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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문제 > 노동문제
· ISBN : 9788972972006
· 쪽수 : 640쪽
· 출판일 : 2026-02-20
책 소개
이 세계를 떠받치고 유지하는 것은 무엇이고 누구인가?
한 가족의 노동이동사를 통해 좇는 광산, 폐광, 폐광 이후의 이야기이자, 변두리/경계/아래로부터 채굴해온 목소리들
1. “다 죽었어”: 사라질 수 없는 세계, 노동, 삶을 채굴하기
예전에는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던 곳, 일자리와 돈이 필요했던 이들이 끝없이 모여들던 곳이었던 한국의 광산들은 90년대 이후 빠르게 위축되었다. 한국사회와 광산은 이제 동시대의 것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많은 이들에게 ‘광산’이니 ‘광산노동자’니 하는 것, 광산에서의 노동과 삶이라는 것은 대개 피상적으로 그려지거나 재현되곤 한다.
당신은 ‘막장 인생’, ‘막장 드라마’와 같은 말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드는가. 이 말에 위화감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여럿일 테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으로 깜짝 놀라거나 씁쓸한 기분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막장을 이미지가 아닌 구체적인 일터이자 현장으로 기억하고 있거나, 여전히 막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이 지금 여기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이 사회는 누군가의 일터와 현장을 비하의 의미로 사용하는 데도 전혀 거리낌이 없다. 그만큼 그 산업과 그 안의 노동이 사회적으로 망각되고 비가시화되었기 때문일 터다. 한국에 가행 중인 광산이 300여 곳이 있고, 기계화된 작업을 하고 있으며, 그 광산은 탄광이 아니지만 아직도 광산노동자는 ‘헤드랜턴을 착용하고 곡괭이를 들고 얼굴에 검댕을 묻힌 남성’으로 재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한 정치인은 실제 탄광 노동자보다도 더 심하게 얼굴에 검댕을 묻힌 얼굴을 언론에 제공하지 않았던가). 심지어 광물이 여전히 우리의 구체적 일상과 연결되어 있음에도 그러하다.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던 곳에 대한 이야기는 비단 광산촌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멀지 않게는 조선소에 기대고 있던 거제, 거대한 자동차 공장이 있던 평택에서도 들려왔던 말이지 않은가. 그리고 기술과 자본, 산업의 전환과 이동, 위축에 따라 쓰고 버려지는 수많은 노동과 노동자의 삶에 무심한 것 역시 바뀌지 않고 반복되어온 이야기다. 산업이 사라지면, 그 산업에 속했던 노동과 삶도 모두 사라지는 것일까? 산업이 사라진다고 그 안의 사람도 사라지는 것일까?
국내 유일의 자철광인 양양광업소에서 일했고, 그곳의 첫 민주 노조 위원장이자, 또한 광업소가 폐광할 때의 마지막 노조 위원장의 자녀인 저자는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고모의 사망 절차를 진행하다 자신의 출생지가 실제 자신의 출생지가 아닌 아버지가 일했던 양양광업소가 있던 ‘장승리’로 기재된 것을 알게 되며 뒤늦은 질문을 아버지에게 꺼냈다. 그때 그 광산 사람들은 다 어떻게 지내느냐고. 돌아온 대답은 이것이었다. “다 죽었지.” 누군가가, 어딘가가 과잉대표되어오는 동안 망각되고 지워진 얼굴과 목소리들이 있다. 어린 시절, 희미한 목격자였던 저자는 이제 구체적인 기록자가 되어 광산에 깃들었던 목소리를 채굴하고 골라 이 책에 담았다. 책의 제목인 ‘쇳돌’은 저자의 가족이 기대어 살았던 철광산 양양광업소의 광산노동자들이 캐고 고르던 철광석의 우리말이자, 그 광산노동자들 자체이자 그들의 노동이며, 저자가 채굴하고 골라낸 그들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2. 한 가족의 노동이동사로 좇는 구체적인 노동의 얼굴과 목소리
이 책은 광산노동자의 가족이자, 양양광업소의 마지막 노조위원장의 자녀인 저자가 자신의 가족(그리고 광산업에 종사했던 이들)의 삶에서 출발해 기록한 광산, 폐광, 그리고 폐광 이후의 이야기다. 저자는 자문화기술지의 방법으로 자신의 가족의 노동이동사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기억되고 기록되지 않았던 광산의 목소리, 삶, 싸움, 노동을 채굴한다. 성의 없고 단편적인 재현에 그친 광산의 이미지가 아니라, 실재하는 세계를 지탱해온, 또 지금도 지탱 중인 노동과 삶의 기록이다.
