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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영원한 보장

구원의 영원한 보장

피터 S. 럭크만 (지은이), 말씀보존학회 편집부 (옮긴이)
말씀보존학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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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영원한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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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구원의 영원한 보장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신학일반
· ISBN : 9788985888530
· 쪽수 : 96쪽
· 출판일 : 2022-11-09

책 소개

사람은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그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것은 이 시대를 향한 분명한 교리이다. 신약성경은 많은 성경구절들로 이 교리를 확증해 준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서 종종 성도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처럼 말하는 부분을 발견한다.

저자소개

피터 S. 럭크만 (지은이)    정보 더보기
미국 플로리다 주 펜사콜라에 있는 성경침례교회(Bible Baptist Church)의 목사였으며, 펜사콜라 성경 신학원(Pensacola Bible Institute)의 설립자이자 원장으로서 50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럭크만 박사는 밥 존스 대학교(Bob Jones University)에서 Ph.D.를 받았지만, 그 학교의 신학 노선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저자는 존 칼빈 이래로 500여 명 이상의 유명하다는 성경 주석가들이 주석서에 범해 놓은 주요 오류들을 일일이 지적하여 바로잡았으며, 창세기, 출애굽기, 욥기, 시편, 잠언, 소선지서, 마태복음, 사도행전, 히브리서, 요한계시록 등의 주석서를 저술함으로써 올바른 성경 진리를 밝히고 있다. 또한 럭크만 박사는 <킹제임스성경>이 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권위 있게 설명하고 증명할 수 있는 독보적인 학자로 일했다. 특히 그의 저서 <필사본 증거>, <알렉산드리아의 이단들>, <신약 교회사>,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 등에서 그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다. 그는 주석서와 성경 교리에 관한 160여 권이 넘는 책의 저자이며, 세계 전역에 있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존경받는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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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보존학회 편집부 (옮긴이)    정보 더보기
말씀보존학회는 1994년에 <한글킹제임스성경>을 내놓아 이 땅에 바른 성경을 제시했으며, 성경에 근거한 교리, 신학, 경건 서적들을 출판, 보급하는 사역을 수행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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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2.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지 못하는 자들이 여러분의 구원의 확신을 흔들어 놓기 위해 찾아낸 또다른 구절이 마태복음 24장에 있다. 13절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이 구절은 “끝까지 견디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진리의말씀을 올바르게 나누지 못하는 그런 자들의 말을 믿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인 마태복음 24장을 읽기 바란다. 마태복음 24장 전체 문맥을 읽어 보았는가?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이 구절들은 유대인을 향해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이것은 온 세상을 위한 말씀 아닙니까?” 정말 그런가? 15절을 보자.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리니, (읽는 자는 깨달으라)』(마 24:15). “그렇지만 14절은...”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14절을 보자. 『이 왕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런 후에야 끝이 오리라.』 “그런 후에야 끝이 오리라” 이 말이 무슨 뜻인가? 13절을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적용하기 원한다면, 14절은 어떻게 할 것인가? 13절을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적용하면서도 14절에서 “그런 후에야 끝이 오리라”는 말씀은 건너뛰는 이유가 무엇인가? “끝”이란 말은 어떤 기간의 끝을 의미한다. 13절을 읽어 보면 끝까지 견뎌서 구원을 받을 사람들이 있는데, 이 끝은 한 개인의 삶의 끝을 뜻하는 말이 전혀 아니다. 사실 이 “끝”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때마다 그것은 문맥상 예레미야에 나오는 “야곱의 고난의 때”이자 다니엘 12장에 나오는 “고난의 때,” 즉 구약에 예언된 “대환란” 기간을 말한다. 이것은 “다니엘의 70째주”라 불리는 예언의 주제이다. 여호와의 증인이나 제 칠일 안식교도들의 책자를 통해서는 이런 진리를 평생 가도 깨닫지 못한다. 왜냐하면 메리 엘렌 화이트와 러셀 목사(세상에서 제일 심한 거짓말쟁이들)는 대환란이 미래에 있을 일이 아니라 이미 시작되었으며, 현재 자기들이 “끝까지 견디고 있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옥이 만들어 낸 가장 큰 거짓말이다.

