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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신앙생활일반
· ISBN : 9788988042588
· 쪽수 : 344쪽
· 출판일 : 2012-04-25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나는 안전지대에 있는가?_ 쾌락 필요지수 진단지
1부. 왜 쾌락이 필요한가?
1. 신앙이 채워 주지 못하는 목마름
2. 쾌락의 자리를 확보하라
3. 쾌락은 우리를 강하게 한다
4. 우리가 즐거우면 하나님도 즐거우시다
2부. 순전한 쾌락은 예배가 된다
5. 쾌락은 더 큰 목적을 위해 있다
6. 성경처럼 파티를 벌이라
7. 세상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누리는 법
8. 당신의 쾌락은 어디서 오는가?
3부. 쾌락은 삶을 풍성하게 한다
9. 하나님 앞에서만 즐겨야 할 쾌락들
10. 쾌락의 비용, 낭비가 아니다
11. 가족들을 기쁘게 하는 종이 되라
12. 역경 중에도 쾌락을 찾으라
13. 하나님이 웃으시기에 우리도 웃는다
에필로그. 하나님이 허락하신 쾌락을 즐기라
감사의 말
주
책속에서
영적인 양치식물
“여기 이 양치식물이 보입니까?” 우리의 관광 가이드는 자못 불길한 목소리로 힘주어 말했다.
“이것이 하와이 전체에서 가장 위험한 식물입니다.”
모두들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한 발짝 물러난 모든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이 특정한 양치식물이 그토록 위험한 것은 독 때문이 아니다. 위험은 그보다 훨씬 간접적인 데 있다. 가이드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 양치식물은 아주 가파른 비탈에서만 자랍니다. 지금 여러분은 수직으로 깎아지른 벼랑 옆에 서 계시지요. 그런데도 그 양치식물 때문에 경사가 완만한 곳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거기를 밟다가 굴러 떨어져 죽는 겁니다.”
어떤 ‘영적인 양치식물들’도 똑같이 치명적이다. 그것들 자체는 당신을 죽이지 않지만 그것들은 당신이 지금 위험한 낭떠러지 옆을 걷고 있다는 신호와 같다. 내가 보기에는 그런 위험한 영적인 양치식물이 적어도 세 가지가 있는데 모두 쾌락을 보는 우리의 관점과 관계있다. 이것들 말고도 당신이 아는 것들이 더 있을 수 있다.
1)피곤함
나는 쾌락의 영적인 위력을 힘들게 배웠다.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내 삶의 스케줄이 지혜롭지 못했음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몇 년 동안 휴가도 없이 쉬지 않고 달려오다가 마침내 두 주 동안 휴가를 내어 떠나 있는 중에, 하나님이 내 속도를 한참 늦추시며 내 삶을 객관적으로 보게 하셨다. 정직하게 바라보니 기가 막히기도 하고 겁도 났다. 내가 나의 영성 스승이었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게리, 지금처럼 살다가는 심장마비, 신경쇠약, 외도, 이 셋 중 하나를 자초하게 된다.”
휴식과 레크리에이션이 필요함을 무시한 채 의무에만 매달려 살아가면 우리는 스스로 영적인 파국을 선택하는 꼴이다. 물론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우리가 내리는 모든 작은 선택들이 우리를 정확히 그리로 몰아간다.
많은 선의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부분에서 심각한 문제를 자초한다. 건강을 해치는 스케줄 속에 살아가면서도 자신에게 아무런 대가가 따르지 않을 거라고 믿는 것이다. 이것은 믿음이 아니라 신경증이며 교만한 마음에서 비롯된 자세다.
우리 중에는 이런 무리한 삶을 오히려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
그래서 성실한 학생이 공부를 많이 시키는 대학에 들어가면 하루에 다섯 시간밖에 자지 않고 카페인 기운으로 살아가면서 서서히 기쁨을 잃어간다. 그러다 기도도 뜸해지고 결국은 저녁 때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된다. 이전의 자신 같았으면 아마 그런 행동에 기겁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라며 새삼스럽게 놀란다.
젊은 엄마가 수면, 휴식, 영양가 있는 음식 등 자신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조차 무시한 채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느라 괴력을 발휘한다. 비명을 질러대는 코흘리개 아이한테서 가끔씩 떨어져 있는 시간도 내지 않는다. 그래 놓고는 남편을 향한 사랑이 식거나 아이를 거칠게 막 대하는 자신을 보며 놀란다.
선의의 장로나 집사가 생업을 위해 희생하고 아내를 위해 희생하고 자녀를 위해 희생하고 교회를 위해 번번이 저녁 시간까지 포기하고 희생한다. 그러고는 자신의 몸이 망가지거나 영적으로 무너져 내려 외도나 중독에 빠지게 되면 그제야 놀란다. 카렌 호니의 말대로, 그런 사람은 “나에게만은 시간과 에너지의 한계가 존재할 수 없다는 고집이 이성보다 더 강하다.”
......
중독의 재발은 대부분 균형 잃은 생활방식에서 발단된다. 무리하게 살다 보면 정신없이 바쁘고 과로하고 고갈되면 내게 권리가 있다는 느낌(“나는 이럴 자격이 있어”)과 부정의 논리(“조금만 하면 괜찮아”)에 중독된다. 그런 상황에서는 건강한 관계나 안정된 회복은 요원해 보인다. 간단히 말해서 직간접의 중독자들은 대개 놀거나 즐길 줄을 모른다. 걸음을 멈추어 장미꽃 향기를 맡는 일이 어색하고 무가치하고 비생산적인 일로 느껴지는 사람들이 많다.
