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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88972883685
· 쪽수 : 372쪽
· 출판일 : 2010-05-10
책 소개
목차
타임 슬립
1부 조간산 넘어
연꽃 아래
가릉빈가
하늘에 상냥한 지옥
먼 곳의 색채
승려
내 안에서 태어난 들개가 산 너머에서 울었다
2부 하늘의 향연
구름 그림자
환조
경을 먹는 개
서로 닮은 산
물속의 달을 닮은 자
후기
리뷰
책속에서
나는 진작부터 자신을 벌레 같다고 생각했다. 인도 대지를 기듯이 여행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히말라야 연산이 천의 연꽃잎이고 인도 대지가 진창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저절로 내 무명충無名蟲의 생존권과 그 환경을 깨달았고…… 유채꽃 밭을 날아다니는 나비와는 인연이 먼 신세라는 것도 깨달았다.
나는 진창 인도에서 오랫동안 사람의 시신에 집착해왔고 그 사진을 팔아 밥벌이를 해온 신세…… 말하자면 시신을 먹으며 살아온 것이다.
내 옷에는 죽음의 냄새가 배어 있는 것 같았다. 히말라야 멀리 주검이 내뿜는 숨 막히는 보랏빛 연기 속을 뛰어다녔다. 하이에나처럼 빈사의 남자 곁에서 카메라를 들고 서성이며 그 죽음을 기다린 적도 있다. 진창 속의 물방개가 시체를 먹고 살듯 주검이 있는 곳이면 뭔가 얻을 것이 있겠지 싶어 강물에 떠내려가는 송장을 쫓아 배를 저은 적도 있었다.
인도에서의 여행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멀리서 개 짖는 소리를 들었다. 강 저편에서 개 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 포효에 귀를 기울이고 걸어가고 있을 때…… 그곳에 긴 여행의 끝과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 보였다.
“이제 너와는 이별이다.”
내 오랜 여행이 애초부터 희극이었다면 이토록 관객을 웃겼으니 성공한 여행인 셈이다. 그러나 자신의 여행이 희극인지 비극인지, 멜로드라마인지, 신화인지, 옛이야기인지, 무용담인지, 교훈담인지, 아니면 현대극인지 사극인지, 혹은 공상소설인지…… 판별하기 어렵다.
나는 자신이 영락없는 미남 주인공이고 제대로 된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쩐지 세상을 버린 사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자신을 ‘고투’하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나는 분명 자신이 노인처럼 담담한 여행을 해온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난데없이 해골이 입을 쩍 벌리고 웃고 있다.
이 웃음은 도대체 무엇일까.
‘재미있다’…….
재미있어서 웃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또다시 진창 위로 걸음을 옮겼다.
여러 해 동안 꿈결처럼 환영으로 보아온 티베트. 풍경은 허허로웠다.
땅…… 그것을 무슨 색이라 부르면 좋을까.
노란색이라고 부르면 너무 부드럽다.
황금색이라고 부르면 너무 요염하다.
썩은 낙엽색이라고 부르면 너무 다감하다.
이 노란색 고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묵묵히 가로누워 있다.
바람 한 점 일지 않는다……. 찬연히 말라붙어 있다.
모든 것이 말라붙어 자신은 땅 자체이고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님을 주장하고 있다.
나는 말없이 그것을 보고 있다. 깊고 공허하다. 공허하지만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허공. 무슨 말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말의 화살을 날려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화살은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