간단히 말해서 마태복음 24장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앞서 일어나는 일들을 말하고 있다. 30절을 보자. 『그후에 하늘에 있는 인자의 표적이 나타나리니, 땅의 모든 지파들이 통곡할 것이며, 또 그들은 인자가 권세와 큰 영광으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 또 29절을 보자. 『그 날들의 환란 후에...』 즉 마태복음 24장은 문맥상 주님의 다시 오심 이전에 있게 될 대환란 때 일어나는 사건들을 말하는 것이며, 유대(16절), 즉 거룩한 곳(15절),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경고인 것이다. 누구에게 주어진 말씀인가? 유대인 제자들이다. 3절을 보자. 『...제자들이 조용히 나아와서 말씀드리기를 “언제 이런 일이 있겠으며...』 그러므로 마태복음에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한 사람도 나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마태복음 24:13을 근거로 “끝까지 견디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함으로써 구원받은 지 얼마 안되는 성도들의 구원의 확신을 흔드는 일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을 모독하는 일이다. 마태복음 24장에는 그리스도인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다시 말해 거듭나서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간 지체는 마태복음 24장에 아무도 없는 것이다. 아무도 마태복음 24장에서 회심하지 않았다. 문맥상 마태복음 24:13의 “끝”은 세상 역사의 끝을 말하는 것이지 한 개인의 생애의 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마태복음 24장을 완전히 이해했는가? 그러면 이제 캠벨주의자들이나 감리교도들이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흔들어 놓기 위해 자주 인용하는 구절로 가 보자. 『죽기까지 신실하라. 그러면 내가 네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계 2:10). 분명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그 앞의 문맥을 함께 인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계시록 2:10 전체를 다 읽어 보자. 『너는 고난받게 될 일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마귀가 너희 중 몇 사람을 감옥에 던져서 시련을 당하게 하리니, 그러면 너희가 열흘 동안 환란을 받으리라. 죽기까지 신실하라. 그러면 내가 네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성경을 펼쳐서 직접 읽어 보기 바란다. 성경은 “죽기까지 신실하라. 그러면 내가 네게 영원한 생명을 주리라”고 말씀하지 않는다. “그 말이 그 말 아닙니까?”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생명의 면류관”과 “영원한 생명”은 우선 눈으로 보기에도 틀린 말이다. 이 두 단어의 차이점을 여러분은 알고 있는가? 여러분의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려 들지 말고 성경을 읽어 보기 바란다.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뿐이다. 자신의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 성경의 진리는 가려 놓고 논쟁하려 들어서는 안된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면류관”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영원한 생명”으로 이해해야 하는 근거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는 “영원한 생명”이라고 하시면서 “생명의 면류관”을 의미하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의미하시고자 하는 것을 말씀하시며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을 의미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자기가 속한 교회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믿지 않겠다면, 그것은 그 사람 자유다. 여러분의 목사나, 성경 교사나, 아내나, 아이들이나, 어머니나, 감독이나, 사제나, 교황이나, UN이나, 그 누구라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은 “생명의 면류관”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다. 성경이 “생명의 면류관”이라고 말씀한다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그것은 “생명의 면류관”을 의미하는 것이다. 형제여, “사랑은 진리를 기뻐하고”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진리는, 생명의 면류관은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리는, 영원한 생명은 생명의 면류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러분이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믿는 그분의 자녀라면 하나님 말씀 안에서 기뻐해야 한다.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거나, 죽기까지 신실하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거짓 교리를 증명하기 위해서 서로 같지 않은 두 개의 단어를 같은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억지를 부리지 않기 바란다.

그러면 마태복음 24장으로 다시 가서 48-51절을 살펴 보자. 『그러나 만일 악한 종이 속으로 말하기를 ‘내 주인이 오시는 것이 늦어지리라.’ 하고, 자기 동료 종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술주정뱅이들과 함께 먹고 마신다면, 종이 예기치 아니한 날 그가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오리니, 그러면 주인이 그를 갈라내어서 위선자들과 함께 그의 몫을 지우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고 있으리라.』 이 구절을 가리키고는 쾌재를 부르면서 “자, 여기 구원을 잃어버린 한 예가 나오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구원을 잃어버린 사람이 누구인지 반문하고 싶다. 본문은 종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주의 종들이 아닙니까?”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마태복음 24:48-51의 이 메시지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믿음과 은혜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거듭난, 성경대로 믿는, 회심한 죄인의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관한 말씀이 아니다.


