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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88976829856
· 쪽수 : 136쪽
책 소개
목차
1. 사물은 어떻게 존재하나
삼장법사와 손오공 ─ 014
본질 없음의 본질 ─ 019
나가르주나와 『중론』 ─ 025
형이상학의 수렁 ─ 031
2. 공은 무엇이 아닌가
여덟 가지 부정 ─ 038
『중론』의 변증법 ─ 043
존재와 비존재 ─ 048
색즉시공 ─ 055
3. 가는 놈은 가지 않는다
탄생의 비밀 ─ 062
무상과 공 ─ 067
가는 놈은 가지 않는다 ─ 073
과거·현재·미래의 몰락 ─ 078
4. 언어로 무엇을 할 수 있나
주어와 술어 ─ 086
언어도단 ─ 092
선불교의 언어 ─ 097
공은 신비주의인가 ─ 103
5. 공으로도 윤리를 말한다
두 가지 진리 ─ 110
공의 실천 ─ 116
바라밀 수행과 무아윤리 ─ 121
죽음도 허무하지 아니한가? ─ 127
저자소개
책속에서
돌려 말할 수도 있다. “저것이 있기에 이것이 있고, 저것이 소멸하기 때문에 이것이 소멸한다.” 지금 말하는 ‘나’는 시선에 따라 이것이고 또 저것이다. 우리는 나 자신을 알고 싶을 때, 거울 앞에 설 게 아니라 주위를 두리번거려야 한다. 이렇게 연기론은 타자에 대한 심각한 고려를 요구한다. 내 운명은 결코 내게 있지 않다. 그런데 ‘타자’는 무한히 번진다. 타자도 다른 타자를 통해서 성립한다고 할까. 이런 관계는 끝없이 계속된다. 그래서 견고하고 찬란한 타자나, 내 삶을 주재하시는 성스러운 ‘그분’ 혹은 내 안에 강림하신 ‘그분’을 상정할 수 없다. 그래서 ‘너’도 내 운명은 아니다. 불교는 초월자로서 실체나 내재성으로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슬픔이나 기쁨은 삶을 떠받치는 하나의 형식이다. 이것을 전혀 무의미하다고 차마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허구다.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에 우리는 자주 상처 나고 바보 같지만 그냥 당한다. 교통사고가 났는데 그런 일이 없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그것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좀더 골똘히 생각하라는 바람이다. 나가르주나의 ‘사물이 공하다’는 주장은 철저하게 사물을 바라보라는 요구다. 실체론자나 본질주의자들은 저런 일자의 소멸을 상실이라고 하지만, 불교도는 그것을 자유라고 한다. 대단한 차이가 아닌가.
공은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 아니라고 했다. 공은 사물의 실상이며, 그것이 일종의 태도가 되면 중도이다. 연기나 공, 그리고 중도를 하나의 묶음으로 취급하는 나가르주나의 의도를 간파해야 한다. 직관을 통해서 우주를 만나거나 신을 경험하는 게 아니라 우주나 신을 끊임없이 추상하는 나의 경향을 지우는 과정이다. 저런 습속들이 완전히 힘이 빠지면 우리는 공을 경험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지대에 진입하는 방식의 신비적 경험을 나가르주나는 경계한다. 그는 분명 ‘귀경게’에서 망상이 완전히 사라진 상황을 적멸, 즉 열반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