명호를 광주의 고을 명칭과 연결지어 살피겠다. 무등산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더듬으며 아울러 그것을 산이 자리한 고을의 명호와 연계하여 다룸으로써, 무등산을 광주 지역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삼으려 한다. 다음으로, 무등산신앙과 무등산가를 검토하겠다. 무등산신앙이 광주 지역민 사이에서 자생하여 전해오다가 국가적 제의체계(祭儀體系)의 일부로 편제되면서 비로소 사서에 그 존재를 드러내거니와, 매한가지로 무등산을 배경으로 하는 고대의 시가인 무등산가를 한데 모아 같이 들여다봄으로써, 그러한 시기 광주 지역사회 움직임의 한 측면을 점검해 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무등산 자락의 개선(開仙마을에 위치하는 석등(石燈)을 고찰하겠다. 이른바 ‘개선사지(開仙寺址) 석등’으로 널리 이름이 있는 유물이거니와, 그 건립의 경위 등을 기록한 명문銘文을 찬찬히 음미하여 당시 지역사회의 동향을 가늠하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위와 같은 논의가 예정대로 진행되어, 삼국과 통일신라시기의 무등산 내지는 그로써 표상되는 광주 지역사회를 이해하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Ⅱ. 無等山의 名號와 武珍州
1. 무등산(無等山)과 무진악(武珍岳)
광주의 무등산을 부르는 이름은 자못 다양하다. 오랜 세월에 걸쳐 널리 쓰여 온 무등산을 비롯하여, 무진악ㆍ서석산ㆍ무당산ㆍ무덤산ㆍ무정산 등 여러 산명(山名)이 전한다. 그런데 이들 여러 칭호 가운데 무당산ㆍ무덤산ㆍ무정산 등은 주로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 설화적인 유래와 함께 입에서 입을 거치며 내려오는 명호이다. 반면에 무등산과 무진악 및 서석산(瑞石山) 등은 지역민의 그러한 칭명과 함께 지지류(地誌類)와 같은 전통시기의 문헌에서 확인이 되는 명호이다. 동일한 산을 가리키는 명호들이지만 그 전래 경위 등에서 다소 차이가 있으며 대략 두 부류로 구분이 된다 하겠거니와, 이 글에서 주로 다뤄야 할 대상은 이를 나위 없이 후자에 드는 그것들이다.
이 산이 무등산이라는 명호로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세종실록(世宗實錄)』의 지리지(地理志)와 『고려사(高麗史)』 등에서이다. 그보다 앞서는 자료인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무등산이 아닌 무진악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한편 서석산(瑞石山)이라는 칭호는 무등산과 매한가지로 『세종실록』 지리지와 『고려사』에 처음 등장하는데, 이후 두 자료를 포함한 대부분의 기록에서 내내 무등산의 별칭(別稱)으로 기록되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