마태복음 24장 어디서도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찾아 볼 수 없다. 여기서 언급된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 아니다. 여기서 언급된 복음은 “왕국 복음”이다. 14절을 보자. 『이 왕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런 후에야 끝이 오리라.』 “그렇지만...”이라는 말로 자신의 사견을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신의 사사로운 의견을 경솔히 말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바란다! 이 구절에 나오는 사람은 종이다.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48절을 보면 그는 “악한 종”이지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또 37절을 보면 그가 교회 시대에 속해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처해 있는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다. 본문에서 그는 위선자들과 함께 그의 몫을 담당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종은 그리스도의 지체가 아니다. 그는 회심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인으로 불리지도 않았다. 지금 읽은 부분에서 “그리스도인”이란 단어는 찾아 볼 수 없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간단히 말해서 마태복음 24장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앞서 일어나는 일들을 말하고 있다. 30절을 보자. 『그후에 하늘에 있는 인자의 표적이 나타나리니, 땅의 모든 지파들이 통곡할 것이며, 또 그들은 인자가 권세와 큰 영광으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 또 29절을 보자. 『그 날들의 환란 후에...』 즉 마태복음 24장은 문맥상 주님의 다시 오심 이전에 있게 될 대환란 때 일어나는 사건들을 말하는 것이며, 유대(16절), 즉 거룩한 곳(15절),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경고인 것이다. 누구에게 주어진 말씀인가? 유대인 제자들이다. 3절을 보자. 『...제자들이 조용히 나아와서 말씀드리기를 “언제 이런 일이 있겠으며...』 그러므로 마태복음에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한 사람도 나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마태복음 24:13을 근거로 “끝까지 견디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함으로써 구원받은 지 얼마 안되는 성도들의 구원의 확신을 흔드는 일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을 모독하는 일이다. 마태복음 24장에는 그리스도인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다시 말해 거듭나서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간 지체는 마태복음 24장에 아무도 없는 것이다. 아무도 마태복음 24장에서 회심하지 않았다. 문맥상 마태복음 24:13의 “끝”은 세상 역사의 끝을 말하는 것이지 한 개인의 생애의 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서문

이 책에서 나는 “구원의 영원한 보장,” 즉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교리를 설명할 것이다. 이 책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에 따라 이 책을 사용하실 것이라고 믿는다.
이 주제를 다루면서 우리는 신약에서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대한 구체적인 구절들을 다루게 될텐데, 그전에 먼저 공부해야 하는 것은 인간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경륜이 매시대마다 다르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는 “세대주의” 교리가 하나님의 참된 진리임을 입증할 것이다. 어떤 이들(예를 들면 근본주의자들)은 “세대주의”라는 말이 절대로 입에 담아서는 안되는 말인 줄 안다. 그러나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이다. 또 나는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이후에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나의 간증이 “근본주의자들”의 귀에는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다. 근본주의자들은 약 5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 사는 사람들이다. 당시 W.B. 라일리, 모르드캐 함(뉴욕의 제일침례교회)과 전미교회협의회 및 연방교회협의회의 자유주의자들 사이에 큰 논쟁이 있었다. 그때 클라렌스 다로우와 윌리암 제닝스 브라이언트 같은 근본주의자들의 논쟁은 아주 성가신 법정 재판(테네시 주 데이톤에서 있었던 엉터리 재판)에까지 이르렀다. 결론적으로 오늘날의 많은 기독교 교육자들은 50년에서 90년 전 과거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들, 즉 아직까지도 “근본주의”가 논쟁의 쟁점인 것으로 착각하는, 시대에 뒤진 사람들이다.
“근본주의”는 더 이상 오늘날의 이슈가 아니다. 아무도 근본주의자들을 신경쓰지 않는다. 남침례교도들은 근본주의 교리의 절반은 믿지 않는다. 근본주의자들은 결국 전천년주의, 무천년주의, 후천년주의, 이 세 가지 입장으로 나뉘었다. 오늘날의 이슈는 바로 “권위”의 문제이다. 이 “권위”의 문제가 오늘날 우리에게 최대의 쟁점인 것이다. 세대주의를 배격하고서는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관한 문제들을 제대로 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할진대, 성경은 하나님께서 다른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결코 같은 방법으로 다루지 않으셨다고 증거하기 때문이다.
다른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다르게 다루신 하나님의 경륜을 밝히는 세대주의 교리는 성경을 가르치는 누구에게나 진리이다. 무신론자든 카톨릭신자든 유대교인이든 그 누구에게든지 구약과 신약 사이에 명백한 차이가 있다는 것은 지나칠 수 없는 사실이다. 온전한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세대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진화론자든 무신론자든 그 누구든지 바보가 아니고서야 레위기 11장과 디모데전서 4장 말씀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성경을 읽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모세 이전의 사람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후의 사람들을 다르게 다루신 하나님의 경륜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아브라함에게 침례받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도행전 2장은 유대인들에게 침례받으라는 명령을 주고 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야곱의 열두 지파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에게 침례받을 때 성령의 선물을 받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성경을 진지하게 읽는 사람이라면 성경 안에 있는 구절들 사이에 피할 수 없는 차이점이 있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마태복음 10장의 복음과 사도행전 22장의 복음과 사도행전 16장의 복음과 계시록 14장의 복음이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아무리 이성적이며, 합리적이고, 지적이며, 성경적이고 영적인 지식들로 가득 차 있다고 우길지라도 그는 어리석은 사람임에 틀림없다(직접 읽고 확인하기 바란다).
디모데후서 2:15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아주 귀한 말씀이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이 말씀에 따르면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지 않고 공부하는 어떤 형태의 성경 공부도 하나님 앞에서는 무의미한 일이요, 허튼 소리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매시대마다 다르다. 우리는 먼저 이 점을 완전하게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관한 문제를 공부해 나갈수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른 시대와는 다른 방법으로 다루심을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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