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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85635929
· 쪽수 : 336쪽
책 소개
책속에서
내가 일곱 살이던 9월의 어느 오후엔 엄마 발치에 앉아 엄마가 인내심을 갖고 신발 끈 묶는 방법을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다음 날이 내 초등학교 입학 날이어서 엄마는 이제 나도 내 버스터 브라운 구두끈을 혼자 묶을 줄 알아야 한다며, 내가 “이렇게?” 하면 부드럽게 “아니, 다른 쪽 끝을 거기, 아니 그 옆에…… 그래.” 하며 한 시간 반 동안 설명해 주었다. 손수 해 보일 수 없어서 엄마는 말로 해야 했다. 빨래 개는 법, 고기 써는 법, 필기체로 큐(Q) 쓰는 법, 블라인드 헴 바느질하는 법, 채소를 채 써는 법, 몸에 맞는 브래지어 고르는 법, 마스카라 바르는 법까지 엄마는 내게 무슨 일이든 설명해 주어야 했다. 엄마의 몸 전체에서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은 머리뿐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내가 얼마나 자주 잊어 버렸는지를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그런데 나만 그런 건 아니다. 엄마를 아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 사실을 종종 잊었다.
우리 엄마는 철폐 속에서 울었던 그날 자신에게 남은 어떤 힘이든 쓰겠다고 맹세했듯, 정확히 그렇게 했다. 맹렬하게. 엄마는 그 누구보다 주의 깊게 소리를 들었다. 음악, 새 노래 소리, 바람과 빗소리. 그중에서도 사람들의 말. 엄마는 사람들이 하는 말뿐만 아니라, 그들의 감정까지도 들었다. 엄마는 오직 냄새만으로 오븐 속의 음식이 다 된 때를 알 수 있었고, 거실 건너편에서도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어느 선물 상자 속에 바디 파우더가 들어 있는지 맞출 수 있었다. 엄마는 음식의 맛에 대한 다양하고 호들갑스러운 반응을 통해 내게 맛있는 음식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엄마는 자신의 눈빛이 몸 전체가 되도록 만들 수 있었다. 화가 났을 때, 엄마의 시선은 엄마의 몸이 되어 누군가를 붙들고 제압하고 엄마 앞에 그의 뜻을 굽히게 만들었다. 엄마는 단지 날 쳐다볼 힘밖에는 없었지만 나는 엄마가 두려웠다. 굉장히. 그리고 특별하게. 엄마가 내게 스스로 뺨을 치라고 했대도, 난 그렇게 했을 것이다.
피시는 가고 없었다. 며칠 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다. 오리들도 가고 없었다. 나 역시 없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난 바로 그곳에 앉아 있었다. 내 두 팔로 몸을 꽁꽁 붙든 채, 날 끌어당기는 거대한 힘, 엄마를 인식하며. 고개를 떨어뜨리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태어나 처음으로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바늘처럼 빠르고 아프게 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빠져나가는 생각이었다. 나는 소스라쳤다. 나는 집으로 달려가서 엄마의 휠체어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흐느꼈다. 엄마 역시 혼자 울고 있었단 걸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