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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불교사의 탐색

고려 불교사의 탐색

변동명 (지은이)
  |  
전남대학교출판부
2019-01-25
  |  
23,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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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불교사의 탐색

책 정보

· 제목 : 고려 불교사의 탐색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고대~고려시대 > 고려시대
· ISBN : 9788968495892
· 쪽수 : 444쪽

책 소개

고려시기의 불교사를 정리하고자 검토한 글을 모았다. 고려시기의 불교를 주로 그 후기의 역사적 전개에 초점을 맞추되, 거기에 고려 불교의 모습을 보여주는 글 몇을 보태어 엮었다.

목차

Ⅰ부 고려후기 불교사의 전개
제1장 圓妙國師 了세와 定慧結社 / 12
제2장 崔氏武人政權時期의 儒者出身 僧侶 / 36
제3장 忠烈王의 妙蓮寺 창건과 法華信仰 / 73
제4장 高麗後期의 法相宗 / 110
제5장 李承休와 佛敎 / 154
제6장 忠宣王과 萬僧會 / 183
제7장 忠肅王의 密敎大藏 金字寫經 / 208
제8장 朱子性理學의 受容과 僧侶의 儒佛觀 / 245

Ⅱ부 고려 불교의 이모저모
제1장 高麗時期의 儒敎와 佛敎 / 296
제2장 和順 雙峯寺 / 331
제3장 曹溪山 佛敎 / 362
제4장 觀音信仰과 바다 / 394

보론[書評] / 418
찾아보기 / 430

저자소개

변동명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남대학교 사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한림대학교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전남대학교 교수 [저서] 『고려후기 성리학수용연구』 (일조각, 1995) 『한국중세의 지역사회연구』 (학연문화사, 2002) 『여수해양사론』 (전남대학교출판부, 2010) 『한국 전통시기의 산신·성황신과 지역사회』 (전남대학교출판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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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Ⅰ부 고려후기 불교사의 전개

제1장 圓妙國師 了世와 定慧結社

1. 머리말
원묘국사 요세(毅宗17, 1163~高宗32, 1245)는 고려 무인정권의 시기를 대표하던 승려 중 한 사람이었다. 白蓮結社를 개창하여 이끌면서, 定慧結社의 普照國師 知訥(毅宗12, 1158~熙宗6, 1210)과 더불어 당대 불교계의 쌍벽을 이루던 고승이었다.
그런데 원묘요세의 그러한 활동에는, 그 선배격인 보조지눌 및 정혜결사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지눌의 권유에 따라 요세가 한동안 정혜결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알 수가 있는 일이다. 아울러 훗날 요세를 계승하게 될 靜明國師 天因(白蓮社 2世社主, 熙宗1, 1205~高宗35, 1248)이 지눌을 계승한 眞覺國師 慧諶(明宗8, 1178~高宗21, 1234)에게 나아가 ‘曹溪要領’을 체득하였으며, 또한 당시 修禪結社 2世 社主이던 혜심이 백련결사의 도량인 萬德寺에 가서 설법을 한 적이 있었다든지, 또는 뒤에 백련사의 4세 사주이던 眞靜國師 天頙(熙宗2, 1206~?)이 수선사의 고승이던 卓然 및 同社의 5세 사주이던 圓悟國師 天英(高宗2, 1215~忠烈王12, 1286)과 교류하였던 사실 등도 양자의 관계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말하자면 요세와 백련결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세와 지눌 내지는 정혜결사와의 관계를 검토하는 것이 긴요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요세와 지눌의 그러한 관계에 대해 관심을 보인 연구자가 그리 많지를 않았다. 다만 요세의 활동이 지눌의 정혜결사에게서 자극을 받은 결과라고 해석하면서, 요세가 정혜결사에 참여했다가 결별한 다음 백련결사를 개창하게 되었던 것은, 그와 지눌이 敎化對象의 根機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지닌 때문이었다는 연구만이 나왔을 뿐이다. 그밖에는 요세와 지눌을 각각 검토하는 과정에서, 스치듯 두 승려의 관계에 대하여 조금씩 언급하는 정도에 그친 게 대부분이었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에 의거하는 한, 그러므로 요세가 지눌의 정혜결사에 참여하게 된 동기가 무엇이었던가라든지, 또는 요세와 지눌 사이에 그처럼 교화 대상으로서의 인간의 근기에 대한 견해에 차이가 나타나게 된 배경은 어떠하였기에 서로 결별해야만 하였던가 등과 같은, 기초적인 문제에 관해서도 여전히 잘 알 수가 없는 형편인 셈이다.
이 글은 위에서와 같은 소박한 의문을 풀어 보기 위해 마련되었다. 주로는 요세를 지눌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할 예정인데, 그리하여 旣成의 中央敎團에 대한 입장 또는 소속 宗派 및 내세우는 사상이나 사회적인 배경 등에 나타나는 두 승려의 공통점과 차이점 등을 검토함으로써, 그러한 궁금증을 해소해 보고자 한다.