한편 이를 저자의 가족사로만 본다면 조모, 부모, 저자에 이르기까지 3대의 이동과 삶을 보는 셈인데, 이 속에서 역사와 구조는 개인의 삶에 어떻게 접혀 들어가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일제강점기에 만주에서 결혼해 한국으로 돌아와 지내다 자신과 자식의 일자리를 찾아 광산이 있는 양양에 흘러들어온 조모, 한국전쟁통에 남로당 활동을 했던 조부가 ‘행불’이 되는 바람에 나라의 감시를 받으며 긴 기간 연좌제의 피해자로 살아야 했던 부친과 고모의 삶, 폐광 후 서울/수도권으로 이동해 그 안에서 수없이 이사하며 직업 전환을 해낸 부모의 삶이 기록된다. 이 가족의 노동이동사는 이 사회가 노동자의 삶에 얼마나 무책임한지를 드러내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그럼에도 이 세계는 떠받치고 있는 것은 "변화하는 산업 지형과 소멸하는 직업 속에서 견디고 이동하는" 이들이며, 또 그들의 구체적 노동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1부는 광산, 특히 양양의 철광산을 중심으로 어떤 이들이 어떻게 광산에 모여들어 어떤 일을 어떻게 했는지, 광산노동자와 그 가족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 당시 광산을 둘러싼 사회 분위기는 어땠는지, 그에 따라 광산노동자들은 어떤 싸움을 했는지 쇳돌을 캐고 고르던 이들의 노동과 삶을 구체적으로 그려나간다. 2부에서는 폐광 이후 저자 부모의 직업 전환 과정과 터전의 이동을 담는다. '없어진 직업' '사라진 산업'을 지탱했던 이들은 당연히 사라지지 않고, 이산해 다른 노동을 하며 삶을 꾸려간다. 3부에서는 광산노동으로 인한 질병과 죽음을 담았다. 거기까지도 노동의 일부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누군가의 구체적인 노동과 삶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직면하게 되는 순간들이다. 책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자신의 가족이 아닌 다른 구체적인 목소리들을 찾아나선다. 4부에서 저자는 양양광업소 출신으로 양양에 남은 사람, 양양을 떠난 사람, 직업을 바꾼 사람, 직업을 이어가는 사람, 양양 철광산이 아닌 석탄 광산 노동자와 노동자의 가족 등 다양한 목소리를 담고, 이어서 5부에서는 강릉, 동해, 광명, 보령, 정선, 태백, 문경 등 여러 폐광지의 다양한 모습을 스케치해 담았다.
3. 망각되고 누락되어온 누군가의 노동과 삶을 존중하는, 실천으로서의 쓰기
변방과 경계의 자리에 주목하고 미처 감각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마련인 어떤 불편함과 입장을 짚어온 이라영은 이 책에서도 광산의 노동, 투쟁, 문화 등을 채굴하면서도 그것을 낭만화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러면서도 서울 수도권 중심의 지식인 엘리트들이 노동계급의 문화를 폄하하는 태도에도 경고를 보낸다. 누군가의 세계를 피상화하거나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거기에 말을 얹는 무례를 범하지 않으려는 엄격함이다. 책은 저자의 기억과 인터뷰, 일반 문헌자료는 물론 당대의 문학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예술 작품을 동원하는데 이는 피상적으로 재현되거나 누락되거나 지워져온 삶과 세계를 다시 구체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하는 치열한 노력과 다름없다. 이 노력은 어떤 노동과 세계에 대한 저자의 존중이자 예의다.