‘종교적인 중독자들’도 조심해야 한다. 항상 자신에게 가장 힘든 일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나도 그런 생각의 덫에 빠진 적이 많다. 즐겁거나 재미있는 일은 무조건 ‘타협’으로 통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참으로 위험한 것임을 나는 프랑소아 페넬롱이라는 대가를 통해서 비로소 깨달았다.
“매사에 항상 나한테 괴로운 쪽을 선택하고 싶어 하는 것만큼 잘못되고 무분별한 일은 없다. 이 원칙대로 산다면 금세 자신의 건강과 사업과 평판과 대인관계를 망치게 된다. 나아가 하나님이 주신 모든 선한 일을 망치게 된다.”
당신이 휴가를(또는 그냥 주말의 휴식을) 계획해 놓았는데 누가 ‘급한’ 일로 당신에게 전화를 한다고 하자. 당신은 항상 자신의 주말을 포기하고 그 일을 돕는 것이 ‘경건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사탄은 당신의 섬김을 막으려고 브레이크를 밟게 만들려고 하지만, 그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거꾸로 당신을 벼랑으로 추락시키려고 가속기를 밟게 만들기도 한다.
여기서 교만이 특히 위험해진다. 교만은 영적인 성숙으로 위장하고 와서 “너는 남보다 강하다”든지 “너는 특별한 기름 부음을 받았으므로 원칙을 어겨도 넘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휴식과 쾌락의 시간은 ‘연약한’ 사람들에게나 필요하지 내게는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심지어 원칙을 어기는 것을 ‘믿음’이라 부르며 오히려 그것을 영적으로 미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삶의 원칙들은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운동도 하지 않으면서 하루에 5천 칼로리씩 먹으면 누구나 비만이 되고 명도 짧아진다.
......
당신 자신을 위해서 잘 듣기 바란다. 삶의 원칙들은 당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당신은 슈퍼맨이나 슈퍼우먼이 아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휴식과 수면과 영양가 있는 음식과 기분 전환이 필요한 존재로 지으셨으며, 정기적으로 속도를 늦출 것을 명하시기까지 하신다. 순리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면 고통스러운 대가가 따른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 무모하게 자신을 혹사시키고도 부작용이 없거나 멀쩡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교만하게 현실을 부정하는 태도다.
피곤함을 ‘영적인 양치식물’로 생각하기 바란다. 우리는 그 경고 신호를 존중해야 하며 자칫 그것을 무시하다 추락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본문 13쪽 <프롤로그_ ★ 나는 안전지대에 있는가?>
이 책의 위험
어떤 면에서 나는 이 책이 장전된 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총으로 자신을 방어할 수도 있고 가족들의 먹을거리를 사냥할 수도 있지만 또한 자신을 해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이 책에 들어있는 진리도 도움과 깨달음을 줄 수도 있지만 또한 이런 식으로 왜곡될 수도 있다. “하나님은 음식과 포도주를 내가 즐기라고 창조하셨다. 내가 약간 과하게 먹고 마신다 해서 해로울 게 무엇인가? 근본주의자들 때문에 내 즐거움을 빼앗길 수는 없다.”
당신에게 간곡히 당부한다. 쾌락을 수용하되 균형을 잘 이루기 바란다. 쾌락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좋은 것이다. 그분은 우리를 지으실 때 여러 가지 쾌락을 받아 누리도록 설계하셨고, 실제로 지금도 우리를 영원한 쾌락을 누리도록 준비시키고 계신다. 하지만 쾌락에도 위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맨 위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밖에 다른 쾌락들에도 다 질서가 있다. 이 위계가 깨지거나 뒤틀리면 덜 중요한 쾌락들이 가장 중요한 쾌락을 상대로 싸움을 벌인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쾌락은 그리스도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고쳐도 ‘너무 많이 고치는’ 성향이 매우 강하다. 우리는 하나의 오류(“쾌락이란 정당하게 수용하고 가꿀 수 있는 것인데 그간 나는 금욕주의적인 사고방식으로 나 자신을 위태롭게 만들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다”)를 보면 그 오류에서 벗어나려고 반대쪽 극단으로 달려가 새로운 오류(“남은 평생 동안 ‘먹고 마시고 즐기고’ 싶다”)를 만들어 낸다.
이런 책을 쓰거나 읽을 때도 바로 그 중대한 위험이 존재한다. 솔직히 오늘날의 교회는 지적인 균형을 이루는 부분에서 좋은 평을 얻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매사에 건강한 균형을 이루기보다 위험한 양극단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경향이 있다.
균형을 잡으라
...... 여기 뜻밖의 신기한 사실이 또 하나 있다. 안식의 즐거움이 일의 성취보다 더 먼저 있었다. 기쁨과 감사를 위하여 구별된 이 날은 당신이 쉬는 날이다! 그러므로 안식의 쾌락은 단순히 기능적인 것이 아니다. 다시 고된 일로 돌아가려고 오직 재충전을 목적으로 한숨 푹 낮잠을 자는 것과는 다르다. 이 안식은 어떤 목표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표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는 안식의 때’, 모든 해야 할 일이 마침내 다 끝나고 모든 잘못된 것들이 다 회복된 그때를 우리는 지금의 일상생활 속에서 미리 조금씩 맛볼 수 있다.
본문 232쪽 <9장. 하나님 앞에서만 즐겨야 할 쾌락들>