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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85635882
· 쪽수 : 192쪽
· 출판일 : 2010-09-27
책 소개
책속에서
사진을 찍는 취미가 생기면서 오빠는 처음으로 아빠와 달라졌다. 아빠는 으샤으샤 열성적인, 늘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진을 찍는 일이란 가던 걸음을 멈추고, 거리를 두고, 둘러보는 일이다. 사진을 찍으면서 오빠는 처음으로 가만히 멈추어 섰다. 처음 카메라를 손에 쥐기 전까지, 오빠는 언제 어디서든 아빠와 발걸음을 나란히 맞추었다. 집에 있으면 둘이 함께 미식축구를 하거나, 아빠의 구역인 뒷마당에서 아빠와 나란히 땅을 파고 물을 주고 씨를 뿌리고 장미 넝쿨에 살충제를 뿌렸다. 피엑스나 영내 식료품점에 가면 둘이서 목록에 적힌 물건을 누가 더 많이, 빨리 찾아오나 경쟁에 돌입했다.
하지만 카메라를 잡고부터 오빠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오빠 사진에 모두들 입을 모아 감탄을 하는데도 아빠가 별말이 없었던 것은.
오빠가 찍은 사진은 정말 멋졌다. 사진을 잘 볼 줄 모르는 나도 알 수 있었다. 엄마가 늘 하던 이 말의 의미도.
“티제이 눈엔 이런 게 보이는구나.”
오빠가 어느 옛 도시를 둘러싼 오래된 돌벽을 찍은 사진을 보면, 그 벽을 내 눈으로 직접 볼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울퉁불퉁한 돌들에 진 그늘 모양이나 땅바닥 가까이에 누가 해 놓은 작은 낙서 같은 것들이. (58~59쪽)
하지만 아빠는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인생을 직접 발로 뛰며 사는 사람이 있고, 구경만 하는 사람이 있는 거야.”
조각상이나, 길 가운데를 뒤뚱뒤뚱 걸어가는 오리나, 방금 무릎에 아이스크림을 떨어뜨린 어린아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오빠와 맞추느라 관광 속도가 느려질 때마다 아빠가 하는 이야기였다.
“네가 구경만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면, 길은 비켜 줘야지. 우리처럼 몸소 움직이는 사람들이 치고 나갈 거거든.”
“당신이 사진 찍는 취미 없다고 티제이를 그렇게 들볶는 법이 어디 있어요?”
엄마가 이렇게 나무라면 늘 웃어 버리고 마는 아빠였지만 그래도 다 티가 났다. 카메라를 든 오빠 모습이 아빠에겐 여전히 거슬린다는 게. (59~60쪽)
“오빠 눈엔 달이 그렇게 재미있어?”
오빠가 입대를 한 지 얼마 되지 않던 어느 날 오후, 나와 함께 부엌에 앉아 있던 오빠에게 물어보았다. 탁자 위에는 오빠가 최근에 찍은 사진들이 쫙 펼쳐져 있었다. 그중에는 흐릿하고 둥근 덩어리처럼 나온 달도 있었고, 10센트 동전처럼 얇고 테두리가 뚜렷해 보이는 달도 있었다.
“오빠가 혜성을 찍는다면 진짜 볼만할 것 같아. 운석 떨어지는 광경도 되게 멋질 것 같고. 근데 달은 밤새 그냥 가만히만 있잖아.”
그러자 오빠가 말했다.
“달에는 그림자가 있어. 운석 구덩이 때문에 지는 그림잔데 그게 재미있어. 그리고 달 표면에 인간이 찍어 놓은 발자국이 있다는 게 좋아. 뭔가 굉장히 멋지단 느낌이 들어. 그리고 글쎄, 그냥, 달은 우주에서 실제로 사람이 가 본 곳이잖아. 상상이 돼? 우주 속을 날아서 달에 가는 느낌이란 게 어떨지 말이야.” (60~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