저자는 ‘혀가 있지만 없었던’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담고 있는 이야기는 많으나 들어줄 귀가 없었던' 이들의 목소리에 주목하기에, 광산이라는 산업을 중심으로만 기록하지 않는다. 책에는 그 안에서도 더욱더 지워졌던 여성의 노동과 목소리, 강원도/양양 지역을 중심으로 한 비수도권 지역의 목소리, 특권을 인식하지 못한 과잉대표되어온 이들의 모습, 모순되는 정치적 입장들과 같은 이야기가 제각각 드러나기도, 중첩되고 얽혀서 드러나기도 한다.
광산에 기대어 살면서도 자식은 광산과 거리 두기를 원하는 욕망, 노조 안에서의 배신과 서러움, 수많았던 여성 광산 노동자의 존재, 함께했던 노조 동지들을 생각하면 금방 뜨거운 눈물이 차오르지만 동시에 지금은 노동의 노 자도 꺼내고 싶지 않아진 마음, 노조 투쟁에 함께해왔고, 늘 '부업'이라는 이름으로 가사노동에 더한 이중노동을 해왔던 남성 광산 노동자의 아내들, '막장 드라마'니 '막장 인생'이니 하는 '일상적 표현'이 명치 끝에 걸리는 누군가, 민주 노조 건설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동지였으나 기록으로는 정확히 남지 않은 여성 노동자들, 강원도 말씨를 두고서는 북한 말씨 같다고 히죽거리던 서울 사람의 농담에 웃을 수 없는 누군가가 담겨 있다. 따라서 이 책이 채굴하는 이야기들은 단순하지 않고 또렷하지만도 않다. 저 얽힘 안에서 교차하며 발생하는 불화와 선명히 설명할 수 없는 욕망도 기록한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누군가를 누락하지 않으려는, 누군가의 단순한 재현을 거부하고자 하는 분투이자 아래로부터, 변두리에서, 경계선의 역사를 기록하고자 하는 저자의 치열한 글쓰기의 결과다. 동시에 한국 사회가 관습적으로 누구의 얼굴과 목소리만을 향하고, 누구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지에 대한 성찰, 변방에 감응하는 감각을 요구하는 동시대적 요청이기도 하다.
목차
서문 “다 죽었지” 37
1부 철광산을 중심으로 살펴본
어느 가정의 노동이동사
1장 광산촌 49
. 자철 광산, 양양광업소 49
. 장승리에 오다 52
2장 선광부 56
. 땅속의 여자들 56
. 쇳돌 고르는 여자들, 선광부 60
. “거기 맨 젊은 여자지” 63
. 어둠 속, 여성의 밝은 노동 66
. 보물 같은 정조와 돌봄 70
. 가출하는 여자들 : 영희, 성미, 금숙, 미영 그리고…… 73
3장 잡역부 77
. 폐석장 77
. 광석이 다니는 길 81
4장 채광과 궤도부 86
5장 진짜 일을 구할 때까지만 92
6장 연좌제, 비국민 만들기 98
. “다 지켜보고 있어” 98
. 미아리고개 101
. 제 아버지를 사망자로 만들기 104
. 비국민 희생자 서사 109
7장 노조로 향하기 116
. 노조에 미쳐서 116
. “그때는 다 어용” 119
. 삼겹살과 5 ·17 122
. 정화조치 125
. 노조에 자리하기 129
8장 여자들의 부업 133
. 인형 옷 만들기 133
. 구멍가게 135
. 뜨개질 138
9장 폭력과 배신, 억울함 143
. “서러워 마라” 143
. 출장 146
. 1987년 148
10장 속초항 153
. 철광석이 떠나는 항구 153
. 철광석을 나르는 트럭 157
. 감시 159
11장 양양을 떠나기 166
. “광산과 노조에서 너희를 분리시키려고” 166
. “여기서는 말조심해야 해” 172
. 양양하와이 178
. 대물림의 고리를 끊기 181
12장 하숙촌 185
. 라스베가스의 여자들 185
. “내 밥 먹은 애들” 195