2. 요세의 정혜결사 참여와 그 동기
圓妙了世가 定慧結社에 참여하게 된 것은, 普照知訥이 그에게 보냈다고 하는 다음과 같은 偈를 계기로 해서였다.

물결이 어지러우면 달이 드러나기 어렵고
방이 깊어야 등불 더욱 빛나리
권하노니 그대여 마음그릇을 가지런히 하오
甘露漿을 기울여 쏟지 말아야 하느니

당시 靈洞山 長淵寺에서 開堂 중이던 요세는, 이 게를 보고 마음에 맞아[心愜] 곧바로 八公山의 지눌에게 달려갔다고 한다. 그리하여 지눌의 法友가 되어 數年 동안 정혜결사에 참여해 활동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궁금한 것은, 당시 지눌이 요세에게 보냈다고 하는 偈에 내포된 의미가 무엇이었을까 라고 하는 점이다. 승려들 사이에 오고 간 게를 세속적으로 접근하여 함부로 뜻을 풀이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렇지만 거기에 포함된 의미를 대략 가늠해 보는 것은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눌이 요세에게 게를 지어 보냈던 것이 修禪을 권유하고자 하는 의도에서였으리라는 데에는 여러 연구자들의 의견이 일치하며, 실제로 요세의 비문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전한다[勸令修禪]. 다만 지눌의 위 게가 요세를 비판한 것이라든지, 또는 게의 첫 行이 武臣亂 이후의 혼란한 사회상과 開京의 타락한 불교계를 지적한 것이라는 해석은, 다소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위 게에서 풍기는 語感으로는 그것이 단순한 비판이라기보다는 격려의 의미를 지닌 충고 정도로 헤아려지며, 그 첫째 行도 또한 직접적으로 당시의 정치ㆍ사회적 현실을 풍자하였다기보다는 인간의 心性을 비유한 文句 정도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세는 지눌의 위와 같은 충고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지눌의 ‘비판’에 요세가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으리라는 의견이 있다. 그리하여 ‘曹溪禪을 궁금하게’ 생각해서, ‘天台學에 一家를 이룬 몸임에도 불구하고 곧장 지눌을 찾아 갔다’는 것이다. 일견 수긍이 가는 견해이다. 그렇지만 앞서 開京 高峯寺의 법회에서 참석한 모든 승려들을 굴복시켰을 정도로 일가견을 지닌 천태종 승려이었던 요세가 충격을 받았다는 것도 그러하거니와, 단지 지눌의 禪을 궁금하게 생각해서 정혜결사에 참여하였으리라는 데에는 선뜻 찬동할 수가 없다. 요세가 지눌의 권유를 받아들였던 데에는 그 이상의 보다 근본적인 측면에서의 요인이 있었으리라고 믿는다.
요세와 지눌은 서로 상대방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당시 지눌은 八公山 居祖寺에서 「勸修定慧結社文」을 반포한 다음, 선종과 교종을 막론하고 심지어는 유교와 도교의 사람들까지도 결사에 참여시켜 불교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던 중이었다. 요세도 또한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개경의 천태종 법회에서 명성을 떨친 다음, 뜻을 함께하는 동지들과 더불어 靈洞山 長淵寺에서 開堂演法하는 등 불교계의 주목을 받던 승려였다. 그러므로 말하자면 그처럼 불교계에 새 바람을 일으키며 주목받는 승려였던 지눌과 요세가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러한 관심의 결과 요세를 이해하기에 이른 지눌이 그에게 게를 보내었고, 그것을 받아든 요세도 또한 지눌의 의도를 충분히 파악하였기에 서슴없이 팔공산에 가서 정혜결사에 참여하였던 것이 아닌가 여겨지는 것이다. 지눌의 偈가 자신의 마음에 맞다고 여긴[心愜] 요세가, 지름길로 지눌을 찾아가 따르면서[徑往從之] 마침내 그의 法友가 되었다는 요세 비문의 표현이, 반드시 과장된 것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요컨대 요세는 지눌의 禪風이 어떠한가 궁금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지눌을 이해하고 그에 동조하는 입장에서 정혜결사에 참여하였던 것으로 이해하는 게 보다 순조롭지는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세는 지눌의 입장 가운데 어떠한 점에 공감하여 정혜결사에 참여하게 되었을까? 즉 요세가 지눌의 정혜결사에 참여하게 된 근본적인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요세가 지눌에게 공감할 만한 부분으로 먼저 들 수가 있는 것은, 지눌이 내세웠던 禪敎一元의 불교통합사상이 아닌가 한다. 지눌이 제창한 定慧雙修가 교종과 선종 사이의 대립ㆍ갈등을 해소하고자 하는 원리이었음은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처럼 敎禪一致를 표방한다는 점에서는 요세도 또한 매한가지이었다. 그가 속한 종파부터가 그러하였다. 요세의 천태종에서는 敎學과 禪을 통합하여 敎門과 觀門을 조직하고, 이 두 門이 ‘새의 두 날개’ 혹은 ‘수레의 두 바퀴’처럼 늘 함께 해야 함을 내세운다. 天台智顗(538~597)는 맹목적인 수행만을 일삼는 禪師를 暗證禪師라고 비판하였으며, 文字ㆍ語句에만 집착하는 敎學者를 文字法師라 꾸짖었다고 한다. 천태종은 敎觀竝修의 교리체계를 내세우는 불교종파인 것이다. 그러므로 요세의 입장도 또한 그러하였을 것임은 그가 천태종 승려였던 점으로 미루어 분명하다 하겠다. 실제로 요세에 대한 當代 사람들의 평가에도 그러한 점이 잘 나타난다. 다음의 자료를 살피도록 하자.

