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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가톨릭 > 가톨릭 문학
· ISBN : 9788984314351
· 쪽수 : 279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화창한 꽃의 계절 5월이 되면, 소원대로 은희는 엄마와 함께 살기 위해 집으로 간다. 나는 만발한 꽃들 속에서 은희의 얼굴을 발견하고 그때마다 은희가 보고파질 것 같다. 생활보호대상자인 궁핍한 가정 형편에, 밤에 일을 나가시는 엄마와 열여덟 살 나이에 벌써 미혼모가 되어버린 언니가 과연 은희를 제대로 붙잡아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서 은희와 다시 재회하는 일이 없길 간절히 바란다. 사랑하지만 헤어진다는 아픔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나는 수레 안에 은희를 태우고 유모차에 아기를 태운 엄마의 마음으로 정원을 돈다. 깔깔거리는 은희의 웃음소리가 왠지 그리움처럼 아파온다. 나는 서서히 이별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현이는 내 생전 처음 본 수갑 찬 소녀였다. 남들은 평생을 살면서도 한 발짝 들여놓지 않는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여린 두 손목에 쇠 팔찌를 차고 지하 공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현이의 모습은 나에겐 참으로 슬픈 충격이었다. 그 소녀를 차에 태워 센터로 오던 날, 나는 차창 밖 아이들처럼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현이의 처지에 목이 메었다. ‘현아, 너는 왜 저 무리에서 빠졌니? 수녀님은 너를 만나 슬퍼. 널 집으로 보내지 못해서.’ 그때 내 마음은 이런 다짐을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먼 훗날, 우리 이날을 기억하며 웃는 날을 만들자. 반드시 만들자!’
나는 그늘 속에 핀 풀꽃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쭈그리고 앉아 그들을 유심히 바라본다. 내세울 만한 빛깔도 없다. 꽃도 열매도 초라하다. 그럼에도 이 귀퉁이 땅에서 존재하며 자라고 있다. 정리된 넓은 정원과 이쪽 귀퉁이 정원을 번갈아 바라보며 내 존재의 의미를 생각한다. 내가 머물 곳은 어느 쪽인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진정 어디인가? 이런 나에게 풀꽃들이, 우리 아이들을 닮은 귀퉁이 꽃들이 말한다. 당신이 지금 여기에 머물듯, 집나온 강아지를 보고도 가슴 찡해하는 슬픈 눈동자의 소녀들 곁에 머물라고. 그 소녀들의 존재 의미를 찾아줄 때 거기, 당신의 존재 의미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