13장 들불처럼 번지는 노동자대투쟁 201
. 그때 분위기 201
.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 나” 207
. 첫 민주 노조 위원장 214
14장 언니들 219
. 미스 혹은 양 219
. “말은 안 하지만 다 보고 있었지” 221
15장 밥상의 민주화 225
. 점심을 달라 225
. 도시락 노동 227
. 돼지고기 232
. 광부 밥상이라는 소재 237
16장 땅속의 시간과 공간의 정치 242
. “우리는 언제 해를 보냐!” 242
. 값싼 수입 철 247
. 석탄산업합리화 250
17장 광산이 닫히다 254
. 소문과 희망 254
. “똑똑한 사람들은 다 떠났지” 258
. “이제 다 같이 전사하는 거야” 261
. “부인들이 다 나와 있었지” 267
2부 광산 이후의 삶
1장 직업을 바꾸며 277
. 실직 277
. 차를 닦다 280
. 주택관리사 283
. 어머니의 밥, 밥, 밥…… 287
2장 스스로 위로하기 290
. 나만 겪는 일이 아니야 290
. 서울 사람 되기 293
. “우리는 공동체를 생각해” 296
. 일상의 싸움 298
. 나의 쓸모를 증명하기 302
. 서 있는 자리가 변하면 306
3부 주검 위에 쌓은 문명
1장 광물은 캐도 시신은 캐지 않기 311
. 노동자의 주검 311
. 증산보국增産保國 315
. “이미 다 죽어서” 319
. 조력자 아내, 금기의 대상인 여성 323
. 귀신이 되어 327
. 생환이 주는 감동 331
. 위령제, 죽음을 사회적으로 기억하기 336
. 죽음과 동료애, “언제 사망할지 모르니까” 339
2장 노동의 몸 346
. 기침과 위장병 346
. 보람에 산다 350
. 우리는 산업폐기물이 아니다 352
3장 광산문학에서의 재해 357
. 분노의 도화선이 되는 사고 357
. 〈인두지주〉: 비인간으로서의 노동자, 몸과 말 361
. 혀가 없는 인간 365
4부 목소리들, 들을 수 있을 때 듣기
1장 이중기, 1943년생: “죽어도 여기서 죽지” 375
. “보청기 빼면 아무것도 못 들어” 375
. 전쟁의 기억들 377
. 광업소 훈련생 379
. “다들 그렇게 어렵지” 382
. 양양을 떠나지 않기 384
. “그냥 아내라고 해주세요” 386
2장 이인수, 1952년생: 광업은 내게 하늘이 준 직업 389
. 48년의 광업 인생 389
. 백운석 광산 392
. 채굴노동자에서 현장을 관리하는 소장으로 396
. 광산은 하늘이 준 직업 401
. “노동자의 노 자도 싹 잊었어” 405
. 다슬기국을 먹으며 407
. ‘인수 아줌마’ 김주영, 1957년생 410
3장 김기영, 1947년생: “고한의 산증인이죠” 415
. 라미란은 어떻게 고한 금융권에서 날렸을까 415
. “고한의 산증인이죠” 417
. “노가다 일을 엄청 했죠” 420
. “하필이면 이 광산촌 골짜기에” 422
. “강원랜드가 내 인생에서 최고 황금기” 424
. “가끔 교실에서 공부하는 꿈을 꿨었어요” 428
. “출세하면 고향에 가지 말라 그랬어” 430
. “지금은 터를 잘 잡았다 생각하지” 434
. 900항 앞에서 437
4장 김신애, 1984년생: “광부의 딸, 나를 찾아 돌아왔다” 441
. 귀향의 엘리트적 서사 441
. 물닭갈비를 먹으며 443
. 탈출하고 귀환하기, “나를 찾아서 돌아왔다” 446
. 정신적 유전 449
. 보이지 않는 문턱 452
. “광산은, 함부로 건드릴 수 없어요” 454
. 강원랜드 이후 457
5장 그리고 광부댁들: 빨래터 수다를 증언과 연대의 목소리로 462
. “정선아리랑 다 할 줄 알아요” 462
. 서울의 봄과 탄광촌의 봄 466
