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중동/튀르키예소설
· ISBN : 9788972754473
· 쪽수 : 388쪽
· 출판일 : 2009-10-12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는 지금, 내가 떠나기 전의 마지막 여름을 회상하고 있다.
1979년이었다. 태양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 태양 밑의 트리폴리는 밝고 고요했다. 사람과 동물, 개미들까지 필사적으로 그늘을 찾고 있었다. 모든 것이 백색인 곳에 이따금 깃드는 자비로운 회색 그늘을 찾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짜 자비는 밤에만 찾아왔다. 텅 빈 사막에 식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바다에 촉촉해진 미풍은 밤에만 불었다. 그 미풍은 절대적인 별의 영역에서 얼마나 멀리까지 배회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어, 텅 빈 거리를 머뭇머뭇 조용히 지나가는 손님이었다. 늘 그래왔듯이 정확하고 성실한 그 별이 이제 막 떠오르며 고마운 미풍을 몰아내고 있었다. 거의 아침이었다.
마마와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녀는 혼자였고, 나는 그녀의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내가 잠시라도 눈길을 돌리고 방심을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나는 내가 방심하지 않고 관심을 기울이면, 재앙이 닥치지 않고 그녀가 제자리로 고스란히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과 절박한 이야기들이 나를 괴롭혔지만 그로 인한 나의 경계심과 당시에는 그녀의 병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 우리 두 사람을 친밀감 속으로 묶어줬다. 그 후로 내가 사랑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깊숙한 기억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그 친밀감 속으로 말이다. 사랑이 어딘가에서 시작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거울에 반짝이는 빛처럼 어떤 한 사람에 의해 끌어내어지는 숨겨진 힘이라면, 내게는 그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분노도 있었고 연민도 있었고 미움의 어둡고 따뜻한 포옹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사랑이 있었고, 사랑의 시작을 에워싸는 기쁨이 있었다.
“네가 그 아이의 슬픔에 너무 가까이 있는 건 좋지 않다는 말이다. 슬픔은 우묵한 곳을 좋아하는 법이다. 그것이 원하는 건 자신의 메아리를 듣는 것뿐이다. 조심해라.”
나는 마마의 말에 영향을 받았다. 나는 카림과 둘이 있을 때마다 죄의식을 느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우스타드 라시드가 잡혀간 날, 그의 눈에 모종의 슬픔이 깃들었다. 그것은 배반의 슬픔이었다. 버려졌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조용한 슬픔이었다. 적어도 지금 돌아보니 그랬던 것 같다. 그는 말수가 더 없어졌다. 그는 늘 말이 없었지만 이렇게까지 말이 없지는 않았었다. 그는 우리가 하는 놀이에도 끼지 않으려 했다. 대신, 그는 우리가 거리에서 축구를 할 때, 근처에 있는 차에 몸을 기댄 채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럴 때면 내가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혁명위원회가 돌아와서 이번에는 나의 아버지를 잡아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동등해질 테고, 우리 사이에 있었던 신비로운 유대감이 회복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