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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본 / 중용발휘

대학정본 / 중용발휘

이토 진사이 (지은이), 최경열 (옮긴이)
  |  
그린비
2017-09-25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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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본 / 중용발휘

책 정보

· 제목 : 대학정본 / 중용발휘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동양철학 > 유교철학/주역 > 유교철학 일반
· ISBN : 9788976822765
· 쪽수 : 216쪽

책 소개

주자학이 횡행하던 시절, 경전 탐구에 있어서 지배적 담론에 포섭되지 않고 끊임없이 그 본의가 무엇인지를 묻고, 자기 나름의 해답을 구해낸 이례적이고도 선구적인 유학자가 있었다. 그는 바로 일본 고의학(古義學)의 창시자 이토 진사이(伊藤仁齋, 1627~1705)이다.

목차

대학정본

『대학정본』 서문
대학정본
부록_『대학』은 공씨가 남긴 책이 아님을 변증함

중용발휘

『중용발휘』 서문
책의 유래를 서술함
강령
상편
하편

원문
대학정본
중용발휘

옮긴이 해제_사서 체계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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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이토 진사이 (지은이)    정보 더보기
에도 시대 전기에 활약한 유학자, 고의학파(古義學派)의 창시자. 초명은 고레사다(維貞)이고 뒤에 고레에다(維禎)로 개명했으며, 보통 겐시치(源七), 겐키치(源吉), 겐스케(源佐) 등으로 불렸다. 진사이는 그의 호이며, 고학선생(古學先生)으로도 불렸다.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 교토에서 재목상(材木商)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당시 가장 유명했던 화가 오가타 고린(尾形光琳)의 사촌 여동생과 결혼했다. 청년 시절 주자학에 몰두하였고 이십대 후반에는 가업을 포기하고 불도(佛道)에 전념했으나, 삼십대에 이르러서는 이를 비판하며 유교 고전의 새로운 읽기를 시도하였다. 1662년 사립 유학 학교인 고의당(古義堂)을 설립하여 후학을 양성하기도 한 그는 『논어고의』(論語古義), 『맹자고의』(孟子古義), 『어맹자의』(語孟字義), 『동자문』(童子問), 『중용발휘』(中庸?揮), 『고학선생문집』(古學先生文集), 『진사이일찰』(仁齊日札), 『동지회필기』(同志會筆記) 등의 저서를 남겼으며, 사후 그의 아들 이토 도가이(伊藤東涯)가 모두 교감해서 출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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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열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한문학을 공부했습니다. 곡부서당(송양정사松陽精舍)에서 서암(瑞巖) 김희진(金熙鎭) 선생님께 한문을 익혔습니다. 한림원과 민추(현 고전번역원)에서도 한문고전을 읽었습니다. 영어도 부지런히 읽는 편이라 운이 닿아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UPenn)에서 방문학자로 책을 읽었습니다. 넓게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중국고대 한나라 이전 선진(先秦)시대 저작을 두루 읽고 있습니다. 다양한 담론이 쟁명(爭鳴)하는 모습이 장관이라 글읽기가 흥미롭습니다. 사회교육단체인 <파이데이아>와 <인문학당 상우>에서 여러 선생님들과 매주 동양고전을 읽고 있습니다. 저서로 『기록자의 윤리, 역사의 마음을 생각하다 : 문학으로서의 『사기』 읽기』가 있으며, 『당시 300수』를 공역했고 일본의 유학자 이토 진사이(伊藤仁齊)의 저서 『논어고의』(論語古義), 『맹자고의』(孟子古義), 『동자문』(童子問) 등을 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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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명덕(明德)이라는 두 글자는 『시』·『서』·『좌전』에 많이 보이는데 『논어』·『맹자』에 오게 되면 오로지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가르침으로 삼고 효제충신(孝弟忠信)을 요체로 삼아, 한 번도 명덕을 언급한 적이 없다. 명덕이라는 두 글자는 그 뜻이 너무 커서 오직 성인의 덕을 찬미할 수 있을 뿐 배우는 사람이 받들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므로, 인의충신(仁義忠信)을 가르침으로 삼아 위아래에 통용되고 인간의 도리를 포괄해 빠뜨리는 게 없는 것이 더 좋은 방도이기 때문이겠다. 명덕을 인심(人心)을 칭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는 그 뜻을 잘못 이해한 것이 아주 심한 경우다. 주희의 『대학장구』(大學章句)에는 명덕을 풀이해, “비어 있고 신령하며 어둡지 않아[虛靈不昧] 많은 이치를 갖추고 만사에 대응한다”라고 하였는데 ‘명’(明)이라는 글자에 깊이 집착해 그 말이 본래 성인의 덕을 찬미한 말인지 몰랐다. 『서』(書) 「강고」(康誥)에는 한 글자로 “덕”(德)이라 했고, 「요전」에 역시 “준덕”(峻德)(높은 덕)이라 해서 모두 “명”(明)을 말하지 않은 것을 보면 자연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허령불매(虛靈不昧)라는 네 글자는 본래 선(禪)과 관련된 책에서 나온 말로 불교의 명경지수(明鏡止水)의 이치를 말한다. 하지만 우리 성인의 책에는 원래 이런 이치가 없으며 이런 말 또한 없다. 서로 상반되는 것이 불과 얼음 정도가 아니다.