① 聖人의 가르침을 탐구하여 드높이는 가운데 이윽고 僧科에 급제하였다. 널리 禪門의 빗장을 두드리고 강론하는 자리를 두루 거쳤으며, 三藏의 의미를 궁구하고 百家의 말씀을 구명하였다.
② 方丈 중에는 오직 법복 세 벌과 바루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늘 禪觀을 닦고 불경을 가르치는데, 나머지 시간에는 『法華經』 한 부를 외우고, 准提神呪 일천 편을 念하며, 나무아미타불 일만 번 부르는 것을 날마다의 일로 삼았다. 일찍이 스스로 이르기를, “天台 一門의 교리가 바다처럼 아득히 넓어 배우고자 하는 이가 길을 잃고 헤매인다”라 하고서는, 그 綱要를 뽑아 3大部를 節要한 것을 판에 새겨 퍼뜨리니 후진들이 그에 많이 의지하였다.

사료①은 조정에서 요세에게 원묘국사의 시호를 내렸을 때 閔仁鈞이 찬했던 官誥의 일부이며, 사료②는 崔滋가 찬했던 요세 비문의 일부이다. 위의 자료에 따르면, 요세는 선문의 빗장을 두드리고 삼장의 의미를 궁구했다는 평판을 얻었으며(①), 다시 늘 禪觀을 닦고 불경을 가르쳤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하였다(②). 그가 교와 선의 어느 한 쪽만을 고집하지 않고 천태종의 교리를 따라 敎觀을 兼修하는 승려였음을 알 수가 있다.
또한 그러는 가운데 요세는 천태종의 3大部, 즉 天台 智者大師의 주요한 저술이었던 『法華文句』 20권ㆍ『法華玄義』 20권ㆍ『摩訶止觀』 20권을 절요해서 간행하기도 하였다(②). 『법화문구』와 『법화현의』는 『법화경』의 이론적인 측면(敎相門)을, 그리고 『마하지관』은 그 실천적인 측면(觀心門)을 각각 밝힌 책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요세가 그러한 경전들을 절요하였던 것은, 마치 지눌이 李通玄의 『華嚴論』을 절요하는 등 이론과 실천 방면의 여러 저술을 남겼던 것과 상통한다 할 것이다.
요세는 고려 천태종 가운데 이론적인 교학 중심의 大覺國師 義天과는 계통을 달리한 승려로 이해된다. 고려전기에 활동하던 智宗(太祖13, 930 ~顯宗9, 1018)의 계열로서, 禪宗인 法眼宗風의 경향에 가까운 승려였던 것으로 전한다. 말하자면 요세는 천태종 중에서도 교종보다는 선종 쪽에 더 가까운 계통의 승려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요세가 지눌의 권유에 응해 정혜결사에 참여하였던 것은, 우선 지눌이 내세웠던 禪敎一致의 사상, 그중에서도 선을 중심으로 선ㆍ교 양종의 조화를 꾀하는 부분에 대하여 그처럼 공감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요세가 지눌의 정혜결사에 참여하게 되었던 두 번째 이유로서, 당시 중앙의 기성 불교교단을 비판하는 두 승려의 관점이 동일하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가 있다. 요세는 개경을 중심으로 한 불교계의 세속화 경향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가졌던 듯 보인다. 다음의 기록이 그것을 알려준다.