. 전국의 모든 광부댁 470
. 고통의 연대, 기억의 연결, 이산이 연대가 될 때 473
. 우리 이야기 477
6장 지금. 여기의 광산 481
. “요즘은 안전점검 나오는 사람들도 여자야” 481
. 마늘과 석회석 482
. 생산 원가의 구조 486
. “광산에 사람이 부족한 게 아니라, 사람이 광산을 기피하죠” 489
. 스마트마인? 무전이 중요해! 494
. 인식 개선의 필요 495
. 어둠이 아니라 암흑 499
. 산초 두부를 먹으며 507
5부 ‘없어질 직업’의 사람들
1장 노동이동 511
2장 “어차피 없어질 직업” 515
. 사라지지 않는다 515
. 막장, 노동의 장소가 윤리적 비난의 언어로 519
3장 닫히는 광산, 열리는 광산 524
. 정동진, ‘성공적으로’ 사라지다 524
. 광명, 황금 동굴이 되다 529
. 동해, 거대한 테마파크가 된 노천 광산 531
. 철암, 남겨야 하나, 부숴야 하나 535
. 보령, 꽃 피는 탄광마을 539
. 정선, 기억은 문화가 되어 541
. 문경, 생태를 화두로 546
. 도계, 반복되는 폐광 투쟁 550
. 철강왕을 만들어낸 붉은 땅 554
. 채굴은 멈추지 않는다 558
4장 함께 가지 못하는 정치 562
5장 부고들: 다들 일찍 죽었어 570
6장 살아가는 사람들 577
나오며 다시 장승리에서 584
이 책을 쓰기까지 아래로부터, 변두리에서, 경계선의 역사 594
감사의 글 622
참고자료 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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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세상이 변화하고 발전하면서 직업도 사라지고 새로 생겨난다. 어떤 직종은 어차피 ‘없어질 직업’이기에 사라지는 수순으로 가는 게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그러나 직업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사라지진 않는다. 직업은 사라져도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로 꾸준히 이동한다. 그들이 다 죽을 때까지 사회가 그들의 이동 경로에 무심할 뿐 사람들 대부분은 사는 동안 꾸준히 일을 바꿔가며 생존한다. 무언가를 ‘이루는’ 삶이 아니라 ‘견디는’ 삶은 이름 없이 소멸하고, 이 삶의 경력은 무수한 노동으로 채워진다.
광업소와 여성 일자리를 연결 짓기는 어려웠다. 거기에서 젊은 여자가 뭘 하냐고 물으니 아버지는 당연하다는 듯 “거기 맨 젊은 여자지”라고 대꾸했다. 쇳돌 고르는 작업은 거의 여자들의 일이었다. 바로 선광부다.
“아니, 할아버지가 왜 서대문형무소에 갔냐니까?”라고 재차 물어보면 “그게 다 관련이 있는 거야”라며 거대한 역사 속에서 제 아버지의 위치를 해석하려 애쓴다.“ (중략) 개인의 삶을 역사 속에서 해석하고 이해하는 방식이 아버지에게는 꽤 익숙해 보인다. 나는 이 점이 남성 중심의 역사와 문학적 서사를 다양하게 접한 개인이 체득한 말하기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고모나 어머니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았다. 고모는 숨으려 했으나 흘러넘치는 분노의 말을 주체하지 못해 끝내 붕괴되고 미쳐버렸다. 어머니는 지금도 “옛날 이야기 하기 싫다”라며 외면하는 선택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