의로움[義]과 이익[利]의 구별은 유자의 첫번째 의무다. 의(義)와 이(利)의 관계는, 얼음과 숯불이 같이 있지 못하고 향기로운 풀과 냄새나는 풀이 함께 섞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利)를 구하면 의(義)를 따를 수 없고 의를 좋아하면 이(利)와 뒤섞이지 않으려 한다. 그러므로 공자가, “군자는 의를 잘 알고, 소인은 이를 잘 안다”(「이인」 16장)라 하고 맹자가, “왕께서는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다만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양혜왕 상」 1장)라고 한 것은 이런 뜻이었다. 의를 따라 행하면 많은 사람들이 마음으로 기뻐하고 복종하며 사람들이 친밀히 여기고 떠받들어, 저절로 안정과 부유와 존귀와 번영의 효과를 이룬다. 단지 의가 이(利)이겠거니 여기고서 실행한다면 이것은 이익이 된다는 생각으로 이(利)를 실행하는 것이라 이익을 얻을 수 없다. 이런 까닭에 의義를 실행하면서 이(利)를 구하는 것은 그 폐단이 인(仁)을 빌려 “이(利)를 따라 행동하는”(『논어』 「이인」 12장) 지경에 이르게 된다.


성인과 거리가 이미 멀어 경(經)은 부스러기만 남고 말은 빠진 게 많아 세상의 공부하는 사대부들은 스스로 최고의 보배라 여기면서도 실은 사악한 말에 의해 잘못된 것인 줄 몰랐다. 지금 옷깃을 왼쪽으로 하는 오랑캐 풍속에 완전히 빠지지 않은 것은 다행히 공자와 맹자가 남겨 준 가르침이 아직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나라의 유자(儒者)들은 선택이 정밀하지 못했고 식견이 철저하지 못했다. 많기만을 탐내며 얻기에만 힘쓰다 도를 해치는 정도가 이렇게 심각한 지경까지 이를 줄 몰랐다. 『대학』은 본래 『예기』 안에 있는 것으로 한 편의 글이기는 해도 누구의 손에서 나왔는지 상세하지 않다. 고정(考亭) 주씨(주희)에 이르러 처음으로 경(經) 1장, 전(傳) 10장으로 나누어, 경은 공자의 말이고 전은 증자(曾子)의 뜻으로, 문인(門人)들이 기록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 견해는 주씨가 마음으로 좋아하고 숭상하는 것에서 나온 말이지 고증(考證)한 것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다. 후학들은 스스로 분별할 줄 모르고 공자의 말을 단지 증자가 전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도를 해친 게 더 심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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