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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고대~고려시대 > 한국고대사 > 백제
· ISBN : 9788968499821
· 쪽수 : 320쪽
· 출판일 : 2023-08-30
책 소개
목차
■권두언: 약속은 지켜야 한다 / 5
甄萱의 擧兵과 光州 定都 / 변동명 / 11
신라 하대의 무진주 / 배재훈 / 65
견훤의 자립과 무진주 호족 / 채희숙 / 123
고고학적 자료로 본 견훤 도읍기 무진주 / 최영주 / 163
견훤설화의 구비전승과 로컬리티 / 이옥희 / 223
후백제 관련 자료의 현황과 쟁점 / 홍창우 / 273
■간행후기 / 317
책속에서
甄萱의 擧兵과 光州 定都
변동명
Ⅰ.머리말
사서(史書)에 따르면, 견훤은 진성여왕 6년(892)에 현 광주(光州)를 도읍으로 정하고 전남(全南) 일원을 그 세력권으로 삼아 자립하여 왕이 되었다. 아직 공공연히 왕을 칭하지는 않았다지만, 스스로 군왕의 행세를 하며 신라의 통치에서 벗어난 독자적 정치세력으로서의 위상을 분명히 하였다. 이후 새로운 정권 수립에 따른 명분을 제시하는 등 체제를 정비하는 한편 영향력을 넓혀나가 전주(全州)를 차지하고 공주(公州)로 세력을 키워갔다. 그가 자서(自署)하였던 것으로 전하는 ‘신라서면도통지휘병마제치지절도독전무공등주군사행전주자사겸어사중승상주국한남군개국공식읍이천호(新羅西面都統指揮兵馬制置持節都督全武公等州軍事行全州刺史兼御史中丞上柱國漢南郡開國公食邑二千戶)’에, 무주(武州)와 함께 전주(全州)와 공주(公州)를 거명하였던 데서, 해당 지역을 자신의 영향권 안에 포섭한 그의 자신감이 묻어난다. 견훤이 900년에 전주로 천도한 것은, 그러므로 그처럼 넓혀간 세력권의 지리적인 중심부 정도에 해당하는 고장을 정치적 근거지로 삼아, 새로이 창업한 왕조로서의 출범을 대내외적으로 공식화하려는 의욕의 산물이었다 할 것이다.
견훤이 전주로 천도하며 후백제의 출범을 공식적으로 국내외에 천명할 수 있었던 것은, 거병한 이래 무주(광주)를 도읍으로 삼아 10년 가까운 기간에 걸쳐 애써 쌓아올린 성과에 의지해서였다. 후삼국의 문을 열며 격동기를 이끌었던, 새로운 왕조의 등장을 알리는 최초의 무대가 광주에서 그 막을 열어 일대 전기를 마련해갔다고 하여 지나친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견훤정권의 광주 도읍시기가 지닌 의미를 헤아릴 수가 있거니와, 그처럼 광주를 거점으로 기반을 다져가던 즈음으로 한정하여 후백제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초반을 검토하려는 게 이 글의 목적이다.
견훤이 광주를 도읍으로 삼아 활동하던 시기를 다룬 연구는 제법 나온 편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그 출신이나 진출해간 지역이라든지 호족 내지 농민의 동향 혹은 군사적 기반이나 대외교류ㆍ교역과 같은, 특정한 분야에 치우쳐 산발적으로 언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광주를 거점으로 새로운 왕조를 건설해가던 견훤정권을 주요한 목표로서 정면 겨냥한 연구는 최근에 한 편이 나온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라도 차분히 더듬어가며 음미할 대목이 적지 않은 듯 여겨지거니와, 광주에 도읍한 시기의 후백제 내지 견훤정권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새삼 나서게 된 까닭이다.
이 글에서 주로 다루려 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견훤이 종군(從軍)하여 거병(擧兵)에 이르는 과정을 찬찬히 따져보도록 하겠다. 그가 군인이 되어 방수군(防戍軍)으로 복무하기까지의 경로라든지 방수군 시절의 행적을 주요한 대상으로 삼아 봉기하기까지의 경과를 차분히 되새겨 봄으로써, 마침내 광주에 도읍하여 왕조를 창업하는 데 성공하기에 이른 경위를 뜯어보려 한다. 둘째, 무진주를 점령하고 자립(自立)하여 자왕(自王)하던 시기의 견훤정권을 들여다보도록 하겠다. 광주를 도읍으로 삼아 정권 수립의 명분을 제시하고 그 세력권을 넓히며 다양한 방면으로 역량을 확충하여 새로운 왕조의 기반을 구축하는 등, 나름의 체제를 갖춰가는 모습을 더듬어 광주 도읍시기 견훤정권의 모습을 알아보려 한다. 셋째, 전주로의 천도를 다시금 조명하겠다. 전주 천도의 경위를 밝히는 일이야말로 견훤정권의 광주 도읍시기가 지니는 의미를 평가하는 데 긴요한 사항이려니와, 이제까지의 여러 견해에도 불구하고 천도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이유를 향한 궁금증이 말끔히 해소되는 데에는 미치지 못한 느낌이다. 견훤 내지 후백제의 입장에서 그것을 거듭 되짚어 음미함으로써, 전주 천도의 필요성을 헤아려 나름의 계통을 세워 정리하는 것은 물론, 더불어 광주 도읍시기의 견훤정권이 마주한 현실을 이해하는 데에도 일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상과 같은 논의가 올바로 진행되어 견훤과 후백제를 둘러싼 논란이 다소라도 줄어들며, 나아가 광주에 도읍한 시기의 후백제 견훤정권을 좀 더 넓은 안목에서 조감할 수 있는 작은 기틀이나마 마련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Ⅱ. 방수군(防戍軍) 생활과 거병(擧兵)
견훤(甄萱)은 방수군(防戍軍)으로 복무하던 중 군사를 일으켜 마침내 후백제(後百濟)를 세운 창업주로서 역사에 그 이름을 남겼다. 거병(擧兵)을 계기로 그가 왕조 건설의 본격적인 첫 걸음을 내딛었으며, 그 거병이 또한 그의 방수군 생활을 바탕으로 가능하였음을 알려준다. 견훤이 군에 들어가 방수군으로 활동하기에 이른 경위라든지 더불어 그의 방수군 시절을 밝히는 게, 후백제가 광주를 도읍으로 삼아 자리를 잡아가는 초창기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임을 알 수가 있다. 우선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