① … 承安 3년(1198) 戊午年의 봄에 … 모든 승려들이 두려워하여 승복하면서 감히 맞서 저항하지 못하였다. 타고난 성품이 山水를 좋아하였으므로, 비록 名敎에 자취를 남기었지만 그것이 그의 본뜻은 아니었다 …
② … 스님께서 山林에 숨어든 이래 50년 동안 일찍이 王京의 화려한 땅을 밟아 본 일이 없었으며, 시골 마을이나 친척의 일에도 몸소 끼어든 적이 없었다 …
③ … 밤에도 등불을 켜지 않았으며, 잠잘 때에도 까는 자리가 없었다. 檀越이 시주한 물건은 모두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준 채, 方丈 중에는 오직 세 벌의 법복과 바루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

위의 요세 비문에 따르면, 요세는 산수를 좋아하였기 때문에 비록 명교에 자취를 남겼으나 그것이 그의 본뜻은 아니었다고 한다(①). 산림에 은둔하던 50년 동안 한 번도 개경 땅을 밟지 않았으며, 세속의 친척 일 등에도 관여하지 않았다(②). 또한 생활이 매우 검소하였으며, 단월이 시주한 것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도 한다(③). 수도에서 왕실 및 귀족과 결탁하여 명성을 떨치며 화려한 생활을 하던 당시의 세속화한 승려들에 대해 요세가 매우 비판적이었을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요세는 당시 교종과 선종 각 종파 승려들의 수행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견해를 드러내었다. 다음의 자료에서 그것을 알 수가 있다.

… 佛性이 막히고 미약해지며 인간의 根機가 얕고 무디어짐에 미쳐, 도랑물의 세찬 흐름에 맡겨 흘러서 멈추지 아니하는 자가 나타났는가 하면, 文句에 얽매이어 옮기지 못하는 자도 있었다. (또한) 말라 죽은 나무처럼 앉아만 있는 것을 禪이라 이르며, 三觀(空觀ㆍ假觀ㆍ中觀)을 桎梏과 동일하게 여기고, 구멍만큼이나 작은 지식을 지혜로 삼으며, 八戒를 쭉정이나 겨와 똑같이 취급하였다. 스님께서는 이와 같은 시기에 그러한 폐단을 힘써 구제하고자 하였다 …

閔仁鈞이 찬한 위 官誥에 따르면, 당시 교종 승려들은 文句에만 얽매였으며 선종 승려들도 또한 참선한답시고 말라죽은 나무처럼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요세가 그와 같은 폐단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요세가, 세속화된 가운데 각기 소속 종파의 수행 방식이나 교리 연구에만 매달리던 중앙 중심의 기성 교단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며, 그 개혁을 주장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요세의 이상과 같은 태도는 그 모두가 지눌의 그것과 매우 상통하는 것이었다. 이미 지적되어 온 바와 같이 지눌은,

… 그러나 우리 승려들이 아침저녁으로 행하는 바의 자취를 돌아보라. 佛法을 빙자하여 자신이나 남의 겉만을 꾸미어 놓은 채, 구차스럽게 이익과 편안함을 탐내면서 風塵에 파묻혀 지낸다. (그리하여) 도덕은 닦지 않으면서 衣食만 허비하니, 비록 거듭 출가한다고 한들 그 무슨 덕이 있다 하리오 …

라고 당시 승려들의 세속적인 성향을 비난하면서,

… 하루는 同學 10여 인과 약속하기를, “이번 談禪法會를 파한 다음 마땅히 명예와 이익을 버리고서 산림에 은둔하리라”고 하였다 …

에 나오는 것처럼, 명예와 이익을 버리고 산림에 은둔하고자 하였다. 또한 그는,

… 만약 능히 이와 같다면, 禪定과 智慧가 짝지어 움직이며 萬行을 가지런히 닦게 되니, 어찌 이것을 헛되이 침묵만 지키는 어리석은 禪이나 단지 文字만 찾는 미친 智慧에 견주리오 …

에 기록된 바와 같이, 헛되이 침묵만 지키는 어리석은 선(禪宗)이나 단지 문자만 찾아다니는 미친 지혜(敎宗)를 비난하면서, 定慧雙修로써 그러한 폐단을 제거하고자 노력하기도 하였다.
당시 중앙 중심의 기성 교단을 비판하며 개혁을 외치던 지눌의 시각이 요세의 그것과 동일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요세가 지눌의 정혜결사에 참여하였던 두 번째 까닭은, 말하자면 지눌이 당시 불교계의 폐단을 지적하며 그 혁신을 주장한 데 대하여, 요세가 그처럼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았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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