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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72757757
· 쪽수 : 148쪽
책 소개
목차
수요일의 아이, 쿠르트
메모아르 미술관
어느 물웅덩이의 일생
신기한 국자 이야기
핏빛 구름
세상 온갖 것들이 담긴 병조림
지은이의 말
옮긴이의 말 인생과 시대를 담은 일본 동화의 전설
리뷰
책속에서
저 머리, 춥겠는걸…… 그런 생각을 한 순간 나는 숨을 삼켰습니다.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베레모가? 내 장밋빛 베레모가 할아버지의 대머리 위에 오도카니 씌워져 있는 게 아닙니까?
내 베레모다! 엉겁결에 소리를 지르려 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머리에 손을 얹었습니다. 그러고는 베레모를 집어 바라보았습니다. 놀라 눈을 끔뻑끔뻑하던 할아버지는 갑자기 온 얼굴에 쪼글쪼글 주름을 지으며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막 나오려던 말이 목구멍에 탁 걸리고 말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베레모를 정중히 고쳐 쓰고는 걸어가 버렸습니다.
_「수요일의 아이, 쿠르트」
마지막 그림이라고 했지만 액자는 이 앞에도 수없이 걸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에는 아직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새하얀 빈 액자였습니다.
“있잖아.”
아저씨는 말했습니다.
“너는 말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림을 그려 나갈 거야. 여기 있는 수많은 액자들 속에. 이 미술관은 누구든 언제라도 보러 올 수 있단다. 이전에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이잖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_「메모아르 미술관」
“물웅덩이야.”
그때 달님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넌 하수구 물이 하는 험담에 마음 쓸 필요 없단다. 네가 보는 것마다 좋다고 하는 게 하수구 물은 마음에 안 드는 거야. 그런데 그건 하수구 물 눈에는 사물의 아름다움이 다 안 보여서 그래. 네 속에 담긴 물은 잔잔하고 맑아. 네 물 위에는 아무리 하찮은 것도 아름답게 비치지만, 더러운 것들이 섞인 진흙투성이 하수구 물한테는 사물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비치지 않는 거야.”
“하지만 하수구 물은 규칙을 잘 지켜요.”
물웅덩이는 말했습니다.
“하수구 물은 항상 오른쪽으로만 흘러서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아요. 난 사람들한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달님, 나는 왜 나쁜 마음을 품은 적도 없는데, 사람들한테 피해나 주는 운명으로 태어난 걸까요?”
“정말 어렵구나. 세상에는 자신이 잘못한 게 없어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있단다. 좀 더 견뎌 보려무나. 머지않아 분명 좋아질 거야.”
달님의 소곤소곤한 목소리를 들으며 물웅덩이는 잠이 들었습니다.
_「어느 물웅덩이의 일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